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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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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엔 두명의 남녀 대변인이 있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인 윤창중과 여론조사 전문가인 김행 대변인입니다. 이들은 매일 한두 차례씩 번갈아 TV 앞에 나와, 청와대의 발표문이라는 것을 ‘낭독’합니다. 이들을 TV에서 볼 때면 늘 불편합니다. A4 용지 한 장짜리 발표문도 제대로 못읽어 듣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이 두 사람이, 언필칭 박근혜 청와대의 ‘입’입니다. 대변인의 필수 덕목이 ‘전달력’인데, 윤창중 김행 두 대변인의 발표는 도무지 내용 전달이 안됩니다. 대변인 필요 없이, 홍보수석실에서 써 준 발표문을 방송국의 유명 성우나 탤런트를 불러다 읽히는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매일 저녁 보게되는 TV 뉴스엔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회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이명박 청와대의 자유스런 분위기와는 달리, 박근혜 청와대의 수석회의는 한 여름 냉동창고 처럼 얼어 있습니다. 회의는 대개 대통령의 근엄한 일장 훈시로 시작되는데, 이때는 침 삼키는 소리나 종잇장 넘기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일동 차렷!’ 모드입니다. 남성 보좌진들을 오금도 못 펴게 만드는 여성 대통령 특유의 ‘권위적 아우라’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한사람의 이단아(?)가 있는데, 바로 유민봉 정책기획 수석이지요, 유민봉은 반백의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한 ’봉두난발‘ 차림으로 청와대에 출근합니다. 서열 1위 수석이어서인지 이런 추레한 몰골로 늘 대통령 옆자리에 앉습니다. 차림새만 보면 유 수석은 영낙없이 서울역 지하도에서 방금 자다 나온 노숙자 꼴입니다. 윤창중 김행과 함께 국민을 한숨짓게 만드는 또 한사람의 청와대 참모가 바로 이 사람이지요. 그의 ‘노숙자 패션’은 주군인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무엇보다 국민에 대한 겸손한 몸가짐이 아닙니다. 역대 최악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초대 청와대 참모진 중엔 별의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이정현이 기가 막혀
‘O급 정외과 출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S K Y등 최고 일류대학 정외과 출신이 아닌 ‘기타 대학’ 정외과 출신 정치인들을 이르는 말로, 학벌 좋고 스펙 좋은 정치인들이 그렇지 못한 정치인들을 얕잡아 부르는 표현입니다. 인터넷에 누군가 올린 글엔 ‘O급 정외과’ 정치인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더군요. 첫째 머리가 별로다. 둘째 처음 만나는 사람과 금새 형님 아우가 된다. 셋째 어느 모임이든 분위기를 ‘업’ 시키는 특출한 재주가 있다–. 명석한 두뇌나 화려한 학벌 대신, 타고난 친화력과 마당발 기질, 그리고 남다른 노력과 오지랖으로, 정치라는 이름의 ‘아사리판’에서 나름대로 자기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O급 정외과 출신으로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꼽힙니다. 전남 곡성 출신인 그는 박근혜 최측근 인사 중 유일한 호남 인맥입니다. 그가 정무수석으로 픽업되자 정치권, 특히 야권은 시큰둥한 반응과 함께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O급 정외과에 대한 편견에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하나 빼곤 이렇다 하게 내세울게 없는 그의 스펙과 경량급의 정치적 무게감이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이정현은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과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정치 경력의 전부입니다. 초선의 비례대표 의원이 집권당의 최고위원이 된 것은 파격 중의 파격인데, 박근혜는 호남 몫이라는 명분으로 지난해 그를 새누리당 최고위원에 앉혔습니다.
정무수석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정치 전반을 디자인하는 직책입니다. 정무 능력과 함께 무엇보다도 정치적 중량감과 경륜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역대 정부의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개 다선 국회의원이나, 장관 이상의 행정부 경력이 있는 거물급 인사가 맡았습니다. 박정희의 유혁인, 전두환의 김재익, 노태우의 최병렬, 김영삼의 이원종, 김대중의 문희상등은 나름대로 존재감이 뚜렷했던 정무수석들이지요. 집권당인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요즘 정무수석 말고 정치특보를 대통령 직속으로 따로 두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정현 정무수석 카드로는 얽히고 꼬인 지금의 정치 난국, 특히 야당과의 관계를 풀 수 없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한 달 이상이나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로 빠트린 것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지연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박 대통령의 옹고집이 근본 ‘사단’이었지만,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적 협상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정무수석의 책임이 무엇보다 큽니다. 지지난 주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청와대는 주요 쟁점에서 야당에 줄 것을 거의 다 줬습니다. 그렇게 줄거라면 진작 화끈하게 줬어야지, 한달 동안이나 야당과 각을 세우며, 헌정사상 초유라는 무정부 사태를 자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정무수석 이원종은 대통령한테 직언을 서슴치 않은 명참모였습니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시중의 여론을 그대로 전하고, 대통령이 잘못하면 맞짱도 떴습니다. 이런 ‘골칫덩이’ 정무수석을 YS는 4년 동안이나 옆에 가까이 두고 정치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NO라고 대드는 이원종 같은 ‘싸가지’ 정무수석 보다, YES라며 순종하는 이정현 같은 ‘푸들형’ 정무수석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곽상도가 기가 막혀
정치의 성패가 정무수석의 몫이라면 정권의 성패는 민정수석의 몫입니다. 박근혜 청와대의 이정현 정무수석 보다 곽상도 민정수석의 역할이 어느 면에서 훨씬 더 막중한 까닭입니다. 대통령이 이정현 같은 충복을 하나쯤 옆에 두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미혼의 여성 대통령으로 주변에 믿을 피붙이나, YS DJ같이 생사를 같이할 정치적 동지가 없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이정현 같은 충직하고 편안한 측근을 하나쯤 옆에 두고 싶을 겁니다. 헌데 민정수석은 아닙니다. 박근혜의 국민 지지도가 40%까지 추락한 것은 전적으로 인사실패 때문입니다. 10명이 넘는 장관급 고위 인사가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낙마한 것은 건국 이래 초유의 인사 참사입니다. 민정수석 곽상도를 위시한 청와대 검증 팀의 능력 부족과 직무유기에 1차적 책임이 있습니다. 야당은 물론 여당내의 친박 인사들 까지 곽상도 수석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주 보아란 듯이 그에게 정식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청와대 사정 팀의 인적 쇄신과 인사검증 시스템의 혁파를 요구하는 여론에 ‘팔뚝감자’를 먹인 꼴입니다. 입만 열면 ‘국민행복’을 말하는 대통령이 왜 이렇게 국민들 열 받는 일만 골라서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곽상도는 전형적인 정치검사 출신입니다. 20여년전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담당검사이기도 합니다. 그 사건은 고문과 강압 수사, 직권 남용등 한국 검찰의 치부를 드러낸 부끄러운 사건이었지요. 곽상도는 이제 또다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부끄러운 역사를 쓰려 작심하고 나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의 다음 목표는 법무장관일겁니다. 최소한 민정수석만큼은 자리 욕심이나 사심 없이 국민의 편에서 일해야 하는데 곽상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허태열이 기가 막혀
3월 30일 청와대는 장-차관급 인사실패에 대한 ‘사과문’을 내놨습니다.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허태열 비서실장 명의의 사과란 것을 김행 대변인이 ‘대독’했습니다. 사과문은 딱 두줄에 낭독시간 17초짜리였지요. 사과문은 형식과 내용, 발표시기등 모든 면에서 안하는 것만도 못했다는 거센 비판과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최선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과를 하고 곽 민정수석등 관계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과나 책임에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민감한 대통령이 나서기가 정 어려웠다면, 허태열 비서실장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배꼽인사라도 하며, 진정어린 사과를 했어야지요. 허태열이 쪽팔려서 못 읽겠다고 대변인실에 넘기자, 자존심 강한 윤창중 대변인 역시 쪽팔린다고 손사래를 쳐서, 죄 없는 김행 여성 대변인이 할수 없이 읽은 꼴이 됐습니다. 김행도 못 읽겠다고 나자빠졌으면 대변인실에서 심부름하는 여비서가 ‘대대대독’을 할 뻔 했습니다. 이런 참모들을 데리고 감히 국민행복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나서는 대통령이 참 안됐습니다. 20여년 전 육각수가 부른 댄스곡 <흥보가 기가 막혀>는, 기 막히는 일이 하도 많은 시대상과 맞물리며 국민 애창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흥보 대신 지금은 청와대가 ‘기가 막힌’ 세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