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똑똑한 깡통’의‘정치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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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애리조나 피닉스의 아름다운 교외 동네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며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내 친구 B 시인이, 엊그제 한통의 이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일찍이 김지하 시인이 ‘깡통’이라모멸해 마지않은 안철수 전 대선후보를, B 시인은 ‘저급 인격의 기회주의자’라 부르며, 지난 주 내가 안철수에 대해 쓴 칼럼의 일부 표현에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지난 주 칼럼에서 나는 (벤처 기업인으로서 이룬 성취도 면에서 비교하면) “김종훈이 장관급이라면 안철수는 구청장급”이라 썼지요.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대 여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성공한 세계적 벤처 기업인인 김종훈의 미래부 장관 중도 사퇴를 아쉬워하는 일부 교포사회의 시각을 전한 비유적 표현이었습니다. B 시인은 그 칼럼에 나오는 ‘구청장급’이란 표현이 달갑지 않았던지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안철수에 대한 비유가 마음에 안듭니다. 어찌 그 자가 구청장급입니까. 내 생각엔 비유할 가치도 없는 기회주의자, 저급의 인격자일 뿐입니다.”
B 시인에게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구청장 대신 면장이나 이장이라 부르면, 귀하의 아름다운 시가 잘 써지겠습니까?”
 한 인터넷 포털의 토론방에 나온 어떤 네티즌은 실제로 안철수를 ‘시골 이장급’으로 낮춰 불렀습니다. “이번에 노원 병에서 떨어지면 오는 10월과 내년 4월 치러지는 각급 보궐선거에 그는 또 나올 것이다. 국회의원이 힘들 것 같으면 김두관 처럼 시골 이장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인물 됨됨이가 딱 ‘이장급’이다.”


안의 귀환-냉담한 여론


안철수가 80여 일간의 미국 칩거생활을 접고 지난 주 깜짝 귀국해, 오는 4월 서울 노원 병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략 20% 쯤 되는 안철수의 열혈 지지층-이른바 ‘안빠’들은 열광하며, 그의 이른 정치재개 선언을 반기고 있습니다. 노원 병의 가상 여론조사에서 그는 여야 1대 1 대결이나 다자대결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내년 재보선에서 시골 이장으로 나오는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일단 많지 않아 보입니다.
안철수의 4월보선 출마 사실이 알려진 7일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안>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지난해 대선정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른바 ‘안풍’의 위력이 현저히 약화됐음을 보여줬습니다. 이 여론조사는 500명을 상대로 “만약 안철수가 당신의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면 지지를 하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렇다는 응답은 19%에 불과했고, 절대로 안찍겠다가 26%, 상대후보를 보고 결정하겠다가 46%였습니다.
안철수는 지난해 대선정국에서 한때는 지지율 50%를 넘겨 박근혜를 따돌리고 1위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안철수가 대통령도 아닌 국회의원 지지도에서 겨우 19%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치명적 굴욕입니다. 노원 병 출마에 대해서도 41.2%가 반대했고, 찬성은 31.7%에 불과했습니다.


꽃길만 찾는 안철수 정치


국민의 대다수는 안철수의 정치 재개라는 ‘총론’ 부분에서는 일단 긍정적입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정치판의 긴장도를 높여 정치 쇄신 분위기를 앞당긴다는 측면에서, 안철수의 정치
조기등판은 바람직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른바 ‘캣피쉬 에펙트’–‘메기 효과’ 이론이지요. 헌데 왜 하필 지금이냐, 왜 하필 노원 병이냐, 왜 하필 쉬운 길만 쯫아 가느냐 하는 ‘각론’ 부분에서는 비판과 반대가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그는 엊그제 노원에 전셋집을 얻고 전입신고를 마쳤습니다. 서울 도심에 살면서 노원구 땅은 한 번도 밟아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사람이 번갯불에 콩 볶듯 이런 식으로 거주지를 옮겨 국회의원이 됐을 때, 그가 과연 지역 연고성을 매개로 의정활동을 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국의 선거법이라는게 참으로 희한합니다.
그는 “새 정치를 위해 기시밭 길을 걷겠다”고 노원 병 출마의 변을 털어 놨습니다. 이를 두고 안철수 특유의 억지 말장난이라는 비판이 일었지요. 노원 병은 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야당 초강세 지역입니다. 안철수 아닌 누가 야권 후보로 나와도 이기는 곳입니다.  이런 ‘야당의 꽃밭’을 그는 ‘가시밭’이라 눙쳐대며 궤변을 늘어놨습니다.
국민의 상당수는 이곳 출신인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의원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잃은 것에 대해 어이없어해 하고 있습니다. 못된 짓을 한 X 파일 당사자들은 놔주고, 이를 폭로한 애꿎은 진보 정치인 한 사람만 때려잡았다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장삼이사’들의 정서도 이런데, ‘새 정치의 아이콘’이며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그대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며 ‘낼름’ 금배지를 낚아채려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며 아름답게 사는 내 친구 시인이 열 받을 만도 합니다.


노원출마는 벼룩의 간 빼 먹는 짓


안철수는 지난 주 미국에서 느닷없이 노회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부 인사 정도를 나눴다고 하지요. 그런데 1시간 쯤 지나 서울에서, 안의 대리인 격인 송호창 의원이 그의 조기 귀국과 노원병 출마 예정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노회찬 전의원에게 전화로 사전 양해를 구했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안철수답지 않은, 아니 어쩌면 가장 안철수다운” ‘꼼수 퍼포먼스’였습니다.
 범야권 역시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염치없는 짓”이라며 안철수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론도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대체로 안철수의 노원 출마에 비판적입니다. 40대 이후 세대와 고학력층, 호남을 제외한 수도권등 전 지역에서 안철수의 거품인기가 빠져나가는 낌새가 느껴집니다. 야권후보가 2~3명 난립하면 안철수의 당선은 불투명해 지고, 그가 계획하고 있는 신당 창당과 5년 후 대권도전 플랜도 뿌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안철수, 김무성에 쫄았나


안철수가 잠재적 대권주자를 자임하려면, 적지이면서 동시에 고향인 부산 영도 보궐선거에 나가는게 순리이며 정도입니다. 영도엔 새누리당의 중량급 터줏대감인 김무성 전의원이 일찌감치 출사표를 냈습니다.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는 김무성한테 지레 쫄아, 서울로 방향을 튼 것 같다고 정치권과 언론계에선 수군댑니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그는 부산을 버리고 서울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 새 정치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라고 해괴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는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은 새누리당의 텃밭입니다. 이 지역 출신인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지역주의와 싸우겠다며 2번이나 부산에 출마해 ‘장렬히’ 전사했고, 그 덕에 대통령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안철수는 한국정치의 오랜 고질인 ‘지역주의’를 연고가 있는 곳, 즉 “고향에서 출마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식이거나 고의적인 왜곡입니다. 지역주의와 싸우려면 ‘장렬히 전사할 각오로’ 고향이면서 새누리당의 텃밭이기도 한 부산으로 내려가 여당의 거물인 김무성과 직접 드잡이를 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지금 친노 주류가 당권을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을 분열시킬 안철수 신당을 원치 않습니다. 문재인 박원순 김두관 손학규등 차기 주자들도 안철수의 성공을 내심 바라지 않습니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노원 싸움에서 안철수에 패배해도 반드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느긋한 입장입니다. 안철수의 등장이 야권 분열의 촉매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철수는 이제 삭풍 몰아치는 황량한 ‘정치의 들판’에 홀로 섰습니다. 부유한 의사 집안의 귀동자로 자라 성공신화를 써 온 그로서는 처음 마주치는 일생일대의 시험이며 고난이자 엄혹한 자기성찰의 순간입니다. ‘이장급’이 아닌 ‘대통령급’ 정치인 안철수의 진면목을 보여줄 절제절명의 기회이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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