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이건희’이 두 사람은 이미 형제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30년 이전부터 형제가 아닌 오로지 정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적개심만이 있을 뿐 형제애라고는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정신병자로 몰기 위해 납치까지 하는가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첩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골프채로 아들에게 린치를 가하는 등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보기에 섬뜩하기까지 할 정도로 참으로 무서운 집안의 내력이다. 삼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벌리는 무서운 음모, 그리고 밝혀지는 이병철의 사생활은 한마디로 추악하기 그지없다. 25년 전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의 특별 인터뷰 연재는 그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삼성가의 비밀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세습 경영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건희 회장은 형인 이맹희를 향해‘집안에서 파문을 당한 사람’이라고 독설을 내뱉으며 참으로 입에 담지 못할 창피스러울 정도의 발언을 통해 공개망신을 주기도 했다. 두 형제의 치졸한 집안싸움의 속 내막을 삼성가의 비운의 몰락 황태자 이맹희의 25년 전 육성 인터뷰를 통해 전모를 4회 째 공개한다. <편집자 주>
특별연재<1탄> http://www.sundayjournalusa.com/article.php?id=17048 특별연재<2탄> http://www.sundayjournalusa.com/article.php?id=17066 특별연재<3탄> http://www.sundayjournalusa.com/article.php?id=17079 특별연재<4탄> http://www.sundayjournalusa.com/article.php?id=17087 특별연재<5탄> http://www.sundayjournalusa.com/article.php?id=17112
한국 제일의 재벌의 장남 이맹희가 돈이 떨어져 딱 한차례 아버지 이병철의 이름을 팔아야(?) 했던 어쩔 수 없었다는 남다른 사연도 있었다. <작년(86년)에 목포에서 멀리 떨어진 비금도라는 섬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심사가 울적하기도 해서 비금도라는 섬을 갔는데 며칠 지내보니 경치도 좋고 해서 더 있고 싶었어요. 그런데 준비해간 돈이 별로 없어서 한 달 방값 6만원을 주고 나니 돈이 다 떨어지더군요.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전보를 쳤어요. 그랬더니 며칠 후에 지서에서 나왔다는 순경이 조사할게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합디다. 그 순경 말로는 나이 든 사람이 혼자서 외딴 섬에 방을 얻어 놓고 있는 것이 수상하다는 거였어요. 전화나 전보는 어디에다 뭣 때문에 쳤느냐? 뭘 하는 사람이냐? 여기 섬에는 무엇 하러 왔느냐? 꼬치꼬치 캐묻는데 사실대로 애기해도 믿으려 들지 않습디다. 꼬박 4시간을 시달리고 나니 별도리 없었어요. 이병철의 이름을 밝히면 확실하게 믿어 주겠다 싶어서 (그렇게 밝히고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실은 내가 이병철의 아들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웃어요. 아니 숫제 확인해 보려고 하지도 않더군요. 그래, 나도 화도 나고 서글퍼서 지서장이라는 사람에게 대놓고 항의를 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잡아 둬도 되는 거냐?’고요…, 결국 서울 우리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치안본부인가 어딘가 어디서 직접 확인도 하고 해서 겨우 풀려나긴 했지만….> 이처럼 이맹희는 지난 12년의 유배생활 동안 재벌의 아들로서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의 삶도 아닌 말하자면 어느 계층에서도 소속되지 않은 소외된 생활을 해 왔던 것이다. < 내 생활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의 생활을 그래도 팔자 좋은 사람이 아니냐고 여길지 몰라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 고충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한국 최고의 재벌 이병철의 아들로서 집안의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 왔고요. 그렇지만 세상인심은 다르더군요. 이를테면 모모씨 아들이 포니 같은 차를 타고 다니면 남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차비가 떨어지면 버스 타고 경우에 따라선 라면을 끓여 먹고 담배가 떨어지면 길거리에 널린 담배꽁초를 주어 피어도 나는 관계치 않습니다. 어느 의미에선 차라리 거지 생활이 지금의 이런 생활보다 못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겁니다.> 이맹희의 이런 이야기는 그의 다른 형제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비교해 보면 누구라도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하다못해 이병철의 일본 첩에서 태어난 서자인 태휘도 지금 남산의 1백 평짜리 외국인 아파트에서 일본인 아내와 초호화판으로 살고 있다. 이들 태휘 부부가 한국 생활이 서툴다는 이유 하나로 2명의 삼성 직원이 파견 나가 살림을 도와주고 있다. <태휘가 타고 다니는 차가 얼마짜린 줄 아십니까? 벤츠 500, 1억 원이 넘는 승용차를 굴리고 다녀요. 동생 건희 부회장은 승용차만 해도 13대가 됩니다. 물론 명의는 각 계열사 앞으로 돌려놓았습니다만 한번은 건희가 동생 누군가에게 자기 차를 주었다가 다시 빼앗지는 못하고 돈으로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형제지간에 있을 수 없는 행동이어서 내가 꾸지람을 했다가 도리어 무안을 당했던 적도 있었어요>
나는 집 없는 천사요
기자는 맹희에게 <그러면 집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는 집 없는 천사가 아닙니까?>하고 대답했다. 조크라 생각되어 기자가 다시 물었더니 그는 정색을 하면서 <아, 웃지 마시오. 다 사실이니까…하긴 17년 전에 나도 필동에 450평짜리 내 집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생활비를 주지 않으시니 도저히 그 큰집을 유지를 못하겠대요. 처분해 버린 것도 벌써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현재 이맹희가 사는 곳은 서울 장충동 대지 80평짜리 집이다. 어머니 박두을, 부인 손복남, 아들 재연 내외 등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이맹희가 비록 경제권이 없는 가장이기는 하지만 결혼 30년째 되는 부인 손 씨와 의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슬하의 2남1녀 역시 다 성장해서 각기 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중 큰 아들 재연은 제일 제당 이사로, 올해 서른 살 된 딸은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남편과 함께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딸은 동양철학, 사위는 은행 경영학)을 하면서 살고 있다. 막내아들은 현재 대만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 유학 중에 있다. 맹희가 아버지 이병철과 대외적으로 접근이 금지 된지도 공식적으로는 17년째라 한다. 그러나 그 동안에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들 재연의 결혼식 같은 때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해마다 아버지 생일 때에는 맹희 혼자만 참석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기자는 맹희에게 <아무리 그렇지만 부자지간에 서로 오해가 있었다면 그 오해를 풀고 다시 부자가 화합하려는 뜻은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이 물음에 맹희는 <그 분의 성격으로 보아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나 역시 명색이 아들인 내가 아버지를 찾아뵙고 그저 잘했던 잘못했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엎드려 빌어야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도 나야 아버지께서 오라 하시면 좋지요. 그러나 효자 노릇하고 싶어도 받아주셔야 하지요. 사실 지난 10년 여 동안 갖은 모략과 수모를 당하면서 지금까지 참아 온 것도 내 딴에는 그래도 아버지인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정말 참을 수 없었을 그런 사실들이었습니다. 내가 그간에 죽으려고 몇 번이나 각오한 사람인데 아버지께서 죽으라면 죽겠고 그저 하라는 대로 하겠지만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가두려고 했던 것만은 거부하겠습니다.> 기자는 맹희에게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다손 치더라도 아버지 이병철 회장께서 그토록 괴롭히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까지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이 말에 맹희는 <우리 집안일인데 이야기할 수 없다>며 한사코 답변을 거부했다. 다만 <내가 자식들 가운데 가장 아버지 말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으니까>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 부자의 깊은 갈등의 사연이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고 그 씻기 어려운 사연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는 일본에 있는 태휘 어머니와 이병철, 그리고 장남 맹희와 응어리진 갈등이었으며, 그것이 이병철로 하여금 그처럼 유독 맹희를 경원시 했던 중요한 이유로 보인다는 것이 주변 이야기다. 다음으로는 후계자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병에 시달리고 있던 이병철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다 보니 78세의 노령인 그의 유고시 과연 누가 삼성의 대권을 잡을까? 를 염두에 둔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떻든 간에 아버지 이병철은 자신의 사후, 삼성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중 맹희의 컴백 가능성에 무척 신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스케일이나 성격으로 보아 유사시 장남 맹희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만있지는 않을 거라는 이명철의 나름대로의 추측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병철과 부회장 이건희, 그리고 포스트 이병철 측근들은 끊임없이 맹희를 견제, 약화시켜 왔다고 보는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그 때는 부산에서 낚시도 하고 가끔 친구를 만나 골프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와 동생 창희가 함께 나를 찾아 왔어요. 전에 없던 일이라서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었지요. 그랬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고 그래요. 두 사람 이야기인즉 이래요. ‘요즘 그룹 내 이상한 말들이 나돌고 있다. 삼성이 앞으로 2~3년 이내에 망한다고 하는데 그 소문을 맹희가 퍼트렸다. 그런 말을 했느냐, 안했느냐’는 거예요.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 그랬어요. ‘알다시피 나는 소문을 피해서 부산까지 내려와서 혼자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이다. 자꾸 왜 없는 말을 지어서 괴롭히려 드느냐?’고요. 그랬더니 창희가 그러더군요. ‘오해 받게 생겼어요. 삼성이 앞으로 몇 년 내에 망하는데 그 때는 형님이 나서서 바로 세우겠다라는 말 때문이에요’ 라고요. 그래서 그런 경우를 한두 번 당해 본 것도 아니고 또 한 번 치시는구나 생각하고 지나갔지요.> 맹희의 말에 의하면 이병철은 끊임없이 그를 견제하고 감시하고 그것도 미심쩍어 반응을 보려고 한 번씩 그렇게 해 본다는 것이다.
정신병원으로 보낼 납치계획도
<그것은 아버지가 의식적으로 시킨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조용히 계시는데 어머니까지 괴롭히면서 나에게 보내 나의 행동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것이지요.> <그것 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 괴롭히는 일도 있었습니까?> <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어떤 일이 또 있습니까?> <형사 출신이라는 작자가 줄곧 내 뒤를 밟고 다니며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비서실에서는 비서실대로 따로 나를 감시하고 조사합니다. 이 비서실만 해도 기업 경영에 전력을 기울여도 경쟁사회에서 부족할 텐데 남의 비위 사실이나 조사하고 다녀서야 되겠습니까? 삼성 비서실의 직원만 몇 명입니까? 250명도 넘지 않습니까? 이들은 각 계열사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무서운 시어머니요. 암행어사들 격입니다. 넌센스지요. 내가 삼성 경영을 맡아서 일했을 때는 비서실의 기능이 지금과 같지 않았어요. 정치도 권력이 너무 한 곳에 오래 집중하다 보면 부패하지 않습니까?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듣기로 요즘 삼성 비서실은 그 권한이 너무 막강해서 이를테면 비서실 말단 직원이라 할지라도 사무실에 온다는 소식이 접수되면 그 날부터 모든 업무는 올 스톱되고 청소부터 하기 바쁘다고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런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알고 가만히 내버려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항간에는 이병철이 매사에 꼼꼼하고 빈틈없는 자기 스타일에 아들 맹희를 짜 넣으려 하기 때문에 서로 불협화음이 생겼다는 말도 있다. 이병철과 아들 이맹희, 이들 부자지간은 일단 외모 상으로 봐도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아버지 이병철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어 보이는 편이라면, 아들 맹희는 일단 생긴 외모부터가 부친 쪽보다는 모친 박두을 여사 쪽을 더 많이 닮았고 평소 스타일이 크다는 그의 성격대로 선이 굵어 보이는 마스크다. 그러나 굳이 외모만을 따지기보다 서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이 더 부자지간을 소원하게 만든 하나의 이유로 보인다. <항간에는 일본의 작은 어머니 사건 때문에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는 견해도 있던데요?> <태휘 모를 내가 어떻게 아느냐하면 옛날 내가 일본에서 같이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아버지께서 그 여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알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그 이후 여러 소문들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그러한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 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남자의 입장으로서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 그뿐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기자가 다른 삼성의 관계자와 이병철 일가와의 접촉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 맹희는 아버지와 태희모와의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태휘모를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한편 끓어오르는 혈기를 못 참고 그 여자의 집기를 부수는 등 실력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이병철의 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는 것이다. 이병철로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자식이, 그것도 감히 작은 어머니에게 가서 행패를 부려…>하고 분을 품었을 법도 했다. 이병철은 당장 장남 맹희에게 달려가 눈에 띄는 골프채를 아들에게 내리치며 아예 끝장을 보려는 듯이 덤벼들었고 아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맹희는 태휘모에 대한 코멘트가 아님을 전제로 하고 골프채로 린치를 당한 사실을 시인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반신불수로 만들려고 작정을 하셨는지 골프채로 린치를 여러번 시도하셨습니다. 골프장에서가 아니라 집에서요. 물론 내가 일본에서 학교에 다니던 학생 때의 일이라서…이미 지난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이병철 회장이 극도로 화가 나서 골프채를 들고 아들 맹희를 때리려고 덤벼들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피하는 광경을 한 번쯤 상상해 보자. 그런 다음 지금까지의 이병철의 이맹희에 대한 태도와 맹희의 현재 생활을 유추해 보라. 부자지간에 만약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냉혹하다고 하는 이병철인들 그렇게까지 아들을 박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지 않는가? 더욱이 이병철로서는 미우나 고우나 자기의 죽은 후에 묘 자리를 돌본다거나 제사를 지낸다는 등의 일은 한국사회 관례상 맏아들인 맹희가 맡아서 할 것이 당연한 노릇이고 보면 그렇게까지 배척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 가슴 속에 맺힌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되는 것이다. 이런 사연들을 겹쳐 생각해 보면 이병철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맹희의 <후계자 가능성>을 어떻게든 없앨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법도 하다. 이병철은 일단 결정하면 그 실행에 있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섭도록 집요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장남 맹희의 완전무결한 제거 방법으로 그를 사회의 폐인으로 낙인찍어 재기하려고 해도 도저히 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계획을 만들었을 것으로 맹희는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활비 한 푼 없어서 좋고 다른 어떤 악질 소문이나 모함도 내가 그렇지 않으면 이겨내면 되니까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 보다 정작에 나를 괴롭힌 것은 가만히 있는 날르 정신병자로 만들어 이 사회에서 폐인으로 영영 매장시켜 버리려는 무서운 음모였습니다. 차마 나의 입으로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누군가 절대 명령권을 가진 자의 비밀 지시로 나에 대한 거짓 정신병자 진단서까지 꾸며 나를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음모는 하마터면 실행될 뻔도 했습니다. 그 거짓 진단서를 당시 한국 의학계에서 명망이 높았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신과 의사인 이모씨에게 재확인해 줄 것으로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평소에 나의 인격이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그 의사는 진단서 내용을 보고 ‘내가 알고 있는 이맹희라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가 정신병 환자라니 이런 엉터리 진단서를 도대체 누가 발급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깜짝 놀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정신병자로 몰려고 했던 계획을 포기했지만 그런 따위의 소문은 그 뒤로도 계속 나돌아 여전히 나를 괴롭혔습니다. 내가 변태성욕자라서 과부나 처녀를 같이 끼고 자야 잠을 잔다는 등의 소문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아무렇지 않자 그들은 나를 직접 납치해서 아예 정신병자 내지는 사회의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것은 치밀한 사전 준비 끝에 실행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맹희는 이 대목에서 몹시 흥분하기도 했다. 믿기 어려운,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는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 <사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 걸려있는 아버지 사진을 보면 어렵고 늘 앞에 계시는 것 같은 기분에 숙연한 마음을 가졌지만 온당한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려는 계획을 알고 나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때 삼성의 황태자로 그룹 일선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했던 그를 정신병자로 모는 모든 계획은 처음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계획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비정하고 가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첩보물을 다룬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대 재벌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가 직접 겪은 납치 체험담은 이런 것이 었다.
<나를 납치해서 천천히 정신 이상자로 만들려고 한 계획에는 깡패, 전직 기관원, 의사 등이 동원 되었습니다. 모두 돈으로 매수한 사람들이었지요. 납치 장소는 서울에서 450km나 떨어진 항구도시 부산의 후미진 곳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뒤에 알았습니다만 범인들은 5400만원짜리 단독 주택을 비밀리에 구입까지 해 두었습니다. 그 곳은 나를 납치해서 감금해 놓고 나 스스로 정신이상을 일으키게끔 약물을 투여하는 등 지독하다는 수단과 방법은 다 동원해서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납치 감금 장소로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을 선택한 것은 철저한 비밀보장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아파트의 경우라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에 뜨이기 쉽다는 점을 미리 계산했기 때문이겠지요.> <그 사건이 언제 쯤이었습니까?>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습니다(84년). 헬기로 강제 납치 소동을 벌였던 범인 일당들은 군 출신의 태권도 6단이라는 자, 깡패, 그리고 전직 형사출신이고 그중에는 부산 백병원 의사(사건 당시)였던 A씨도 관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 의사는 계획에 가담하는 조건으로 수천만원의 돈을 받아 쥐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밀실에 감금시킨 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약물을 강제 투입하여 나를 정신병자로 만든다는 것인데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즉, 그 약이 몸속에 퍼지면 모든 사물이 크게 확대되어 보이고 따라서 자기 자신은 한 없이 왜소하고 초라하다고 느끼게 되어 마침내 사람과 사물에 대할 때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대인대물 공포증에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뒤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KGB나 CIA 같은 외국 첩보기관에서 간첩들을 잡았을 때 사용한다는 약을 내게 사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 주사를 맞으면 쥐새끼 한 마리가 사람보다, 즉 자기 몸보다 몇 배나 커 보이고 정작에 본인은 쥐새끼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얼마나 소름끼치는 노릇입니까? 그런 주사를 강제로 여러 차례 맞기만 하면 그저 쥐새끼처럼 발발 떨고 보는 것마다 피하려 들어 정신병자라는 판정을 받고 영락없이 정신병원에 수용될 터였습니다. 그러나 납치하러 온 범인 일당들이 나를 끌고 가려했을 때 나는 사력을 다해 버티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물리친 겁니다. 내 집을 습격한 그들 중 일부는 내 소지품이나 옷가지 등 간단한 생활용품만 보따리에 싸서 차에 싣고 떠나고, 남아 있던 완력을 쓰는 자가 나를 붙잡으려고 덤벼들었어요. 나는 순간적으로 ‘여기서 끌려가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곁에 있던 휘발유를 그 자의 온몸에 뿌렸습니다. 그리고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나를 잡으려는 일당들은 급했던지 창문을 깨고 도망치더군요.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던 겁니다.> 하마터면 납치당해 정신병자가 될 뻔했다는 맹희의 이런 체험담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기에 더욱 충격적이기만 하다. 재벌그룹 이병철 집안에서 일어난 비빌 사건이었던 관계로 이 사건은 지금까지 쉬쉬하는 가운데 끝났다고 하지만 한 때 이맹희는 그들을 고소하려고 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납치계획 주도 범인은 누구?
그렇다면 사건의 뒤편에서 계획하고 실행지시를 내렸던 배후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어쩌면 살인 행위보다 더한 정신병자 조작을 꾸민 지시 명령권자는 누구인가? 그러나 맹희는 그 배후의 최종 핵심 인물을 말하는 것을 끝내 사양했다.<여기서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낱낱이 밝히고 심판을 받게 하고 싶지만 그러나 이 사건이 워낙에 나 자신에게 충격적이었던 만큼 사건 관련자들에게도 양심에 찔리는 일일 것이어서 일단 그들의 속죄를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 됩니다. 다만 계획을 꾸미고 실행하는데 있어 야전 지휘관 노릇을 맡았던 자는 삼성 그룹 비서실 소병해 실장과 중앙일보 이종기 사장이었음을 밝힙니다> ‘이맹희가 말하는 소병해 실장이란 누구인가?’ 서울 성균관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 비서실에 들어온 이래 줄곧 이병철 회장의 비서이자 측근 브레인으로 총애를 받기 시작, 삼성그룹에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비서실장으로 이병철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룹 내에 권한이 막강하다 하더라도 총수의 장남을 납치 계획하려는 엄청난 계획을 그 스스로 꾸미고 실행했다고는 얼핏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도 아니면 과잉충성 탓일까? 또 중앙일보 이종기 사장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한국의 유수한 언론사 사장이 뭐 할게 없다고 사람이나 납치하려 들겠는가? 그러나 중앙일보라는 것도 삼성그룹의 지시를 받고 있는 곳이고 보면 이종기 사장이 주모자라는 맹희의 말은 일단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연히 신라호텔 식당에서 종기를 만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 따로 들어 두었던 말도 있고 해서 물었습니다. ‘종기야, 너 그 뒤 왜 모모씨 고소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랬더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하고 능청스레 시치미를 떼요. 순간 벌떡 화가 치미는데 참기 어려웠습니다. 나와 매부라는 것도… 그런 그가 하물며 그런 짓을 하다니… 나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집어 던지며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 쳤어요. 처남이 와서 말리는 통에 그자가 허겁지겁 달아났습니다만…그뿐 아닙니다. 이종기라는 그 자는 모 기관 공무원을 찾아가 ‘맹희를 잡아넣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는 증거가 있어요. 물론 그 자신도 시켜서 하는 짓인 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입장이 곤란해도 제3자를 시켜 ‘이런 일 하고 있다’고 귀띔해줄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적어도 자기 의사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종기가 부탁한 그 기관 공무원은 그랬다고 합니다. ‘공적인 일도 아닌 사적인 그런 일에 관여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는 이맹희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부인 자식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나는 함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잘 안다. ‘또한 남에게 굽히지 못하는 성격이 흠이라면 흠이긴 하지만…’ 종기는 무안했던지 다시는 그 사람에게 내 애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에 위에는 ‘됩니다, 곧 됩니다.’라고 하면서…다른 누가 나를 괴롭힌다 해도 종기 그 자가 나를 학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 덕자(덕희- 이병철의 소실에서 난 네째 딸)와 결혼했을 때도 그랬고 다른 회사에 과장자리에 있던 그를 내가 이사로 앉혀 주기까지 했는데 나를 잡아먹겠다고 모략까지 꾸미니 어찌 배은망덕한 노릇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이맹희가 털어 놓는 이런 여러 가지 사연들을 계속 지면에 올리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그 사연이 많다. 적어도 지난 12년의 유배생활 동안 그가 한국 제일의 재벌 맏아들로서 남모르게 겪어야 했던 사연들이기에 더욱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의 시선도 가능하리라 본다. 다만 재벌 아들로서 지난 12년 세월이 누구 말마따나 <주유천하>의 세월이었는지 <와신상담>의 세월인지는 맹희 자신만이 알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