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글쎄올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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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지난 95년 방영된 TV드라마 <제4공화국>엔 박정희 대통령의 재혼과 퍼스트 레이디였던 맏딸 근혜양의 결혼 얘기가 나옵니다. 공화당 원내총무인 김용태가 근혜에게 결혼을 하라고 권유하자 “나를 청와대에서 내쫒으려는거냐”고 그녀는 화를 냅니다. 김용태는 “대통령의 식사를 수발할 여자가 필요하다”면서 박정희의 재혼과 근혜의 결혼 얘기를 꺼냈다가 이렇게 툇자를 맞지요.
경호실장 차지철이 혼잣말로 “각하가 재혼을 하셔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74년 8월 15일 영부인 육영수가 테러리스트 문세광의 총탄에 쓰러진뒤 박정희 대통령의 내면은 급격히 무너집니다. 무서운 철권 통치자에서 하루새에 외롭고 쓸쓸한 홀아비의 몰골이 됐지요. 박정희는 밤이면 혼자 썰렁한 청와대 2층 내실에서 가끔 단소를 불며 망처(亡妻)를 향한 그리움을 달랩니다. 적적함을 이기지 못해 술을 자주 찾고 과음도 잦아 비틀거리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고 통치자로서의 판단력과 분별력, 평정심이 흐려지고 그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라던 용인술도 무디어져 갔습니다. 권력남용이 자심하던 경호실장 차지철과 무능한 정보부장 김재규, 정치의 정자도 모르던 비서실장 김계원을 제때에 내치지 못해, 이런 판단착오가 결과적으로 10.26 사태의 불씨가 됐습니다.
청와대 참모진과 여당인 공화당의 고위 인사들이 대통령의 재혼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시점은 육여사가 서거한지 1~2년후입니다. 박대통령 자신도 재혼에 뜻이 없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헌데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맏딸 근혜가 문제였지요. 대통령은 딸을 결혼시키고 퍼스트 레이디의 빈자리를 재혼 처가 자연스럽게 이어받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헌데 근혜는 결혼보다 퍼스트 레이디 자리에 더 집착했습니다.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20년전에 출간한 책 <청와대 비서실>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박 대통령은) 재혼이 필요했으나 여러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맏딸 근혜양이 먼저 결혼해 주길 바랐으나 근혜양은 퍼스트 레이디 역할에 열중했으며 새마음봉사단같은 대외활동에 푹 빠져 있었다. 게다가 근혜양 옆에 붙어있는 최태민이란 인물에 따라붙은 잡음도 적잖은 골칫거리였다. 막내 지만군의 방황도 (박정희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육사에서 외출나오면 지만군은 종종 아버지를 찾기전에 나이트클럽으로 직행하곤 했다. 한 측근은 ‘박태통령이 울면서 아들의 종아리를 때린적도 있다’고 했다….”


박정희가 물려준 ‘독재 DNA’


엊그제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손학규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박근혜를 “퍼스트 레이디 하느라 남자와 교제도 못하고, 섬에 갇혀 살았던 희생자”라고 평했습니다. “권위주의적 정치가 몸에 배 있고, 민주주의가 훈련되지 않은 그녀의 리더십이 과연 앞으로 올 국가적 난관을 헤칠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도 했습니다.
“민주주의 훈련이 안된 권위적 리더십”이라는 손학규의 박근혜 비판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최근 부쩍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박근혜의 ‘불통 정치’라는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헌데 “퍼스트 레이디 하느라 남자와 교제도 못한 희생자”라는 촌평은 다소 생뚱맞습니다.
박근혜는 남자와의 교제는커녕 결혼자체를 거부하며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즐겼습니다. 그가 부친의 바램대로 결혼을 해 청와대를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박정희는 재혼은 해 육영수를 대신한 새 퍼스트 레이디에게 청와대 안살림을 맡겼을 겁니다. 육영수여사 상실에 따른 자기소모적 방황을 끝내고 국정에 좀더 열중했을테지요.
젊은 여자 탤런트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리는 이른바 ‘궁정동 밤행사’라는 것도 없었을테고 따라서 10.26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절대 권력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권력의지는 남달랐습니다.
어린 처녀가 참변을 당한 어머니 대신 퍼스트 레이디를 하느라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권력 핵심부의 많은 ‘아저씨’들은 “근혜야, 고생 그만하고 시집이나 가라”고 인간적 충고를 했습니다. 헌데 그녀는 이런 선의의 권유와 충고를 “나를 청와대에서 쫓아내려고 그러느냐”고 엉뚱하게 맞받았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생래적(生來的)으로 특정 ‘정치 DNA’를 물려 받았든지, 아니면 퍼스트 레이디 생활 자체를 병적으로 즐기며 집착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박근혜의 이같은 권력지향적 퍼스낼리티는 아버지 박정희와 제3공화국의 운명을 바꿔놓은데 일정 몫의 역할을 했습니다. 제3공화국이 무너진지 33년만에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무서운 권력의지는 살아있는 또 하나의 역사로 꽃을 피우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최초의 부녀(父女) 대통령을 꿈꾸며 박근혜가 비상(飛翔)의 날개를 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돼도 걱정, 안돼도 걱정


7월 10일, 새누리당의 ‘절대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는 12월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선언하는 출정식을 가졌습니다. 그의 대권도전은 2007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사용할 슬로건으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내걸었습니다. 여기서 ‘내’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 영어로는 everybody의 뜻이겠지요. 헌데 많은 이들에게 ‘내’는 ‘나’, 즉 박근혜 자신을 뜻하는 일인칭 명사로 들립니다.
박근혜 캠프는 시대적 과제인 변화와 박후보의 정치철학을 상징하는 민생, 그리고 유권자가 원하는 ‘개인화’ 등을 키워드로 이 슬로건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허지만 ‘나’를 박근혜로 치완해 읽어 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간절히 바라왔던 것을 이번에 꼭 이뤄내고 싶습니다. 또 이번은 저의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구요….”
박근혜의 인기는 최근 다소 주춤해 졌습니다. 김문수 정몽준 이재오 등 소위 ‘비박 3인방’이 주장한 국민참여방식 완전경선을 박근혜가 매몰차게 거절하고 사실상 추대나 다름없는 후보경선 방식을 고집하자, 국민여론은 차갑게 식었습니다. 비박주자들은 결국 경선포기를 선언했고, 박근혜의 이같은 불통정치는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래도 그는 안철수와의 가상대결에서는 아직도 4~5% 정도의 격차로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지도는 45%에서 50%를 넘나듭니다. 박근혜의 당선가능성을 믿는 국민은 여전히 60%를 넘습니다.
헌데도 보수층 일각에서는 요즘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회의가 만만찮게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그의 독재적-독선적 불통정치가 과거 이회창때처럼 또다시 ‘다된 밥에 코 푸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입니다.
지난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의석수에서는 야당을 눌렀지만 총득표수에서는 밀렸습니다. 박근혜의 정치적 승리였다고 하지만 실은 ‘나꼼수’출신 야당후보 김용민의 막말파문으로, 야당으로 갔을 15석 정도를 새누리당은 거져 챙겼습니다.
이번 대선은 지난 총선보다는 투표율이 10%정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젊은층이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중도층일 가능성이 높지요. 박근혜의 우군은 결코 아닙니다. 박근혜는 더구나 40%가 넘은 유권자가 몰려있는 수도권에서 취약합니다. 김문수 정몽준 등 당내 경쟁자들과는 거의 적(敵)이 됐습니다. 이들이 갖고 있던 5~10%의 지지층이 이탈하면 치명적 악재가 될수도 있습니다. 이번 대선은 여야 어느쪽이 이기든 1~2% 차의 박빙승부가 예상됩니다. 따라서 박근혜는 지금부터라도 ‘비박 3인방’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헌데도 그의 주변은 온통 예스맨뿐입니다. 그에게 어줍쟎게 직언을 하거나 그의 결정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곁에 남아나지 못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야당 대선후보인 김두관은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 아닌 독재자 자신”이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열렬한 지지자이면서 그의 당선을 간절히 바라는 보수진영 인사들 중엔 “박근혜가 대통령이 안돼도 걱정이지만 돼도 걱정”이라고 말하는 이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명박 찍고 복장터진 사람들이, 박근혜 찍고 또다시 속터져 앙앙불락하는 날이 오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012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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