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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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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채동욱 이름 석자가 이젠 지겹습니다. 24일 그가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으로, 이 ‘애물단지 검찰총장’이 몰고 온 “미친 중 놈 제 집 헐기”식 난리법석이 제발 끝났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봤습니다. 헌데 여기서 그만 덮어 버리기엔 사건이 너무 멀리 나가 버렸습니다. 혼외아들 의혹이 어느새 채 총장 개인사에서, 나라 전체가 좌 우 두 패로 갈려 아귀처럼 싸우는 초대형 정치사건으로 변질됐습니다. 조선일보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는 허위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하겠다”라고 ‘깔끔 당당한’ 처신을 했더라면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채동욱은 웬일인지 사건을 정치문제로 끌고 가 “언론보도는 나를 몰아내려는 정치음모”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렇찮아도 껄끄러운 관계이던 청와대 등 집권세력을 향해 맞장을 뜨자고 나선 거지요. 이게 패착이었습니다. ‘허위보도’를 한 조선일보는 물론 아이 아버지가 채동욱 검찰총장이라 소문을 내고 학적부에 이름 까지 올린 ‘간 큰 술집 마담’ 임모 여인 까지 모두를 싸잡아 명예훼손과 명의도용 혐의로 고소하고, DNA 검사를 자청하고 나섰어야 했습니다. 단순명쾌하게 의혹을 밝혀내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손 쉬운 방법을 마다한 채 그가 미적거리자, 국민들 사이에는 “뭔가 켕기는 게 있긴 있구나”라는 의구심이 증폭 됐습니다. 지난 봄 인사청문회 때 야당은 채동욱을 ‘파파남’이라 불렀습니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청문회가 아니라 칭찬회”라며 내 놓고 ‘채동욱 파이팅’을 외치는 남사스런 야당의원도 있었지요. 그 ‘파파남’이 지금은 ‘파혹남’이 됐습니다. ‘파면 팔수록 의혹만 남는 남자’입니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간 지 불과 3주 만에 ‘파파남’ 채동욱의 ‘클린 이미지’는 ‘파혹남’의 ‘더티 이미지’로 바뀌었습니다.
‘채동욱 게이트’의 미스터리들
이번 추석민심은 대체로 채동욱에 덜 우호적이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검찰 흔들기 음모를 따지자는 여론 보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존재 여부를 우선적으로 가리자는 여론이 훨씬 많았습니다. MBC와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는 채 총장 사건이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라는 응답이 48%로, 검찰 독립성 흔들기라는 응답 39%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나는 채동욱 혼외자(婚外子) 의혹을 ‘채동욱 게이트’라 부르고 싶습니다. 고위 권력자가 방귀만 잘못 뀌어도 ‘방귀 게이트’ 어쩌구 부르며 벌떼처럼 달려들 야당과 좌파세력이, 우파정권의 현직 검찰총장이 이토록 구린내 나는 염문의 주인공이 돼 나라를 흔들어 대고 있는데도 ‘파파남’ 타령만 읊조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사건엔 박근혜 정권의 ‘검찰 손보기’라는 쟁점적 정치 이슈가 포함돼 있습니다. 설사 혼외 아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도 그가 10년 이상이나 술집 여주인과 수상한 관계를 이어 왔다는 사실, 채동욱을 아이 아버지라 부르며 여자가 아들 학적부에 아버지 이름을 채동욱으로 올린 것, 자신의 명예를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린 여자를 끝까지 감싸 주는듯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빗발치는 유전자 검사 여론을 외면하는 아리송한 처신 등 채동욱 게이트의 미스터리는 한편의 잘 짜여진 추리극 시놉시스를 읽는 느낌입니다. 특수통이라는 채동욱 검사가 만약 이 정도 의혹을 받고 있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의 사건을 맡았다면, 아마도 불문곡직 간통 등 혐의로 기소해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렸을 겁니다.
유전자 검사에 소극적인 채동욱, 왜?
24일 채동욱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내, 공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1심판결은 3개월 이내에 나오기로 돼 있어 연내 1차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보도의 허위여부를 가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전자 감식 밖에 없습니다. 채동욱은 유전자 감식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헌데 아이 엄마 주소와 인적사항을 모른다는 식으로 말 뒷 끝을 흐려,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임모 여인이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투로 말을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쪽은 피고소인인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채 총장이 DNA 검사를 받지 않아 사건의 진위 여부 규명이 늦어질 경우 「관련 당사자들의 유전자 감정을 위한 증거보전 신청」등으로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은 어느 한편의 완승이나 완패 없이 1~2년 쯤 지나 마침내는 국민의 관심권 밖에서 잊혀 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채동욱은 착하고 부드럽고 정직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밝히지 않고 몸가짐이 반듯하면서도 업무엔 추상(秋霜)같다는 ‘훈남 검사’ 채동욱의 민낯에서는 올곧은 청백리의 이미지가 묻어납니다. 그런 채동욱의 착한 얼굴이 요즘 변했습니다. 관상학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연세대 명예교수 김동길 박사는 엊그제 한 케이블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왜 그가 태연스럽지 못할까 의구심이 든다. 사표가 수리되지 않고 법무부의 감찰이 시작되면서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사람 표정이 놀란 토끼 같다.”
혼외문제도, 정치탄압도 예스?
채동욱의 혼외 아들설은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양쪽 모두 가능성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닐 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왜 임모 여인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해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강제하지 않는 걸까요. 단순한 술집주인과 손님의 관계라는 두 사람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될까요. 이 대목에서 ‘파파남’ 검찰총장에 대한 영문 모를 의구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며, ‘파혹남’ 채동욱의, 김동길의 표현을 빌면 ‘놀란 토끼’같은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많은 국민들은 혼외 아들 문제와는 상관없이 채동욱-임모 여인 사이의 섬싱(something) 즉 ‘내연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명예훼손 고발을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는 거지요. 둘 사이에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임 여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폭탄성 발언이 두려워 명예훼손 소송을 망설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채동욱은 박근혜 정부의 ‘미운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희생자일까요.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나는 역시 ‘yes’에 방점을 찍겠습니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국가보안법을 부정하는 운동권 출신 좌파검사에게 맡기고, 대다수 공안검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공직 선거법 위반죄 까지 적용시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큰 흠집을 낸 ’좌파색‘의 검찰총장을, ’힘 있는’ 집권측이 인내하며 관용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채동욱은 밤에 술을 마셔도 야당 정치인들 하고만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고향이 전북 군산으로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쪽 사람들과의 인맥이 더 두텁습니다. 두 달여 만에 국회로 돌아 온 민주당은 ‘채동욱 게이트’를 최대 정치 쟁점화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총공세에 나서겠다는 방침입니다. 이 사건이 어디로 얼마만큼의 파괴력으로 튀어 2013년 하반기의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며 뒤 흔들게 될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