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실상]이명박의 언론인 출신 주구들…줄줄이 쇠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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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언론인 출신들은 빠른 순발력과 탁월한 정무적인 감각을 갖춰 정부 요직에 중용되어 왔다. 특히 홍보나 공보를 언론인들이 맡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언론인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했다.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후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부터 대선 캠프를 꾸릴 때까지 언론인들을 주변에 들이고 활용해왔다. 하지만 그가 중용했던 언론인들이 갖가지 비리에 연루되면서 오히려 그의 멍에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상 그들은 ‘가신’과 다름없이 불렸던터라 이명박 정부 족벌비리의 또 다른 유형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MB정부는 언론탄압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터라 MB의 언론인 중용정책은 아이러니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비리에 연루된 언론인 출신 측근들은 주로 조선, 동아,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다. 대표적인 인물인 동아일보 출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이외에도 지난 15일 소환조사를 받은 김효재 전 정무수석이나, 얼마전 SLS구명로비에 휘말려 구속된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조선일보 출신이다. 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된 김두우 수석은 중앙일보 출신이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때도 조선일보 출신 최구식 의원 비서관들이 이같은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프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 대통령은 친한 언론인들을 권력 핵심으로 끌어들여 언론탄압이나 언론 관리 창구로 활용하다 오히려 부메랑을 맞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MB의 언론인 출신 주구들의 비리연루 전황을 집중 조명해 보았다. 


<연 훈(본지 발행인)>


 포항 출신으로 이 대통령과 동향이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합편성채널(종편) 선정과 광고시장 문제 등에 개입하거나 병풍이 되면서 ‘방통대군’으로 불렸다. 그는 1964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사 생활을 시작해 1981년 언론통폐합 이후 동아일보에서 정치부장, 편집국 부국장 등을 역임하는 등 30년 간 기자생활을 해왔다. 갤럽회장 퇴임 후 이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합류한 그는 같은 해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 대통령이 박근혜 현재 비상대책위원장을 꺾는 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양아들로 불리는 최측근 정용욱씨가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게서 수억원대 로비를 받은 의혹과 여당 의원 3명에게 3500만원을 뿌린 의혹이 터져 나오자 지난달 27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경북고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그는 정치부 기자, 정치부 차장, 정치부장 등을 거쳐, 2008 2월 대통령실 정무2비서관으로 관계에 몸담기까지 정치담당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김 전 수석이 정치부장 시절인 2004 4월 제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공천제의를 받고 사표를 냈다가 낙천되자 회사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무2비서관을 거쳐 정무기획비서관, 메시지기획관, 기획관리실장, 그리고 홍보수석으로 승승장구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김 전 수석을 상당히 신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김 전 수석은 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는 참모에 박재완, 이동관, 박형준과 함께 꼽혔다. 언론은 그들을 순장조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부산저축은행 구명 청탁과 함께 현금 1억원, 상품권, 골프채 등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됐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징역 3년과 추징금 13140만원, 골프채 몰수를 구형했다.
















 

부메랑 된 언론인들


신재민 전 차관은 가장 화려한 이력을 가진 언론인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신 전 차관은 1981 MBC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 곧바로 한국일보로 이적한다.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일하던 신은 정치부 차장이던 1997 2,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났다. 때마침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홍콩을 거쳐 도피한 이 대통령과 워싱턴에서 만나 친분관계를 쌓는다. 그는 귀국 후 한국일보에서 주간국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정치부장 등을 역임한 그는, 2004 <조선일보>로 옮겨 편집국 기획탐사부장과 주간조선 편집장, 출판국 부국장을 맡다가 2006 MB캠프에 들어간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굉장히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논설위원 시절엔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고, 국정원의 국내 사찰을 지적했으며,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패배와 관련해한나라당이 다음 선거 때까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지 않으면 또 실패할 것이라는 고언까지 내놨다. 정치부장 시절엔, 청와대와 그 주변에서 언론사로 전화하고 정보원을 상주시키며 조사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주간조선 편집장 시절에도 탁월한 일처리 능력과 순발력으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신 전 차관은 2006년 말 MB 캠프에 합류, 메시지 단장으로 각종 연설문과 인터뷰, 축사, 기고 등을 담당했고, 언론·정치권·법조계 등의 동향을 파악해 이명박에게 자주 보고했다. 경선과 대선 당시 MB와 매일 아침 선거 전략에 대한 의논 할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대표적 아킬레스건이었던 BBK 사건을 김효재 전 정무수석과 함께 맡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이국철 에스엘에스 회장한테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말 구속돼 재판이 진행중이다.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고려대 졸업과 함께 조선일보에 입사, 사회·국제·문화부 등을 두루 거쳤으며 논설위원을 끝으로 기자생활을 마친 뒤 미국에서 언론 관련 사업을 하다 2006년말 선배 언론인의 소개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였던 ‘안국포럼’에 합류했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언론특보 및 상황대응팀장을 맡은 데 이어 2008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성북을에 출마해 당선돼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18대 국회에선 당 대표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정무수석 내정 전까지 서울시당 재건축·재개발 대책특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김 전 수석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돈봉투 살포 의혹에 핵심인물로 지목되며 지난 15일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자칫 사법처리 위기에 놓였다. 역시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인 최구식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과 관련해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았지만, 지난 9일 여야 합의로 특검법이 통과돼 재조사를 받을 처지다.




폴리널리스트라는 신조어


비단 비리에 연루된 핵심측근 뿐만 아니라 MB정부에는 수많은 언론인들이 구설에 오른바 있다. 동아일보 출신의 이동관 전 청와대 언론특보도 ‘박태규 리스트’도 포함돼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전 특보는 이를 폭로한 민주통합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다”는 문자를 보내 또 다른 입방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 전 특보는 얼마 전 TV조선에 출연해 “스스로 MB 아바타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권을 향한 끝없는 충성심을 숨기지 않았다.


YTN 출신 홍상표 전 홍보수석 역시 언론장악과 관련한 눈총을 받았으며 ‘대통령의 입’으로 활동했던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도 입방아에 올랐다. MBC 기자출신인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를 떠나 30대의 젊은 나이로 KT 상무로 옮겨가 ‘낙하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김 상무는 최근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는 과정에서 뉴세븐원더스 재단과 부적절한 협약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선정 기준이나 공신력도 문제였지만 공무원을 강제 동원하고 KT 전화비 200억 원을 체납해 선정 취소 논란이 제기되는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편파방송 논란과 함께 ‘종편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KBS 수신료 인상과 KBS 도청 의혹 사건에는 MBC 아나운서 출신의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한선교 의원의 도청문건 논란으로 촉발한 이 사건은 KBS 김인규 사장과 그에게 충성하는 기자들, 그리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신료 인상에 힘을 쏟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찰은 한선교 의원과 도청 의혹을 받던 KBS 장아무개 기자를 무혐의 처리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인들이 잇따라 정치권에 진출하자 일각에서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정치·언론인의 합성어)라는 합성어까지 생겨났다. 정무적 판단력과 대외적 ‘스킨십’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명박 정권에 합류했던 이들은 오히려 임기 말 레임덕을 촉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언론인 출신의 장점이 오히려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은 가뜩이나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언론계 전반의 도덕성과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적잖다.


 

















김효재신재민  BBK해결사


김효제 정무수석은 개인적으로 필자의 친구이고 신재민 전 문광부 차관은 언론계 후배로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지내왔다. 특히 신재민 전 차관은 한국일보 신참 기자시절부터 필자와 호형호제로 지낸 관계였으나 MB의 품에 안기면서 멀어졌던 관계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언론계 후배인 신재민 차관은 김효재 정무수석의 조선일보 후배였으나 이상하리만큼 MB를 사이에 두고 이상교류가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07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각 필자를 찾아와 한창 BBK문제를 이슈화했던 필자에게 자제와 협조를 당부하며 “MB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신세를 잊지 않겠다면서 야당이 선데이저널의 BBK기사를 가지고 협공하고 있다며 자제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데이저널> 기사는 계속되었고 급기야 평소 친구관계로 지내던 당시 공작정치분쇄위원장인 박계동 의원까지 나서 필자에 대한 무지막지한 공작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신재민 전 차관은 단 한번도 연락이 없었고 김효재 수석만이 LA방문시 연락이 와 조찬을 함께 한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이들은 언론계 선후배이면서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따로 놀았고 노는 물도 달랐으나 BBK문제에서만은 하나였다.


이들은 당시 BBK대책반에 편성되어 언론사를 상대로 해결사 노릇을 하는 이명박의 주구 노릇을 했으며 필자에 대한 대책에서도 각자의 의견이 달랐음을 후일 LA총영사를 지낸 김재수 씨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누구를 직접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 중 필자를 구속시키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BBK는 또다시 이명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부상하면서 당시 이들의 행각이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이다. BBK해결사 노릇을 자처했던 전직 언론인들의 해괴망칙한 정치 놀음이 이제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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