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이채진 박사는 “통일을 위한 역사적 시각”이란 주제로 한반도에서 남북통일을 위해 역사는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조명했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가 1945년 일본의 항복에서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이 박사는 일부 학자들이 미국이 38도선을 그은 것은 당시 조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미국이 행한 것이라는 논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그가 수집한 찰스 본스틸(38도선을 경계선으로 제일 처음 기초안을 만든 사람) 대령이 남긴 개인서신을 소개했다. 본스틸 대령은 ‘수도 서울이 38도선 이남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고, 옛 왕조의 수도인 개성도 38도선 이남에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만약 39도선을 분활선으로 할 경우, 스탈린이 동의를 안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38도선 분활 점령 실시를 위해 미군과 소련군이 공동으로 답사하면서 실수를 했다는 점도 밝혔다. 한반도는 38도 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정이 실시되고, 북쪽은 소련군이 군정을 폈다. 카이로 회담 과 포츠담 회담 등을 통해 미국과 소련은 종전이 되면 적절한 시기에 통일을 하도록 약속 했으나 구체적인 사항은 미소공동위원회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 회담도 실패로 끝났다. 이채진 박사는 한반도 분단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6.25전쟁이라고 지적했다. 6.25전쟁에서 북한군은 준비된 인민군과 소련과 중국측의 지원으로 파죽지세로 서울을 3일만에 점령했다. 8.15광복 기념일때까지 남한 전체를 점령한다는 작전계획이었다. 하지만 애초 기대 와는 달리 미국의 신속한 참전으로 김일성의 무력통일 계획은 큰 차질을 빚었다. 전선은 9월 14일에 대구 부산 교두보에서 마지막 혼전이 계속되던 중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으로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전선이 38도선 이북으로 확산되면서 UN군이 한반도와 중국 국경에까지 이르자 UN에서도 한반도 통일 논의가 내부적으로 진행되면서 통일후에는 한반도 중립화를 모색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평양과 원산 등을 방문하여 통일 의지를 밝혔다. 평화협정은 가능한가 6.25전쟁의 휴전조약은 1953년 7월 27일에 조인됐다. 분단의 고착화가 시작됐다. 이후 지금까지 휴전조약을 대치하는 평화협정 문제가 대두되었다. 하지만 과연 평화협정을 하게되면 과연 누가 당사자인가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채진 박사는 통일문제는 주변4강의 입장 을 조율해야 하고, 이상론을 버리고 현실주의 입각 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통일 이후를 위한 대외 정책에서도 선린외교로 나아가며, 한반도 주변 세력균형을 조화시키기 위해, 장기적 중립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날 연사들은 남북통일 문제에 재외동포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국의 정치 지도자나 국민들에게 초당적 외교를 하도록 영향을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국제적 환경을 조화 시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일을 위해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개선에 영향을 주면서 장기적으로 볼 때 북미간의 접촉을 인정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재외동포사회에서도 이념대결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현상은 재외동포 사회가 국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도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대 동창회는 미주 각 지역에 26개 지부를 두고 있는데 지난해 8년 만에 동창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LA로 옮겨와 김은종 회장을 주축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제학과 59학번인 김 회장은 “서울대 법인화 시행 등 세계 유수대학 대열에 들어서는 모교를 위해 동창회 차원에서 발전기금을 모아야 한다”며 “현금 기탁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모교 발전 기금을 조성하는 캠페인을 지속해 장학 사업은 물론 교수 연구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에 따르면 11대 집행부의 주력 사업은 ‘브레인 네트웍’ 구축 및 미주 동창회관 건립을 위한 작업이다. 지난해 동문의 경쟁력과 인적 네트웍 강화를 위해 서울대 출신 석학들을 초청해 정치, 경제 세미나를 개최한데 이어 앞으로는 정치, 경제, 자연과학 분야까지 확대시킨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다. |
본보가 극비리에 추진한 ‘김영삼 前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 가오리 양의 생모인 이경선 씨와의 전격 인터뷰’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국의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유력 월간지인 ‘월간조선’ 3월 호는 ‘본보 발행인(연 훈)과 이경선 씨와의 전격 인터뷰 기사’가 포함된 ‘김영삼의 숨겨진 여인이라는 이경선 입 열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본보가 지난 92년부터 끈질기게 추적 취재해 기사화하고 있는 ‘김영삼 前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 보도 공방전’과 관련해 이번 월간조선의 보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모습이다. 전직 대통령의 사생활 비리가 담긴 이 기사로 인해 ‘월간조선’ 3월 호 판매량이 부쩍 느는 등 입소문이 번지고 있는 상태라 ‘YS 상도동 측’마저 이례적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번 기사는 ‘김영삼 씨가 안기부 김기섭 前 기조실장을 통해 이들 모녀에게 대통령 재직 및 퇴임시절을 합해 지난 93년부터 수 차례에 걸쳐 총 23억원의 거금을 건넸다’라는 이경선 씨의 충격폭로 내용을 담고 있어 이 같은 내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자금조달’ 문제와 관련해서도 파문이 번질 전망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 자금이 舊 안기부의 국내 및 해외비자금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크게 비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관련 YS 상도동 측근들은 이번 월간조선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관련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기는 하나, 이경선 씨의 충격폭로 내용이 점차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김영삼 前 대통령의 도덕성에 흠집이 나고 있는 형국이다. 이로써 지난 92년 2월 제14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당시 본보의 자매지였던 LA 매일신문이 3회에 걸쳐 당시 ‘집권당인 민자당의 대표였던 김영삼 씨에게 30년 전 버려진 딸이 있다’고 기사화함으로써 촉발된 ‘김영삼 씨의 숨겨놓은 딸 공방전’과 관련 진위여부에 종지부를 찍을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