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의 정보력이 흥신소만도 못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이같은 한심한 정보력 부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심화된 편중인사가 화를 자처했다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특히 국정원은 권력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만큼 외부압력에 많이 시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국가정보원과 기무사령부 인력 ‘물갈이’가 있었던 것도 정보력 부재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내면서 10년간 축적됐던 노하우가 일시적인 인력 교체로 사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햇볕정책 추진으로 인적정보 자원인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를 축으로 한 대북 정보 시스템이 와해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서울시 공무원 출신인 원세훈 원장 등 정보 비(非)전문가들이 국정원을 이끈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첨단 전자장비를 통한 정보 수집 체계인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에 주로 의존한 데 따른 지적이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 국가정보원장 교체에 이어 내부 대규모 인사를 통해 과거 정부 색채를 희석시키는 데 주력했다. 군 정보당국인 기무사령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정보 수집의 노하우와 최근의 북한 동향과 관련한 축적된 정보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정권 초 국정원은 이상득계 라인으로 꾸려졌다. 특히 김주성 기조실장 임명을 둘러싸고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갈등을 보였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무엇보다 원 원장의 경우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부터 함께 한 측근으로 정보기관 수장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그간 원 원장에 대한 경질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국정원 무용론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 정치권에서는 국정원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20일 열린 국회 정보위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 대북 휴민트가 무너져 복원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관진 장관도 국방위에서 “현재 국방정보감시 체제만으로 김정일의 사망을 아는 것은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보능력을 키우고 확장해야겠다는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대북 정보력 한계를 토로했다. 국정원 내 인적 난맥상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보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원 고위 간부들을 만나보면 ‘무슨 일을 하려 해도 도무지 하부 조직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더라”고 전했다.
90년대 국정원의 정보력은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7년 16대 대선 당시 기획된 소위 ‘총풍사건’이다.
당시 오정은 청와대 행정관 등 이른바 ‘총풍 3인방’이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했으나 실패했다. DJ정부 출범 후 검찰은 이들이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에서 평양으로 보낸 팩스 감청 자료를 증거로 확보했다.
훗날 검찰 간부는 “당시 팩스 감청은 국정원이 서울에서 한 것”이라고 실토했다. 1990년대만 해도 국정원의 대북 정보•첩보망은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1997년 2월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탈북, 같은 해 8월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 장승길 씨의 미국 망명 등은 정보기관의 고급 정보 확보가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는 당시보다도 훨씬 훌륭한 장비를 가지고 있으나 오히려 정보수집력은 당시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것이 잇따라 증명되고 있다. 앞으로 북한에서 어떤 급변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국정원 정보력으로는 북한의 이상 징후를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제 국가정보원을 대통령의 품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줄 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