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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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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국회 ‘사랑재’ 라는 한옥건물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간의 ‘영수회담’은 예상대로 ‘웬수 회담’으로 끝났습니다. 마치 ‘영원한 라이벌‘ A 매치 축구 한일전 처럼, 두 사람은 ’죽을망정 질수는 없는’ 숙명(?)의 결투를 90분 동안이나 지리하게 벌이다,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회담장을 나서는 두 사람의 얼굴엔 “죽었을망정 지지는 않았다”는 묘한 열패감(劣敗感)이 어른거렸습니다. 두 사람은 90분간의 ’사랑재 결투‘가 득점 없이 끝나자, 그라운드 밖에 까지 나와, 온갖 반칙 악다구니 써 가며 연장전을 벌였습니다. 추석 차례상 앞에 둘러앉아 한가위 송편을 먹던 많은 국민들은 ‘영수’라는 이름의 이 두 ‘웬수‘들이 벌이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사랑재 싸움‘을 관전하다 “작년에 먹은 송편이 올라 온 듯“ 열 받아 뒤집어졌습니다. 참으로 ’오만한‘ 대통령에, 참으로 ’막 돼 먹은‘ 야당 당수를, 이번에 국민들은 똑똑히 봤습니다.
야당에 싸움 거는 이상한 대통령
영수회담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작심한 듯 야당과 김한길 대표를 향해 분노와 저주의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대통령이 제1야당을 향해 이런 식의 ‘선제(先制)도발’을 하고 나선 건 ‘전두환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민주당의 거리투쟁은 민생 발목잡기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장외투쟁을 계속하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기다렸다는 듯 ‘국민 저항론’으로 되치기를 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민생이 힘겨운 것은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민생에 무능한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계속되면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김한길 대표가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꼭 듣고 싶었던 한마디는 “내 임기 동안 민주주의 하나는 확실하게 바로 세우겠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시청 앞 천막당사로 돌아와 좌파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김한길은 “이번 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생각하던 대통령이 아니었다”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대통령 훈계하는 이상한 야당 대표
사랑재 회담에서 김한길은 7가지 요구사항을 적은 메모랜덤을 대통령 면전에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해 당시의 분위기를 정확히 가늠해 볼 재간은 없습니다. 다만 이번 회담 전후에 보인 김한길의 예사롭지 않은 ’결기(結氣)’로 미뤄 짐작컨대, 독재정권 시절 운동권 대학생들이 ‘시국선언문’ 낭독하듯, 흉악범 앞에서 판사가 판결문 읽어 내려가듯, 그런 분위기로 자존심 강한 대통령의 ‘염장’을 질렀던 것 같습니다. 김한길은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사과의 ‘사’자만 들어도 대통령이 경기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 겁니다. “전 정권의 국정원이 저지른 정치적 사건에 대해 현직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한다면, 이 정권은 5년 임기 내내 사과만 하다 날이 새겠다”고, 정부-여당사람들은 볼멘소리를 내지릅니다. 국정원 댓글은 박근혜 (당시) 후보는 몰랐으며, 댓글이 박 대통령 당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대다수 국민과, 심지어 야권 인사들 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16일 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사과를 요구하는 김한길 대표에게 반문했다지요.. “나는 그 사건에 관여한 바가 없습니다. 댓글 때문에 내가 당선됐다고 김 대표는 정말로 생각하세요?” 이에 대한 김한길의 답변은 조금은 궁색했습니다.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허지만 계량할 수 없는 거니 모르죠. 그렇다고 대통령 선거를 (우리가) 다시 하자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마이뉴스에서 인용》
김한길의 오버 액션
2000년 6월 분단이후 처음 열린 김대중 김정일 간의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이 6.25 전쟁이나 KAL기 폭파 같은 북한의 과거 전쟁 도발 만행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판이 깨졌겠지요.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았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과’ 얘기를 꺼내지 않고도, 김정일이 과거 몇몇 불미스런 사건에 대해 스스로 유감을 표하도록, 노련한 대화술로 회담 분위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외국 정상 간의 회담이나 국내 여야 영수 간의 회담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선택과 집중으로 의제나 대화의 수위 등을 사전 조율해야 회담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김한길 대표가 “별 영양가 없는” 사과 문제로 박 대통령에게 백기투항을 강요하고 나선 건 전술적 패착이었습니다. 그 보다는 그가 꼭 듣고 싶었다는 대통령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확고한 의지, 그리고 이를 실천하려는 각론적 의지라 할 국가정보원의 파천황(破天荒)적 개혁에 대한 ‘통 큰 약속’ 따위를 받아냈어야 했습니다. ‘사과’라는 ‘립 서비스’ 하나 얻어 내려, 김한길은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모처럼 성사된 영수회담의 판을 스스로 깨버렸습니다. 정치력 부족이거나, 당내 강경파에 떠밀려 자기도 모르게 ‘오버’를 한 것 같습니다.
혼외자식 찾아 망신 주기 붐?
오랜 천막생활에 지쳐 자기 페이스를 잃은 걸까요. 김한길 대표가 요즘 마구 내닫고 있습니다. 영수회담의 또 하나의 악재로 떠 오른 채동욱 사건에 대해 그는 놀랄 발언을 했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문제에 우리는 관심이 없다.” 그와 민주당은 채 총장이 박근혜 정부에 밉보여 쫓겨났다는 이른바 ‘음모론’에만 관심이 있을 뿐, 검찰총수의 ‘아랫도리 사건‘엔 애시당초 관심이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민주당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장관 등 고위 공직 후보자 수 십 명을 인사청문회에서 낙마시킨 막강 파워의 제1야당입니다. 낙마자 중 상당수는 남녀관계 등 개인의 도덕성에 걸려 망신을 당한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랫도리 사건 같은 쩨쩨한 개인 사생활 같은 건 따지지 않겠다고, 사무라이 왕초 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 헷갈립니다. <미디어 오늘>이라는 좌파 인터넷 매체는 「족벌언론과 그 사주들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탐사보도」라는 걸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가 이번 채동욱 혼외 자식설을 보도한 <조선일보>인 모양입니다. 조선의 방일영 전 회장의 혼외자식이 무려 여섯 명- 4남 2녀라는 ‘예고편’ 멘트가 엊그제 그 신문 머리에 떴습니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의 혼외 자식을 밝혀 내려면 정-재-관 등 각계를 망라해야지 왜 하필 ‘족벌언론’ 만인지 아리송합니다. 조선일보 죽이려고, 좌파들이 즐겨 쓰는 ‘표적 취재’ 목적으로, 뜬금없이 시작한 탐사기획보도 같아 헛웃음이 나옵니다. 엊그제 9월 17일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환갑날이었다죠? 예쁜 탤런트 출신 부인이 끓여 온 미역국을 김 대표는 천막당사에서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회갑 축하 화분이라도 ‘혹시’ 보냈나 싶어 여기저기 신문을 뒤져 봤지만 ‘역시’ 없었습니다. 무슨 ‘내란당’인가 하는 데서도 축하객과 선물이 왔다는 데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 큰 정치’를 주문하는 건 언감생심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