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을 여유있게 바라보는 또 하나의 조직은 청와대다. 남북문제 등을 이용해 내치의 어려움을 만회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국정동력을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진체가 될 전망이다. 체제 전복 세력이 출현하면 국가의 원수를 중심으로 나라가 똘똘 뭉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 댓글 사건 등으로 당선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박 대통령의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계기가 됐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던 바로 다음 날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등에서 통합진보당 모임의 녹취록 전문이 곧바로 공개됐는데 그 출처가 ‘청와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번 사건이 청와대와 국정원에게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모든 원인을 제공한 것은 역시 통합진보당이다. 국정원에서 제기하는 모든 혐의가 왜곡,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이 해명을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북한의 체제에 동조하고 체제를 전복시키려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그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청와대와 국정원이 받아들었고, 자신들이 그토록 해체를 주장해온 국정원이 기사회생하는 전기를 마련해줬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의 내란혐의를 둘러싼 막전막후를 <선데이저널>이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 9월 3일 오후 4시 30분 경(한국시간) 본국 국회에서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그리고 4시간 뒤 국정원은 이 의원을 강제 구인했다. 8월 28일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진지 꼭 1주일 만이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인한 야당의 공세 등 현 정부에게 불리한 사건들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묻혀버렸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댓글 사건과 원 전 원장의 뇌물수수 혐의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존재이유를 과시했다는 점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그들은 여전히 마이 웨이를 감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국정원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이 언급한 내용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어떻게 이런 말을 했나싶을 정도다. 이들 모임에서 나온 단어들은 북한에서 쓰는 말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종북세력을 넘어서 체제전복을 꾀하는 세력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문제는 이들과 정치적으로 정반대에 노선에 있는 자들에게 계속해서 정치적인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내란음모 사건을 놓고 진보당은 국면전환용 공안탄압을 벌인다고 국정원을 비난하지만, 국정원은 종북세력에 대한 대응 필요성을 홍보하는 기회로 사건을 활용하고 있다. 배후에 청와대 있나 이들의 자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집단은 앞서 언급했듯이 현 정부와 국가정보원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국가 전복을 꾀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은 야권에겐 그야말로 ‘쓰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유일한 히든카드 청와대가 대북문제를 통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관련해 재미를 봤다는 것도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인사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을 때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며 지지율을 반등시켰다. 국정원 개혁의 요구가 있을 때도 그는 국정원의 대북기능 강화를 요구하며 개혁을 주문했다. 진보당 때문에 기사회생, 국정원
검찰은 지난 6월 불법 정치·선거 개입 혐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국정원에 대한 개혁 요구가 사회 각계에서 터져나왔다. 국회 국정조사가 실시됐고, 국정원을 규탄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졌다. 국정원이 궁지에 몰린 모양새였다. 국정원은 그런데 지난달 28일 내란음모 혐의로 이석기 의원 등 진보당 관계자 10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했다. 국정원의 공개수사 전환 후 ‘상황’은 반전됐다. 지난달 28일 민주당은 단독으로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 대국민보고서를 발표했지만 같은 날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진행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국정원에 대한 개혁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개혁된 국정원’보다 ‘내란음모 혐의로 현직 의원을 수사하고 있는 국정원’에 더 큰 관심과 비중을 두는 분위기다. 국정원은 공개수사 전환 후 ‘미리 짜놓은 각본’처럼, 주목도 높은 ‘소재’들을 쏟아냈다. 국정원은 압수수색과 함께 홍순석 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을 체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있던 지난달 30일, 일부 언론을 통해 이들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들에 대한 구속 여부가 이번 수사의 첫 번째 분수령으로 평가됐던 만큼, 녹취록 공개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결국 홍 부위원장 등 3명은 이날 모두 구속됐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제출되던 지난 2일에는 그의 범죄사실이 담긴 동의요구서 내용이 통째로 공개됐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여야는 4일 체포동의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공안당국의 이러한 행태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국정원(옛 안전기획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확실하지 않은 기획성 공안수사를 통해 위기국면 타개를 꾀한다는 것이다. ![]() 역풍 가능성은? 하지만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시각은 드러난 정황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국정원이 이 사건에 대한 여론몰이를 위해 ‘식상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보다는 내란음모라는 ‘참신한’ 혐의를 무리하게 끼워 넣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개시되던 27일 “이석기 의원이 조직원들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했다”는 충격적인 설명도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기사에서 인용된 공안당국 관계자는 이 기사에서 그만 천기를 누설하고 만다. 바로 진보당의 내부 조력자의 존재를 내뱉고 만 것이다. 그는 “이 조력자는 비밀조직의 회합 장소와 시간 등의 정보를 공안 당국에 제공하며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지만 현재는 연락이 끊겨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내부 조력자가 누구인지 색출에 나섰던 통합진보당은 이 같은 보도를 보고 프락치의 존재를 최종 특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진보당은 이를 국정원의 정치공작으로 이름 짓고 1일 대대적인 국정원 압박에 나섰다. 국정원이 도박빚으로 많게는 1천만원씩 날리며 빚더미에 앉게 된 진보당원을 ‘온 가족이 해외에 도피해 살고도 남을 거액’으로 매수해 구차한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조력자는 40대 중후반 남성으로 수도권 사립대를 졸업하고 민주노동당 초기부터 수도권에서 당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경기도에서 민노당 후보로 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 남성은 국정원의 통진당 내사가 시작된 2010년 말 이전부터 경기동부연합 지하조직 RO(혁명조직)의 내부 비밀회합 등 다양한 정보를 국정원에 전달했고, 일부 모임의 동영상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영상들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유력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어 주목된다. 진보당은 더 나아가 국정원이 지난해 2월부터 9월까지 군.검.경과 합동으로 진보정당간 통합동향을 비밀리에 파악한 사실에 대해서도 “합법적인 정당에 대한 명백한 불법사찰이었다”며 국정원에 대한 맹공을 퍼부었다. 진보당이 국정원 공작의 불법 부당성을 지적하며 반전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진보당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수사선상에 올린 내란음모 혐의 자체에 대한 여론은 아직도 싸늘하다. 그러나 국정원의 의도대로 내란음모 부분이 최종적으로 유죄를 선고받을지 무죄를 선고받을지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국정원이 마구잡이식으로 관련 정보를 흘리며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8월 29일자 국제면에 남한의 ‘좌파 지도자가 한국 정부를 전복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Leftist Leaders Accused of Trying to Overthrow South Korean Government)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
<집중해부2> 통합진보당과 국가정보원의 ‘악어-악어새’ 적대적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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