[임춘훈 칼럼]“불쌍한 경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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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2011 Sundayjournalusa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은 때로는 공허롭습니다. 짧지 않은 인생 살아보니 시나브로 침 뱉어주고 싶은 웃는 얼굴이 세상에 뜻밖에도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요즘 한국 TV 뉴스에서 만나고 있는 두 명의 “침 뱉고 싶은 웃는 얼굴” 얘기 한번 들어보시지요.
이들을 보면 입안의 침샘세포가 일어나고, 웃는 낯을 향해 침 한번 뱉어주고 싶은 충동이 솟구칩니다.
신재민은 문화부차관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중 하나입니다. SLS 그룹 회장에게서 지난 10년 동안 1년에 1억 꼴로 1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개각 때 하마터면(?) 장관이 될 뼌 했는데, 그때도 이런저런 돈 추문 때문에 낙마했지요.
이 사람의 얼굴이 요즘 거의 매일 TV에 나옵니다. 헌데 신통방통하게도 계속 웃는 얼굴입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그에게 TV카메라를 들이대고 소감을 묻자 “억울하고 창피하다”면서 활짝 웃었습니다. 억울하고 창피한 사람의 얼굴이 결코 아니었지요. 나 잡아봐라 하는 듯한 장난스런 얼굴….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표정…. 신재민의 웃지 않는 맨얼굴을 TV에서는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는 왜 웃는 걸까요. 감옥이 코앞인데 뭐가 좋아 웃는 걸까요. ‘신재민 패러독스’입니다.
또 한사람이 웃고 있습니다. 시민 후보라는 괴이스런 이름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입니다. 안철수 교수가 손을 들어주고 많은 시민이 호응해 준 것은 그의 깨끗함, 정직함, 진솔함 같은 도덕성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지요. 그가 오세훈 전시장보다 유능한 시장감이어서 지지한다는 시민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5%도 안 되는 지지도에서 안철수가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단숨에 40%를 뛰어넘는 서울시장 1순위 후보가 됐습니다. 능력은 둘째 치고 도덕적 하자만큼은 없어야 했습니다. 도덕적으로 자신이 없다면 상대적으로 깨끗한 안철수한테 시장후보를 양보했어야 옳지요.
이른바 시장후보 검증이라는 게 진행되면서 요새 박원순의 다면적이고 위선적인 면모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떤 인터넷 매체는 그를 ‘비리종합 선물세트’로 까 발기고 있더군요. ‘시민운동 대부’의 일그러진 또 다른 얼굴입니다.
요즘 그는 TV에서 생세지락(生世之樂) 만난 듯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신재민은 “창피하다”면서 웃는데, 박원순은 “떳떳하다”면서 웃습니다. 대기업 돈 요상하게 뜯어내기, 뜯어낸 돈 마누라 비즈니스 돕기에 쓰기, 부끄러운 재벌기업 사외이사 경력, 론스타 돈까지 받은 도덕적 일탈, 법에 없는 양손(養孫) 입양과 병역 면탈, 서울대 법대 학력위조, 월세 250만원짜리 아파트 호화 생활, 일편단심 반미친북 놀음…. 과연 ‘비리종합 선물세트’입니다.
신재민처럼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을 박원순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이나 부자 돈 후려치기를 탓하면 “가난한 사람 돈 받아쓰란 말이냐”고 맞받아칩니다. 양손입양과 병역 문제를 따지면 “일제때 우리가 겪은 가족사의 아픔을 건드리는 거냐”라고 본질을 비켜가는 감성적 대응으로 반격합니다.
서울대 법대 학력위조를 지적하면 “서울대 사회계열대에 재학한건 사실인데 법대 다녔다고 해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라고 우기면서 헛웃음을 날립니다. 그의 웃음은 스마일이 아니라 스머크(smirk)입니다. ‘박원순 패러독스’이지요.


꼬방동네 사람의 한


이번 주에 나온 <주간조선>엔 전 국회의원 이철용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11년 전 박원순이 주도한 이른바 낙선운동 탓에 금배지를 잃고 지금은 ‘통(通)’이라는 점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안철수가 박원순의 손을 들어준 날 밤 열불이 나 한숨도 못 잤다는 이철용은 “박원순만큼은 절대 서울시장이 돼선 안된다. 지금은 그가 낙선운동의 대상이 돼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철용은 3급 장애인으로 문익환 목사 등의 천거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사람이죠. 서울 도봉구에서 장애인 최초의 지역구 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소설도 쓴 그는 빈민운동가 출신으로 박원순과는 정치 DNA가 비슷한 사람입니다. 89년 5공 청문회 때 전두환을 향해 “살인마”라고 일갈해 유명해졌지요.
2000년 1월 박원순이 주도한 412개 단체들로 구성된 총선시민 연대는 16대 총선에서 부적절한 후보자에 대한 공천반대와 낙선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모두 86명의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뜻밖에도 이철용 의원이 포함됐지요.
기업에서 2000만원을 수수했다는 ‘죄목’인데, 이 전의원은 자기가 받은 것이 아니라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라는 단체가 받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항의를 받은 총선연대는 2차 낙선․낙천자 명단에서 이철용의 이름을 뺐지만, 이미 정치적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후였습니다.
작년 박원순은 최열 전 환경운동연합 대표와 함께 두 차례나 이철용을 찾아와 “사과 편지를 쓰라면 쓰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네요. 그러나 그 후 박원순은 태도를 바꿔 “사과 문제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겠다”고 발을 뺐습니다. 인터뷰에서 이철용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박원순이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르고 뒤축이 너덜거리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생쇼’를 하도록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워 정치 생명을 끊어 놓은 것도 모자라 잘못을 뉘우치는 양심마저 외면한 그의 도덕성을 거부해야 한다….”


한나당의 딴나라 놀음


10월 11일 박원순 후보의 선거대책 위원회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야권 통합의 예고편을 보듯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 문재인 등 기라성 같은 인사들이 모였지요. 선대위원장만 22명에 작가 이외수 공지영, 영화배우 문소리와 감독 이창동 등 문화 예술 학계인사 11명으로 구성된 ‘멘토단’이라는 스타군단도 선보였습니다.
박원순은 10.26 선거를 2주 남겨 놓은 12일 현재까지도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한테 4~5% 정도의 리드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철용이 외치는 박원순 낙선운동이 ‘인생 상담소 통(通)’의 도사(?)가 바라는 대로 아직은 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요즘 거의 고립무원 상태에서 단기필마로 분투하고 있습니다. 13일부터 박근혜 의원이 지원유세에 나선다고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그의 역할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박근혜 진영은 나경원을 ‘지원할 것이냐 마느냐’로 여러날 뜸을 들이더니 지금은 함께 ‘유세를 할 것이냐 마느냐’,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마느냐’로 배부른 입씨름을 벌이고 있습니다. “탤런트 후보는 안된다”고 입방정을 떨며 나경원을 비토하던 홍준표 대표는 선거지원은커녕 팔짱만 낀 채 남의 집 잔치 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선대위 대변인이라는 자가 TV토론에 폭탄주 마시고 출연하질 않나, 대통령 핵심 참모라는 자들이 비리 혐의로 줄줄이 검찰에 불려 다니질 않나, 나경원 캠프엔 연일 흉보만 날아듭니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는 패배감 속에 한나라당은 여성의원 나경원을 마치 제물 바치듯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22명의 초호화 매머드급 선대위를 구성한 박원순 캠프에 비하면 5~6명의 서울출신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나경원 캠프의 선대위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10% 이상의 지지도 격차를 5%대까지 좁혀놓은 나경원의 고군분투가 차라리 놀랍습니다.
시청 앞 광장이 시위전용 광장으로 변하고, 밤샘 시위대한테는 시 예산으로 ‘무상급식’까지 해주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닌지, 요즘 보수세력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12일>


                                                    <※ 본 칼럼의 내용은 선데이저널 편집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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