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저널>은 지난 제812호를 통해 무기중개상 김영완 씨의 극비소환 조사와 관련해 “검찰과 김 씨와의‘빅딜’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김 씨가 연관된 각종 혐의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는 대신 김 씨는 검찰에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넘겨주기로 했다는 것이‘빅딜설’의 골자였다. 본지 기사가 보도된 후 한겨레 등에서는 “검찰이 국내에 있는 김 씨의 재산을 보전해주는 대가로 수사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후속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선데이저널>은 검찰의 한 관계자로부터 “조만간 김 씨가 다시 국내로 입국, 몇 차례의 검찰 조사를 더 받을 것”이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김 씨는 이번에 귀국할 때 스위스 비밀계좌에 있는 3,000만 달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져들어올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와 관련 2003년 당시 현대상선의 자금 담당 임원이던 박 모 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키로 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박 씨 이외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깊은 현대그룹의 전·현직 임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계속 소환 조사할 예정이어서 지난 2003년 8월 김영완 씨의 미국 도피 등으로 수사가 중단됐던 ‘스위스 계좌 3,000만 달러’의 비밀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 씨가 다시 입국해 비밀계좌의 미스터리를 풀 만한 열쇠를 내놓는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조짐이다. 과연 김 씨가 들고 올 ‘선물 보따리’가 무엇일지 정치권과 법조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검찰이 김영완 씨를 불러 규명해야 할 의혹의 핵심은 스위스 비밀계좌 3,000만 달러 송금 부분이다. 이는 고 정몽헌 현대그룹 전 회장이 1999년 12월에서 2000년 1월 사이 김 씨가 알려준 스위스 한 은행의 비밀계좌에 현대상선 미주 본사에서 3,000만 달러를 입금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 회장에게서 2003년 7월 이같은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정 회장은 당시 “현대증권 이익치 전 회장이 김 씨가 알려준 해외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를 가지고 와서 ‘권노갑 전 고문 측에서 미화 3,000만 달러를 달라고 한다’고 보고해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에게 송금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이 갑자기 숨지고, 김 씨가 미국으로 출국하는 바람에 이 진술의 진위는 미궁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이 계좌가 김대중 정부 시절 비자금 조성 창구였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핵심증인인 김 씨가 입을 열지 않고서는 이 비밀계좌의 정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2003년 출국 이후 기소중지가 되어 있던 김 씨가 돌연 지난달 26일 비밀리에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사흘 뒤인 29일 출국해 김 씨의 행보와 검찰의 조치에 의문이 증폭됐다. 김 씨 귀국 둘러싼 미스터리 특히 검찰이 김 씨를 출국시킨 것은 더 큰 미스터리였다. 이와 관련 검찰은 “김 씨가 검찰이 부르면 언제든지 귀국하겠다고 약속해서 출국을 허락했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씨처럼 기소중지 상태에서 장기간 해외 도피했다가 입국한 사람은 즉각 출국 금지 조치를 취해왔다.
검찰은 이번에 그런 관례도 깨뜨렸다. 결국 검찰이 김 씨와 모종의 합의를 했거나 사건을 덮으려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현대상선 임직원들을 꾸준히 불러 조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검찰이 김 씨를 출국시키면서 합의한 부분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검찰이 현대그룹 측에서 3,000만 달러를 송금한 스위스 비밀계좌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는 것에 시선을 고정한다면 김 씨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외로 간단해진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김 씨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로는 스위스 비밀계좌의 성격을 규명해 줄 수 있는 문서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선데이저널>과의 통화에서 “김 씨가 조만간 귀국할 것이며 스위스 비밀 계좌와 관련해 실제 주인을 입증해 줄 수 있는 서류를 가지고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의 분위기를 보면 김 씨가 관련서류들을 들고 재입국을 한 후, 서류의 신빙성들을 판단하고 나서야 그 이후의 계획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대검 중수부와 특검이 수사했던 대북송금 사건은 △박지원(69) 전 민주당 대표의 150억원 수수 의혹 △권 전 고문 200억원 수수 의혹 △권 전 고문 3,000만 달러 수수 의혹 등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뉜다.
검찰은 일단 다른 두 건은 제쳐두고 권 전 고문의 3,000만 달러 수수 의혹에 수사의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본격적인 수사보다는 당시 해소되지 못했던 의혹을 푼다는 것이 집중한다는 생각이다. 정치권에 파장 검찰의 이런 입장과는 달리 김영완 씨에 대한 수사는 어떤 식으로든 구야권 실세들의 비밀 거래 의혹과 연결고리가 된다는 점에서 향후 정치권에 파장이 예상된다. 2003년과 2005년 수사 당시 도피 중이던 김 씨가 “박지원 전 장관에게서 현대 비자금 150억원의 CD(양도성예금증서)를 받아 관리했다”는 자술서를 검찰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를 증거로 박 전 장관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006년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이는 이미 무죄가 확정된 사안인 만큼 재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검찰은 김 씨가 당시 정치권 실세의 비자금 관리인이란 의혹을 받아 온 만큼 김 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진상이 규명될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김 씨에 대한 조사가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가 아닌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접촉을 위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2002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씨가 대북 돈 창구였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비슷한 역할을 맡을 것이란 주장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가능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없는 얘기처럼 들리지는 않는다”며 이런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떼강도 사건도 미스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