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임을 경찰이 떠안은 셈이다. 검경수사권 독립이란 첨예한 이슈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이 사건을 떠안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첨예한 시기에 경찰이 왜 나섰나 김기용 경찰청장은 이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지난 7일 “경찰이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있지 않느냐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확인한 결과를 말씀드리는 것이 당연한 수사기관의 책무”라고 해명했다.
경찰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16일 밤 11시 보도 자료를 배포하기 전 수서경찰서에 김 씨의 노트북을 분석한 결과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에는 김 씨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ID와 닉네임이 각각 20개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ID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서경찰서는 이틀 뒤 서울경찰청에서 하드디스크 실체와 세부적인 분석 자료를 넘겨받고 나서야 구글링(구글을 통한 검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경찰 측은 “원래 분석을 거친 하드디스크와 세부 자료는 바로 이첩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파일 추출 및 분류 등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16일 밤 ID 개수까지 확인된 상황에서 구체적인 ID를 전달하는 데 이틀이나 걸린 점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서울경찰청에 증거 분석을 의뢰한 이후 수서경찰서는 구글링을 이용한 수사를 염두에 두고 ID 확보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달 14일과 17일 인터넷 포털업체와 언론사에 김 씨 명의로 가입된 ID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경찰청은 16일 확보한 자료를 18일 오후에야 수서경찰서로 보낸 것이다.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19일 국정원 직원 김 씨가 인터넷 사이트의 여론 형성에 관여한 단서를 발견하고, 같은 달 21일 해당 인터넷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중간수사결과 발표도 의혹투성이 김 씨에 대한 수서경찰서 측의 소환조사도 의문투성이다. 현재 김 씨는 두 차례에 걸쳐 경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바 있다. 조만간 3차 조사도 벌일 예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8월말부터 12월10일까지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16개 아이디로 99회에 걸쳐 대선 관련 글에 ‘추천·반대’ 형식의 표시를 해왔다.
약 100일 동안 16개의 아이디로 해당 사이트 게시물에 단 ‘찬반 표시’는 총 288회. 대선 관련 글 94개에는 중복 표시를 포함해 99건의 찬반 표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 이념 성향을 띤 사이트 한 곳에서만 이렇듯 집중적인 ‘활동’을 벌인 이유가 무엇인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것은 여직원이 감금당했다고 주장하는 이틀의 시간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간이면 컴퓨터를 원격제어해서 자료를 완전히 삭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국정원은 중요한 기밀자료 등이 담긴 HDD를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디가우저’라는 장비, 소프트웨어(SW)에 등에 대해 보안적합성을 평가해 주는 기관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SW방식의 디가우저를 통해 HDD에 담긴 내용이 완전 삭제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디가우저를 통해 수행되는 ‘디가우징’은 HDD를 공장초기화하거나 아예 못쓰게 고유의 자력을 없애는 등의 작업을 말한다. 정보 수집, 인멸 등의 업무에 유능한 국정원이 어떤 증거를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 않아 증거인멸 의혹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보안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조사는 국정원이 거부하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런 여러 가지 의혹들로 인해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 결과 발표가 미심쩍다는 반응이다. <선데이저널>이 만난 한 보안 전문가는 “ID나 닉네임을 왜 신속히 넘기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며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 지난달 19일 선거 전에 결과를 내놨다면 대선 결과도 바뀔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정원 직원 김 씨가 지난해 8월 말부터 인터넷 사이트에 99차례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지난달 16일 있었던 중간 수사결과 발표도 거짓으로 판명됐다”며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차기 경찰청장 후보로 유력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 출신인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 출신이며,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정원에서 근무하다 경찰로 자리를 옮긴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즉 그가 국정원가 경찰 사이에서 고리 역할을 했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관가에선 그가 박근혜 정부의 초대 경찰청장을 노리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상황이다. |
<의혹취재>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경찰간부들 조직적 개입 의혹
이 뉴스를 공유하기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