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박근혜 의원이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됐다. 박 후보는 사실 10년 이상을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어 왔지만 사실상 본선에 나서는 것은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후보 1위로 거론되는 만큼 그에 대한 검증공세 또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전에도 그에 대한 검증공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 출마했을 때도, 이번 경선과정에서도 경쟁후보들은 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본선에서 펼쳐질 검증공세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이미 야당에서는 박 후보와 관련한 히든카드를 여럿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본지가 보도했던 대로 박 후보와 관련한 검증공세는 절반 이상이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박 후보가 본선 후보로 결정되자 본국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최태민 관련 의혹들을 보도했다. 한국일보의 경우 ‘박근혜 의혹, 태반이 그 남자와 관련됐다’는 제목을 뽑았다. 지난주 이미 본지가 뽑았던 제목 ‘최태민, 박정희 일가 모든 불행의 원초적 시발점’과 유사하다. 본지가 공개한 최태민 목사 관련 중앙정보부 보고서에는 박 후보와 관련된 내용들이 여럿 나온다.
박 후보의 젊은 시절에 최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로 점철됐다면, 현재는 최태민 목사의 딸인 최순실 씨와 그의 남편 정윤재 씨와 관련된 의혹들이 정치권에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2004년 박근혜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도, 지금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활약 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에 본지는 지난주 최태민 목사에 이어 금주에는 최순실–정윤회 부부와 관련한 의혹들을 파헤쳐봤다. <리챠드 윤 취재부기자>
정윤회 씨가 박근혜 후보와 관련해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최태민 씨의 사위이면서도 박 후보의 정치입문 초반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즉 정 씨가 박 후보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한다는 것은 여전히 최 목사의 그림자가 박 후보에게 드리운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이 확인되면 최태민 의혹은 박 후보에게 과거진행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말도 가능하다. 박 후보 측은 현재 정 씨와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됐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박 후보가 정 씨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는 박 후보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인 1990년대 중·후반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제과점을, 강남구 청담동에서 ‘풍운’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하자 그의 보좌관으로 합류하며 최측근 역할을 했다.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특히 2002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총재로 취임했을 때는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는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정 씨가 여전히 박 후보의 뒤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특히 “정씨가 2007년 대선 때 박근혜의 비선 조직인 ‘삼성동팀’을 이끌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또 “정씨가 박 후보의 주요한 의사 결정에 여전히 관여한다” “정윤회 보고 라인이 있다” “4·11 총선 공천에 정윤회가 영향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정 씨가 끊임없이 박 후보의 배후로 거론되는 것은 박 후보의 정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박 위원장은 사석이나 비공식 회의에서 참모나 의원들로부터 건의나 조언을 듣고 ‘동의–공감’의 뜻을 표명해놓고도 다음 날 이를 뒤 짚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분명 박 위원장이 누군가와 의논하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 주변을 취재해 보면 이른바 그 ‘배후’가 누군지 모른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누군지 전혀 포착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윤회 씨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정 씨에 대한 의혹을 철저하게 부인했었다. 박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1998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 상대 후보(엄삼탁)가 안기부 기조실장 출신으로 기세가 등등한 상황에서 정씨가 순수하게 도운 것”이라며 “그게 인연이 돼 (저를) 돕다가 당대표(2004년) 때 그만뒀다”고 했다. 박근혜는 당시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윤회 비서는 능력이 있어 도와달라고 했고,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는 지난 2007년 월간조선 서면 인터뷰에선 ‘(정씨가) 육영재단 때부터 일을 도왔고 성실한 사람이다. 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많이 맺는 편도 아니지만 여간해서 인연을 끊는 사람은 아니다’고 했다.
현재 박 후보 측은 “정윤회를 최근 몇년 사이 본 적도 없으며, 그가 공천 등에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박 후보 측은 또한 “정씨에 대해 많은 억측이 존재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씨는 2004년 이후 박근혜 후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 거부 최순실
정 씨의 부인인 최순실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 째 딸이다. 현재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최순실은 박근혜와 20대 때 말동무로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 씨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거액의 재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최 씨의 재산이 박 후보의 차명재산이란 말도 나온다.
최순실 씨는 29살이던 1985년 9월 신사동 대지 357.8㎡(108평)를 공동 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최 씨는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이 건물 시가가 160억~200억 원대라고 말한다.
7층 짜리 건물의 5층에 바로 정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얀슨’이란 회사가 입주해 있다. <선데이저널>이 얀슨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 회사는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했고,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했다.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했다.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의 업종을 신고해 오늘에 이른다.
정치권 일각에선 최순실이 신사동 땅을 사들인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음을 거론하며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상당 규모의 자산을 물려받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위원회는 “최태민은 1975년 박근혜를 처음 만날 당시에는 서울 불광동의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서 전화도 없이 살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 씨의 재산과 관련된 의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도 크게 논란이 됐었다.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예비후보 캠프의 좌장이었던 이재오 최고위원은 “검찰이 이명박 후보 일가의 재산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각종 의혹을 흘리면서 최순실 씨의 재산이 누구의 차명재산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최고위원은 최태민 씨의 다섯번째 부인의 아들인 조순제 씨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에게 보낸 탄원서에는 ‘최태민 씨 일가가 가난했다는 데 어떻게 빌딩 소유주가 되고 수백억대 재산가가 되었냐?’며 의혹이 밝혀져야 한다고 도 주장했다.
이에 최순실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검증위원회에 보낸 서면답변서에서 “나는 당시에 대학교에 들어갔다. 내 바로 위의 언니도 대학을 졸업했는데 무슨 단칸방이냐? 완전히 조작된 거짓말”이라며 “당시 부모님은 서소문 근처 2층 양옥집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육영재단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름이 등장한다. 최 씨가 “회관 운영에 개입해 전횡을 한다”는 요지였다. 이와 관련해 박 후보의 동생인 박근령 씨와 박지만 EG회장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A4용지 5장 분량의 탄원서(8~9면 참조)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지난 2007년 “최순실이 아버지가 고문으로 있는 육영재단 돈을 횡령해 그 자금으로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폭로했다가 구속된 전 한나라당원 김해호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최순실 측은 “20여년 전 압구정동·신사동이 형성될 초기 그곳에서 몬테소리 유치원을 시작했는데,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 현재 시가를 형성한 것”이라며 “재단에서 불법적으로 빼돌린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해서 수백억대 자산을 형성했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