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커뮤니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인사회에서 한인 공무원 뇌물사건이 터져 주류신문에 대서특필되며 또 한번 한인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 공개됐다. LA타임스가 지난 16일자에 두면에 걸쳐 LA시 한인공무원과 한인 민원인 간의 뇌물 수수사건을 상세히 보도한 것. LA타임스는 수년 동안 한인들을 상대로 건물안전검사에서 편의를 봐주고 수만 달러를 받아온 LA시 주택국(LAHD)의 한인 직원이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LA시 주택국 한인타운 윌셔사무소 민원창구에서 서기로 근무해온 은 차비스씨는 ‘한국어 구사능력’을 이용해 한인 건물주들로부터 수천에서 수만 달러의 돈을 요구해 챙기다 공무원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돼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LA타임스의 한인 공무원 뇌물스캔들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들어 벌써 두 번째다. 지난 5월 LA타임스는 LA시 건물안전국 소속 한인타운 오피스에 근무하던 한인 검사관이 건축물 검사 과정에서 금품을 요구, 수수한 뇌물 스캔들을 보도해 LA시 당국과 한인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적 있다.
<시몬 최 취재부 기자> filmone@sundayjournalusa.com
LA주택국 민원창구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은 차비스(Eun Chavis. 58세)씨는 지난해 9월 11건의 중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은 차비스씨는 LA주택국 윌셔사무실의 유일한 한인 직원인 점을 이용해 영어가 미숙한 한인들에게 민원을 해결해주겠다면서 수만 달러의 금품을 받고 남편 프랭크 차비스에게 민원들을 소개해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 당국에 따르면 차비스씨는 기록을 입력하는 일개 창구 서기 직원일 뿐 건물 허가에는 전혀 권한이 없었다. 사건 수사는 피해자 임모씨 등 한인 민원인들의 고발로 시작됐다.
피해자, 전재산 날리고 파산 30대 한인 남성 임씨는 주택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LA시 주택국 소속의 한인 직원이 민원처리를 이유로 1만여 달러의 수수료만 받아 챙겼다며 해당직원과 LA 시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해당 직원을 사법당국에 고발했다. 임씨는 또 이 직원이 소개한 건축업자가 공사 중 잠적했다며 업자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하고 사법당국에 고발조치 했다. 임씨가 지난 5월 21일 LA민사지법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임씨는 지난 2003년 LA한인타운의 주택을 구입해 2년에 걸쳐 하숙집으로 불법 개조 2006년부터 하숙집을 운영해오다 시 당국에 적발됐다. 임씨는 어머니가 주택국을 찾아가 한인 직원 차비스 씨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차비스씨로부터 “자칫하면 주택 차압과 감옥에 갈 수 있다” “주택국의 인스펙션과 퍼밋을 받기 위해서는 주택국에 3,000달러를 내야 한다”는 통보에 따라 차비스씨에게 현금으로 돈을 건넸다. 그러나 임씨는 3~4개월 후 다시 주택국에서 규정위반 서신을 받자 어머니가 또다시 차비스 씨의 요구에 따라 추가 수수료까지 총 1만6000달러를 건넸다. 이후 2008년 5월 차비스 씨는 법이 바뀌어 임씨에게 개조한 주택을 원상복구해야 한다며 새로운 규정을 잘 아는 건축업자를 소개했다. 하지만 공사 진행은 더뎌졌고 계약기간에서 한 달이 지난 8월에는 건축업자와 연락이 두절됐다. 임씨는 차비스씨를 찾아가 항의하자 차비스 씨는 ‘건축업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임씨는 지난해 10월 LA경찰국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고, 지난 5월 12일 LA민사지법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임씨는 차비스씨에게 1만6000달러를 건넸고, 주택 개조 비용으로 15만달러를 들였지만, 하숙집은 결국 공사조차 제대로 끝나지 못한 채 차압당해 개인 파산까지 신청한 상태가 되었다. 임씨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판사는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이를 기각했다. |
공범 남편, 한국으로 도주 차비스는 공무원 신분을 이용해 상가건물 운영사업을 하던 남편을 돕기도 했다. 차비스는 건물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김씨에게 자신의 남편 프랭크씨를 소개했다. 김 씨는 프랭크에게 건물 운영을 의뢰하면서 4만3,000달러를 지불했다. 차비스의 남편 프랭크도 5개 혐의에 연루돼 체포영장이 발부됐지만, 현재 한국으로 도주한 상태다. 차비스는 비리가 들통날 것을 염려해 김씨에게 “다른 직원은 만나지 말라”며 “우리는 같은 한인이니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오라”고 말했다고 수사관들은 전했다. 또 다른 피해자 정모씨는 그나마 피해가 적은 사례다. 타운내 아이롤로(Irolo) 선상의 한 상가 건물주인 정씨는 건물 화재로 인한 재건축 허가를 도와달라며 차비스 씨에게 5,000달러를 건넸다. 얼마 후 정씨는 차비스가 허가권을 내줄 위치가 아님을 알고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차비스는 돈은 돌려줬지만 “결코 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정씨는 주장했다. LA타임스는 차비스 씨의 혐의에 비해 형량이 가벼운 점도 지적했다. 차비스 씨는 검찰과 재판 전 합의를 통해 11개 혐의 중 1개 혐의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해 수감되지 않고, 1년 가택연금형을 받는데 그쳤다. 검찰은 뇌물수수 혐의 1건당 한 달 미만을 구형했으며 차비스씨는 체포 이후 전자 팔찌를 부착하고 가택연금으로 보낸 시간이 형량으로 인정돼 사실상 수감되지 않는다. 또, 퇴직후 차비스는 연간 3만1,056달러의 퇴직금까지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차비스 측 변호인은 뇌물을 준 사람들도 받은 사람 못지않게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비스는 충분히 죄값을 받았다”고 밝혔다. LA타임스는 차비스 사건이 언어 장벽으로 민원 신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민자들이 같은 언어를 쓰는 시 공무원에게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적절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한편 LA타임스는 차비스 사례와 함께 지난해 뇌물수수로 적발된 LA시 건물안전국의 한인 수퍼바이저가 건축물 검사과정에서 금품을 요구 뇌물을 수수한 사례도 재차 소개했다. 한인 건물주가 위생검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 안전국에서 일하던 한인 수퍼바이저에게 문의했다가 1만5천달러를 뜯긴 사건이다. 이 한인 피해자 역시 영어가 불편해 한인 직원을 찾았지만 한인 수퍼바이저가 돈만 챙긴 뒤 지난 5월 은퇴하자 결국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라티노 검사관 두 명이 라티노 계약자에게 돈을 받은 유사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영어가 불편한 이민자들은 언어가 통하는 같은 인종의 직원을 찾아 도움을 요청할 때가 많지만 일부 공무원들이 이를 악용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LA 타임스는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LA 시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사건이 발생한지조차 알지 못하는 등 무책임하게 대응하고 있어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LA시정부 서둘러 조례안 마련 한편 이번 한인 공무원 뇌물 수수 사기사건과 관련해 LA 시정부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LA시 감사관과 LA 시의회는 사건을 함구한 LA시 주택국을 비난하고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례안을 조속히 처리하는 등 공무원 윤리 강화와 비리 척결에 나섰다. LA시 정부는 한인 등 공무원들이 자신의 직책을 악용해 벌이는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대응책을 내놓았다. LA시 감사관은 우선 한인 공무원 차비스 사기사건과 관련해 LA시 선출직 관계자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의회는 한인을 포함해 시 산하 부처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및 사기 사건이 잇따라 보고되자 18일 자체적인 조사와 단속이 허용되는 윤리 규정 강화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조례안에 따르면 시 공무원은 비리나 뇌물 수수가 연류된 케이스를 의무적으로 회계감사국에 보고해야 한다. 또 회계감사국은 산하에 ‘예산낭비·사기·권력남용 단속부’를 설치해 시 직원들의 비윤리적인 업무에 대한 신고를 조사하게 된다. 시의회의 이번 조치는 최근 영어를 못하는 한인 이민자들을 상대로 시 주택국 소속 한인 직원이 뇌물받은 사건이 드러난 후 서둘러 마련됐다. 이번에 통과된 조례안은 공무원들의 사기와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행정 보고 규정을 강화시키고 사건 방지를 위한 도덕 및 윤리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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