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부는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서 숨진 병사들의 뼈조각이라도 끝까지 찾으려 한다. 그래서 미국 장병들은 조국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비록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나라에도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전쟁터로 달려간다. 한국의 경우는 크게 다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움터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는데도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단 한명의 국군포로를 데려 오지 못했다. ‘물망초배지달기운동’을 위해 LA를 방문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12일 미주동포사회 단체 대표 간담회에서 국군포로, 납북자, 그리고 탈북자들의 아픈 사연을 전해 참석자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지난 12일 ‘물망초 배지달기 운동’ 간담회에 참석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북에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의 아픈 사연을 전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 사연은 지난 2개월 전 박의원이 중국의 한 대한민국 공관에서 만난 한 탈북자가 통곡하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이 탈북자는 국군포로를 아버지로 둔 북한인 A씨다. A씨는 다 자란 아들과 함께 탈북했다. 그가 박의원에게 그의 눈물겨운 사연을 털어놓았다. “애초 탈북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나는 북한에 살면서 내 아버지(국군포로)를 원망하고 그를 증오 하면서 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국군포로의 가족을 신분상 가장 멸시받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 가끔씩 나는 아버지에게 ‘왜 국군포로가 되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라고 다구쳤습니다. 하여간 나는 탄광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내 아들이 태어났고, 다행히 그 아들이 똑똑하게 자라 김일성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나는 ‘이제야 우리 신분이 달라지겠구나’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들어간 학과가 ‘광산학과’였습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하지만 그 학과를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배치된 곳이 탄광이었고, 아들은 그 탄광의 지도원으로 탄광에서 생활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탄광촌에서 돌아가셨는데, 나는 아버지 시신을 붙잡고 ‘증오’하면서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북한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여 아들의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박의원은 이 탈북자가 이야기를 끝내며 또다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 탈북자는 현재 중국의 한 공관 지하실에서 한국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 한국으로 가게 되면 이 탈북자에게 새로운 희망이 있을까. 이날 박의원은 한국에 온 또 다른 한 탈북자의 증언을 통한 국군포로 이야기와 신숙자 모녀 그리고 북한에 납치된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도 밝혀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지난 2007년에 탈북한 이영수씨(가명)로부터 “6·25때 중대장을 하다 포로가 된 육군대위 박재수씨와 신숙자씨 모녀, 그리고 일본에서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 왔으나 간첩교육 을 거부한 일본인 여성이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함께 살았다”는 증언을 녹취했다고 밝혔다. 박의원은 이영수씨가 “요덕수용소를 드나들면서 국군포로 박재수 대위와 신숙자씨, 그리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하는 일본 여성을 2003년까지 보았다”고 증언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박의원은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에게 “혹시 국군포로 박재수 대위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은 어떤 내용이든 알려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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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10만명 달해 현재 박선영 의원 홈페이지(www.sy0406.com)에 이 국군포로와 관련된 보도자료에는 “박재수 대위는 다른 장교들과는 달리 대남방송 등을 거부하다 (요덕수용소에) 들어왔으며, 거의 정신이 나가다시피한 신숙자씨는 그곳에서 ‘독일댁’으로 불렸는데 자신이 한 달에 두 번씩 그 독일댁에게 나무땔감을 해다 주었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50대 후반의 일본인 여성은 ‘일본댁’으로 불리면서 요양원의 요리사로 일했다”고 밝혔다. 증언자 이씨가 이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3년으로, 그 해 9월 국군포로 장교인 박재수 대위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서 ‘종신구역’으로 옮겨졌고, 비슷한 시기에 신숙자씨 모녀도 어디론가 짐을 싸 밤중에 옮겨졌다고 박의원은 밝혔다. 1977년 중학생 신분으로 납치된 일본인 요쿠다 메구미에 대해 북한 측은 “그녀가 사망했다”며 유골까지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나 검사 결과 가짜유골이라는 논란이 계속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박의원은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메구미는 살아있고, 유골도 가짜를 보냈다”는 내용의 증언을 지난 10월에 폭로했다. 박의원은 지난 2007년에 탈북한 이영수씨(46세, 가명)가 “2004년 말에서 2005년 초에 북한 대동강변 지하 식당에서 일본인 납치를 담당했던 북한 노동중앙당의 일본담당자의 아들이자 본인도 현재 일본 담당을 하고 있는 이모씨(42세)로부터 ‘메구미가 몰라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알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었고, 사실은 그녀가 살아 있으며 메구미 외에도 자기가 알고 있는 납북되어 온 일본여자가 4명은 더 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박의원은 북한에 의해 납치된 자국 국민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일본여성의 요덕 수용소 생활’에 대한 보도자료가 나가자 일본 정부 당국자들의 문의가 여러 차례 왔으나, 한국정부는 반응이 없다고 했다. 일본의 경우 고위 공직자가 되면 일본 납치자협회에서 제작한 리본을 구입하면서 기부금도 내고 열성을 보인다고 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납치된 사람이 17명이다. 한국은 납치된 납북자가 적어도 10여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일본은 납북된 사람이 17명에 불과하지만 총리서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납치된 국민을 데리고 오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번 ‘물망초배지’를 한국에서는 박의원의 권유로 현재 국무총리나 외교통상부 장관 등은 달고 있다. 박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10개를 보냈는데 아직 반응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이 이 배지를 달게 되면 “적어도 국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국민들이 갖게 될 것이다”며,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북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배지를 달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통일부장관에게 물망초배지를 권유했는데 그쪽에서 나온 답변이 걸작이었다. “통일부는 전체 국민의 부서이지 국군포로의 부서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숨이 막힐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박의원은 통일부가 어느 나라의 부서인지 헷갈렸다는 표정도 지었다. 박의원은 “국군포로,납북자들의 송환문제에 있어 현재 우리 국가는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이들은 정부도 돕지 않아 역사의 조난자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박의원은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이 문제다”면서 “이들의 각성을 위해서라도 ‘물망초배지달기운동’을 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의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에 있는 많은 탈북자들이 강제송환을 당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는 이들 탈북자들에 대해 손을 제대로 쓰지 않고 있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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