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 한명숙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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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한명숙이 무섭다


 


크리스찬 아카데미사건은 박정희 정권말기에 터진 대표적인 공안사건입니다. 강원룡 목사가 만든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수강생들에게 사회주의 이념교육을 시키다 발각돼 다수의 관련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등의 혐의로 처벌받았습니다.


 


이 사건엔 수강생들을 가르친  이른바 강사 3인방이 등장합니다. 이우재, 한명숙, 신인령입니다. 옥고를 치렀지만 이들 3인은 김대중 노무현의 10년 좌파정권에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우재는 국회의원이 되고, 신인령은 이화여대 총장이 되고, 한명숙은 국회의원에 장관·총리까지 지내다 지금은 제1야당 대표로 정국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2001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관련자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명예회복 조치를 내렸습니다. 민주당 한명숙 대표는 그동안 기회있을때 마다 이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고문조작 사건이라 주장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3월 24일 총리로 지명된 한명숙은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중 ‘고문과 절망’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 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지금 이순간도 그때의 두려움으로 손이 떨린다…. 온 몸이 꽁꽁 묶인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했다…. 온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 올랐고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건 단 하나였다.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아! 나는 패배했다…”


“아! 나는 패배했다.”라는 고백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그들의 요구대로 ‘빨갱이임을’ 자백했다는 얘기로 짐작이 됩니다.


 


고문과 술수정 사이


 


당시 한명숙을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수사관은 이기동이라는 사람입니다. 중정 대공수사국 수사관으로 한명숙을 심문했던 이기동은 2011년 6월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명숙의 고문조작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남산, 더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그는 한명숙 재판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한명숙은 진술도중 갑자기 한발짝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포승으로 묶인 두손을 좌우로 흔들며 재판부를 향해 말했다. ‘제가 정보부 남산 지하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저의 좌측어깨를 봐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장이 ‘어깨를 어떻게 고문당했단 말이오?’라고 묻자 그녀는 나를 향해 ‘저기 앉아있는 내 담당 수사관(이기동)이 담뱃불로 내 어깨를 지져 상처가 났으니 한번 보십시오’하지 않는가. 그로부터 20분 후 서울대학병원 외과과장 심박사가 도착했고, 한명숙의 요구대로 어깨 상처를 살피고 방청석을 향해 ‘여러분 보이세요? 이 조그만 흉터가 최근 담뱃불로 지진 상처같습니까?’하고는 재판장을 향해 ‘이 흉터는 이사람이 3~4세때 종기가 나 생겨난 흉터자국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기동은 한명숙을 심문하면서 담뱃불 고문은 커녕 단 한번의 주먹질이나 발길질도 하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한명숙이 소주를 마시고 싶다고 해 소주와 안주를 사다줬고 술취한 한명숙한테서 밤새도록 술주정까지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당시는 중정이 공안사범을 다룰때 고문을 예사로 하던 때였습니다. 헌데 한명숙의 고문주장엔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있습니다. 담뱃불 고문주장은 서울대병원 외과과장의 진찰결과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온몸이 꽁꽁 묶인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해 피멍이 들었다”고 한명숙은 홈페이지에 썼습니다. 그렇다면 고문증거로 어릴때 생긴 어깨쭉지의 흉터 대신 피멍이 들고 부어오른 온몸의 상처를 재판장에게 보였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한명숙이 고문당사자라고 주장한 이기동은 회고록에서 한명숙에게 공식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변호인단을 구성해 고문여부를 정식으로 조사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당시 중정 심문실을 완벽하게 녹화한 필름이 있을 것이라며, 국정원에 요청해 국회청문회 같은데서 공개해도 좋다고 그는 회고록에 썼습니다.


 


당시는 김대중 좌파정권 시절로 한명숙이 마음만 먹으면 고문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헌데 한명숙은 피해갔습니다. “나를 고문한 사람(이기동)을 이미 용서하고 잊었다.”는 말만 되풀이 했지요. “고문은 커녕 피의자한테 소주 사주고 술주정까지 받았다”는 이기동의 공세적 주장이 한명숙의 방어적 주장보다 설득력이 조금 더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양동안 교수가 쓴 ‘한명숙의 위장술’이라는 글에도 그녀의 위선적이고 다면적인 여러 행적들이 고발되고 있습니다.


 


막시스트 남편의 베갯머리 송사


 


한명숙이 쓴 자서전의 제목은 ‘부드러운 열정, 세상을 품다’입니다. 제목처럼 그는 ‘편안하고 부드럽고 우아한 안방마님같은 이미지’로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노무현정부 총리때는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내세웠고, 저번의 민주당 대표 경선때는 “나는 박근혜와는 달리 거머쥘 것도 없고 욕심을 부릴 이유도 없는 사람”이라고 몸을 낮췄습니다. 헌데 민주당 대표가 된 지금, 그녀는 완전 딴 얼굴입니다. 증오와 분노와 광기의 야당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4월 총선 승리가 예상되면서 한명숙은 벌써부터 권력놀음에 취해 있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한미 FTA의 폐기를 공언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반근혜 의원을 연일 원색적으로 욕해댑니다. 민주당 공천 심사의원 15명중 절반이상을 ‘자기사람’으로 채웠습니다. 내각총사퇴도 외칩니다. 당내에서는 “예전의 한명숙이 아니다”라는 수근거림과 “저게 한명숙의 원래 모습이다”라는 쑥덕거림이 함께 들려옵니다.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은 결혼 반년만에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됐습니다. 한명숙은 스물네살 나이에 청상아닌 청상이 돼 15년 동안이나 독수공방하며 남편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고무신 꺼꾸로 신지 않은 강건한 내면적 동기는 사랑, 그 이상의 무엇일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보다도 강할 수 있는건 한가지, 두사람이 함께 나눠가진 ‘이념적 가치’뿐일테지요. 부부적 가치 아닌 동지적 가치입니다.


 


통혁당재판에서 한명숙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받아 구속은 면했습니다. 당시 서울대생이던 박성준은 이화여대생이던 한명숙과 연애를 하며 북한에서 나온 많은 사회주의 이론서등을 읽게 했습니다. 한명숙은 남편 박성준에 대해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투옥됐다”고 자서전에서 썼습니다. 그러나 안병직 서울대 명얘교수는 지난해 “통혁당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결성된 혁명조직이고 그 하부조직인 경제복지회의 리더가 박성준”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박성준은 자신을 ‘막시스트 크리스찬’이라 소개합니다. 막시스트가 차기 집권 가능성이 높은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의 ‘경애하는 서방님’인 셈이지요. 좌파 학자들이 몰려있는 성공회대의 명예교수인 박성준은 입만열면 국가보안법 폐지와 미군철수, 자주적 통일을 외칩니다. 야당대표가 되자마자 한명숙이 들고나온 한미FTA 반대이슈는 반미와 미군철수, 그리고 국보법 폐지를 겨냥한 ‘한명숙식 위장술’에 다름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한미 FTA 다음으로 한미안보조약에 손을 댈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보수세력 일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정가에서는 한명숙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인물로 이해찬 전총리를 꼽습니다. 이른바 ‘이해찬 리모콘 정치’론 입니다. 하지만 리모콘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게 ‘베갯머리 송사’아닐까요. 막시스트 남편 박성준이 매일 베갯머리에서 들려주는 이념적 담론이 야당대표 한명숙을 움직이고 있다면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한명숙이 무섭습니다.


 


<2012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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