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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0여년에 달하는 부득이한 휴간기를 거친 <선데이저널>은 2003년 4월 13일자 지령 403호 복간호를 발행함으로써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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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이라는 의미있는 해를 기념해 지난 1992년 일간지로의 대대적 변신을 꾀했던 <선데이저널>.
그간 축적된 주간지 제작 경험과 동포들의 적극적 후원을 발판 삼아 마침내 미주 한인사회에서 두번째(첫번째는 나성신보)로 독자적 첫 로컬 일간지인 <LA 매일신문> 창간이라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이미 지난 제5화에 상세히 소개된 대로 <LA 매일신문>은 국내외 정가를 강타했던 ‘YS의 숨겨진 딸 가오리’ 사건을 특종 시리즈 기사화하는 등 크나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미주 한인사회를 무대로 배포됐던 미주 한국일보-미주 중앙일보 등 기타 조간지와는 달리 유일하게 석간으로 제작됐던 <LA 매일신문>은 남다른 시각의 기사들로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창간 3개월 만에 돌연 4.29 폭동이 발생해 광고영업이 급격히 저하되는 등 심각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간되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뒤돌아보면 본국 기반으로 재정이 튼실했던 기타 일간지들과 달리 광고시장 위축이라는 최대 악재라는 것이 영세 신문으로서 도무지 넘기 힘든 벽으로 작용했고, 특히 4.29 폭동으로 만연된 미주 한인사회의 불안한 사회 현실은 새로운 일간지로의 변신을 좌절케 했던 셈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LA 매일신문>을 폐간해야 되는 숙명적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발빠르게 <선데이저널> 주간지를 재발행함으로써 언론으로서의 명성과 사명을 지켜내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간지 사업확장에 따른 후유증 등 버거운 짐은 끝내 경제계 불황과 맞물려 <선데이저널>이 지난 1994년 7월 지령 402호를 끝으로 머나먼 휴식을 취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
한편 <선데이저널>은 무려 10여년의 가까운 공백기를 깨고 지난 2003년 4월 지령 403호 복간호 발행과 함께 화려한 재기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편집자주> 미주 한인 교민사회의 대표 주간지로서 동포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때로는 동반자로서 때로는 사회 감시자로서 동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선데이저널>.
아울러 1982년 창간 이래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는 등 반정부 신문으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는 동시에, 한국의 수많은 정관계, 재벌 인사들의 망국적 외화 해외 도피행각을 집중 취재해 공개함으로써 소위 ‘특종신문’이라는 애칭을 부여받기에 충분했다.
창간 10주년을 기해 <LA 매일신문> 일간지 창간으로 로컬 대표 언론사로서 제2의 부흥기를 꾀했으나, 지난 1992년 4.29 폭동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겨날 줄은 미처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결국 심각한 재정난에 부딪혀 창간 12주년을 목전에 둔 1994년, 지령 ‘402호(7월 3일자)’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돌입함으로써 애독자들과 아쉬운 이별을 고해야 했다.
화려한 재기…2003년 복간을 꾀하다
이렇듯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선데이저널>의 위기는 지난 2003년 4월 13일 지령 403호 복간호 발행과 함께 화려한 재기에 성공함으로써 보란듯이 주위의 기우를 씻어냈다.
무엇보다 <선데이저널>의 복간을 반긴 이들은 다름 아닌 애독자들이었다. 이는 80-90년대를 풍미하며 해외 언론으로서 반정부 신문활동과 함께 독보적 특종 행렬로 꾸준히 관심을 모았던 매체의 저력을 여실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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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월간조선 8월호는 <선데이저널> 연 훈 발행인과 조풍언 씨와의 최초 인터뷰 내용을 특집 기사화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
| 또한 애독자를 비롯한 광고주 등 후원자들은 마치 복간을 기다렸다라는 듯이 일제히 반가움의 환호성을 표했다. 더구나 복간과 함께 <선데이저널>은 시대적 흐름과 요청에 발맞춰 인터넷 홈페이지 <www.sundayjournalusa.com>를 구축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독자층의 확대를 일궈내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복간호를 기점으로 특종 시리즈 기사로 다뤄진 이른바 ‘조풍언 게이트’. DJ 정부의 7대 의혹사건의 하나로 꼽혔던 이 사안을 집중 추적함으로써 또 한번 <선데이저널>은 국내외적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매체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연 훈 발행인은 2003년 5월 지령 407호를 통해 ‘조풍언 드디어 입을 열다’라는 제하의 단독 인터뷰에 최초로 성공함으로써 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당시 <선데이저널> 홈페이지에는 ‘조풍언 게이트’ 시리즈 기사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수만 건의 조회가 이뤄지는 등 국내외 네티즌과 독자들의 열독률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선데이저널>의 복간과 동시에 국내외를 깜짝 놀래킨 무기중개상 조풍언씨와 김대중 정부의 특혜의혹 집중보도는 이후 일요신문 등 국내 언론사들이 앞다퉈 인용 보도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발행인과 조풍언 씨와의 최초 폭탄 인터뷰 기사는 같은해 월간조선 8월호에 <미국 LA 선데이저널 USA 연 훈 발행인>의 기고형식으로 특별 인터뷰가 실렸다. ‘김대중의 일산 집을 산 무기상 조풍언의 충격실토’라는 제하의 이 특별기사는 결국 김우중-DJ-조풍언으로 이어지는 삼각 커넥션 관계를 들여다보는 최초의 시발점을 제공함과 동시에 훗날 역사의 재평가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선데이저널>은 조풍언 씨의 최초 인터뷰 이후에도 지속적인 추적 탐사보도를 통해 미래은행(현재 폐쇄) 지분취득, 캘리포니아 컨츄리 클럽 등 골프장 매입, 대우정보시스템의 사실상 최대주주로서의 돈흐름 관계 추적 등을 끊임 없이 펼침으로써 결국 조 씨가 한국에서 구속되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언론계의 영원한 성역…삼성그룹에 맞서다
이렇듯 <선데이저널>은 복간 이후에도 일부 몰지각한 정관계 인사를 비롯한 재벌가 자제들의 라스베가스 도박행각 등을 추적 보도하고, 망국적 해외재산 은닉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탐사보도함으로써 언론의 취재 사각지대를 부정하는 대표 언론으로 재정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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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선데이저널>을 통해 다뤄진 ‘삼성그룹 이재용 비자금 기사’를 다룬 시사저널의 제830호 관련기사(2005년 9월 2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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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선데이저널>은 지난 2003년 제432호(11월 6일자)를 시작으로 한국의 대표 재벌기업인 삼성가 황태자 이재용 씨의 ‘망국(亡國)적 해외 비자금 운영’에 대한 고발기사를 집중적으로 다뤄 충격을 전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그 어떤 언론조차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성역. 바로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 당시 상무의 비밀 히스토리를 여과없이 파헤침으로써 현재까지도 그 진실 공방전이 한창인 상태다. 당시 이 기사의 주내용은 황태자 이재용 씨가 과거 유학생 시절인 지난 95년 약 10억 2천만엔(한화 100억원 이상)에 달하는 거금을 일본 증권가에 투자했던 흔적을 추적해내는 등 집중 고발기사를 다뤘던 것이다.
보다 이 기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이재용 씨가 지난 95년 7월 경부터 총 3차례에 걸쳐 스위스 소재 UBS 은행 본점 계좌로부터 중간책을 거쳐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씨에게 건넸다”는 구체적 진술과 증언자료를 제시함과 동시에 “이렇게 비밀리에 투입된 약 10억엔의 자금은 동경소재 UBS 지점에서 현금으로 인출돼 조희준 씨에게 전달돼 일본 증권가 투자로 이어졌다”는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울러 <선데이저널>은 삼성가 황태자 이재용 상무의 ‘해외 비자금 운영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조희준 씨가 이재용 씨에게 넘긴 10억엔 약속어음(Promissory Note)’까지 공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이러한 충격적 보도 내용은 그 증거 및 자료가 방대했음에도 정작 2003년 최초 기사화 당시에는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2005년경 이른바 ‘X-파일 파문’ 등이 불거지면서 ‘안티 삼성’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자, 한국의 언론 방송사들이 뒤늦게 <선데이저널>의 2년전 기사를 끄집어내 재해석을 꾀함으로써 새 국면을 맞기에 이른다.
결국 한국의 대다수 언론 방송사들은 <선데이저널>에 의해 최초로 공개됐던 스위스 은행의 계좌, 원금보장각서 작성과정, 그리고 자금 흐름도 및 헤지펀드 투자기록 등 수많은 자료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 방송사들은 이 당시 <선데이저널>과의 접촉을 통해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취재를 끝마쳤음에도 삼성가의 이른바 ‘광고’를 통한 길들이기 전략에 하나같이 모두 무너져 내렸던 게 사실이다.
그나마 한국의 주간지 시사저널만이 지난 2005년 9월 삼성 대특집호를 발간하면서 <선데이저널>의 보도를 인용해 ‘선데이저널의 이재용 비자금 보도 음해인가, 대특종인가’ 제하 보도로 의혹에 불을 지폈다고나 할까.
하지만 시사저널마저 <선데이저널>의 이재용 비자금 파문을 간접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삼성그룹 고발기사를 지속하던 도중 경영진이 삼성그룹 측으로부터 적잖은 압력(?)을 받았다. 결국 시사저널 또한 삼성그룹 고발기사를 끝끝내 중단하게 되자 이에 맞선 기자 등 직원들이 현재의 <시사 in>이라는 독립적 매체를 창간해 새 출발하게 되는 계기를 맞기도 했다.
한편 창간 이래 수많은 명예훼손 등 고소를 거듭했던 <선데이저널>은 최고의 대특종으로 평가받은 ‘이재용 비자금’ 기사와 관련해서는 현 시점까지도 삼성그룹으로부터 그 어떤 정정보도 요청 및 소송제기 등의 위협을 겪지 않은 것은 기막힌 일이다. 일절의 대응을 거부하고 있는 삼성그룹 측의 태도를 고려했을 때, <선데이저널>의 지난 특종기사는 언젠가 사실로 드러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제7화 선데이저널 화제의 특종 BBK 의혹은 아직도 진행형-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