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박근혜 ‘국정원 셀프 개혁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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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8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정보원 개혁 필요성을 직접 언급함에 따라 국정원 개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정원 댓글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박 대통령이 국정원이 알아서 개혁하란 식의 언급을 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새로운 남재준 국정원장 취임 후에도 NLL대화록 공개 등 정쟁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을 것’이란 비판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서 ‘댓글 조작’등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면서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박 대통령의 ‘침묵’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둬왔다. 기본적으로 여야간 ‘정쟁’이라는 인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대응’ 기조를 유지할 경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의 불똥이 자칫 박 대통령 자신에게로까지 튈 수 있다는 점에서 ‘셀프개혁’을 주문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본지는 지난 대선 때부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개입 의혹, 원세훈 전 원장의 스탠포드 외유설 등 국정원 관련 이슈들을 끊임없이 취재해 온 만큼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공감한다. 하지만 이번 국정원의 셀프 개혁론은 그야말로 국정원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차원에서 개혁론의 허와 실을 취재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정원이 일으켰던 사건들과 관련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만 언급했고, NLL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서는 ‘NLL을 사수해야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의 공통점은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활로를 열어줬다는 점이다. 댓글 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발표는 팽팽했던 대선의 구도가 약간이나마 박 대통령에게로 쏠리게 만들었고, NLL대화록 공개는 국가안보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6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로


이런 박대통령이 이제 와서야 국정원의 셀프개혁을 주문한 것은 사실상 면죄부와 다름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개혁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국정원이 개혁안을 마련한다 해도 특유의 비밀주의 속에 권한을 더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은 댓글 사건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권영세 주중대사가 대선전 회의록을 공개하고 선거에 이용할 수 있음을 내비친 사실이 민주당의 폭로로 드러난 게 더 심각할 수 있다. 김무성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이 선거유세에서 한 NLL관련 발언은 정상회담 회의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이 갖고 있던 회의록이 사전에 새누리당에 유출됐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국정원이 정치라는 고질적인 외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간에 제기된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과 철저한 반성, 새로 태어나겠다는 각오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과거 정부와 선을 그으려는 모습은 보이고 있지만, 대선 당시 댓글 사건 등에 대해서는 첩보활동의 일환이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할 뿐 진정한 반성과 새 출발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원에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라고 하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 ‘제논에 물대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개혁안을 마련할 적임자인지도 심각한 의문이다. ‘국정원의 명예’라는 황당한 이유 때문에 ‘자의적으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혼란을 가중시킨 당사자다. 남 원장이 국정원장에 취임한 지도 100일이 넘었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의 고위직을 대폭 물갈이 했다는 소식만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을 뿐 이 기간동안 어떤 개혁을 했는지는 일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적쇄신은 개혁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에서는 모자란다. 과거 정권에서 잘나가던 인사들을 청산하는 것은 자기사람 심기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개혁안을 마련한다 해도 특유의 비밀주의 때문에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은 국정원 개혁을 체감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혁안이 오히려 국정원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언급하면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사이버테러 대응’이 포함돼 있어, 이참에 사이버안보 분야의 권한 확대를 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파트 해체가 핵심


국정원 개혁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국내 파트다. 국내 파트 축소 또는 폐지론은 과거 국정원의 정치 개입 논란 때마다 불거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됐다. 국정원은 조직 구성 자체가 비밀이다. 국내 파트에 어떤 부서가 어느 정도 규모로 있는지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이 하는 일은 크게 ‘방첩’과 ‘동향 파악’이다. 국가 기관과 대기업, 각종 단체 등에 연락관(IO·Intelligence Officer)을 두고 있다. 국회나 정부 부처는 물론 시민 단체나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 언론사, 검찰과 경찰 등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이 주요 대상이다. 이들은 매일 각 출입처 동향을 상부에 보고한다. 방첩 활동의 핵심은 대공(對共) 혐의자나 산업 스파이 관련 정보 수집이다. 국정원 관계자들이 “국내 파트를 없앤다는 건 사실상 간첩이나 산업 스파이, 종북 활동을 방치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동향 파악’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각종 활동이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국내 보안 정보 수집’ 범위를 ‘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 범죄 조직 정보’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국정원법 규정 중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조항(3조 1항 5호)을 근거로 각 기관이나 회사를 출입하고 있다. 전국의 주요 시·도에도 지부를 두고 지역이나 현지 기관 동향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국내 파트는 정치 개입 물의를 일으킨 일이 많다. 김대중 정권 때 공직자, 언론인 등 각계 인사 1800여명의 통화를 도청한 혐의가 드러나 당시 국정원장들과 관계자들이 사법 처리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지방선거 연기 공작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07년 대선 때는 국정원 직원이 이명박·박근혜 후보 관련 뒷조사를 한 것이 문제가 됐다.
IO들은 자기가 맡은 기관·단체 주요 인사들의 동향 보고도 함께 하는데 이는 대통령 인사 존안 파일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각 부처 고위직은 국정원 IO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국정원 전체적으로 취합·선별해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등에 전달돼 대통령 일일 보고 자료로도 활용된다. 이런 국내 파트가 국정원 전체 조직에서 어느 정도 비중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없애거나 정치 정보 수집을 금지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3년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에 TF를 두고 검토한 끝에 ‘기관담당관제(출입처 IO)’ 폐지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괜찮다”는 식으로 타협했다가 몇 년 안 돼서 IO제도가 부활한 바 있다.
2006년에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서 국회 정보위원회에 국정원 개혁 소위를 만들었다. 당시 발의된 법안에는 ‘정치 활동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에서도 ‘특정 정당 및 정치인에 대한 동향 파악과 감시 등 정치적 사찰 행위’ 등을 금지하는 법안을 냈다. 이 법이 통과됐다면 국내 파트는 상당 부분 축소됐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시 국회 과반을 점유했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법안 추진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무산됐다. 이명박 정권 초에도 연락관제 폐지와 대북·해외 부문 강화가 검토됐으나 연락관제를 폐지하지는 못했다.


보수만을 위한 국정원


보수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국정원의 특성상 국정원의 개혁은 보수정권을 위한 개혁이 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도 많다.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궁지에 몰릴뻔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 5년간 국정원장과 독대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정보’를 그리 신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있다. 2006년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때 노 전 대통령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면서 경찰이 올린 정보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인용했다. 국정원은 ‘굴욕’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사행성오락 ‘바다이야기’가 온 나라를 휩쓸었을 당시 사전에 이 같은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국정원에 떨어진 적도 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국정원을 정치권에서 독립된 정보기관으로 만들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그 국정원에 의해 ‘반역의 대통령’으로 의심 받는 처지로 몰린 셈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봤을 때 국정원의 개혁은 또 다시 보수세력만을 위한 셀프 개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건설업자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10일 구속 수감됐다. 원 전 원장은 앞서 국정원의 정치·대선 개입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지만 불구속 기소되면서 한차례 구속될 위기를 모면했으나 끝내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 구속된 것이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의 구속을 두고 일각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모면해 보려는 하나의 술책으로 보고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오전 원 전 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김우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기록에 비춰 증거 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인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여환섭 부장검사)는 이날 곧바로 구속영장을 집행해 원 전 원장을 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2009년 취임 이후 황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1억1천만원의 현금과 4만 달러, 20돈 순금 십장생(약 450만원 상당) 등을 받고 그 대가로 황보건설이 여러 관급·대형 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황보건설이 2010년 7월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와 홈플러스의 인천 연수원 설립 기초공사를 수주하는 과정 등에서 원 전 원장이 황씨의 청탁을 받고 원청업체들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검찰로서는 원 전 원장이 현직 국정원장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 명확히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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