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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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금 강원도 어딘가에 은신해 있습니다. 총장 자리에서 물러 나 강원도로 떠나기 전 그는 내연녀로 알려진 임모 여인에게 “한 달만 ‘잠수’를 타라”는 전갈을 제3자를 통해 보냈습니다. 한국사회의 ‘집단 건망증’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기간이 대개 한 달 정도라는 것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특수부 검사 출신인 그는 경험칙으로 확신 했겠지요.
 한국에서는 한 두 달이면 세상이 뒤집어 질만한 대형사건이 ‘반드시, 또’ 터져 나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그 쪽으로 쏠리고, 이전 사건은 이미 ‘법률외적’ 공소시효가 끝나, 국민들은 그 일에는 눈 길 조차 주지 않습니다. 내연녀가 임씨인지 김씨인지, 혼외자가 아들인지 딸인지, 채동욱이 그 좋은 검찰총장 직을 왜 버리고 뛰쳐나왔는지, 사람들의 기억력은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대개 아리까리 해 집니다.
헌데 이번은 한 달이 아니라 1 주일 새에 세상이 또 한 번 요동을 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채-임 커플이 한 달 기한으로 ‘잠수’를 탄지 꼭 1주일 만에, 전직 대통령 노무현과 그의 장자방 격인 전 대통령 후보 문재인이 연루된 이른바 ‘NLL 거짓 의혹’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새로운 반전(反轉) 드라마로 채동욱의 혼외자 의혹은 당연히 국민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 났습니다. 채동욱으로서는 망외(望外)의 대박이 터진 겁니다.


채동욱-문재인의 거짓말 쇼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의 거짓말을 참말로 만들기 휘해서는 항상 7 가지의 거짓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말은 영국 속담으로도 전해집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생에서 어려운 건 거짓말을 안 하고 사는 것”이라고, ‘진실만을 말하고 살기의 어려움’을 자신의 작품 <악령>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7 가지의 새로운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영국 속담은 저 멀리 쉐익스피어 시대에나 통할 케케묵은 속담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한 가지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7 가지가 아니라 70 가지의 새로운 거짓말이 예사로 만들어 지는 세상이 됐지요. 한국 정치권의 싸움, 특히 특정 정치문제를 둘러싸고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가 ‘진영(陣營)논리’로 맞붙는 싸움에서는, 하나의 쟁점적 거짓을 진실인양 호도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거짓말이 만들어져 상대방을 공격하고 굴복시키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채동욱 혼외자 사건과 ‘문재인 NLL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관료 중 가장 깨끗하고 정직하다는 평을 듣는 인물입니다. 헌데 이들도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백처럼 “오직 진실만으로” 이 염량(炎凉) 세태를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걸 까요? 한 가지의 거짓을 덮기 위해 7 가지-70 가지의 무수한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 낸 이들의 화려한 ‘거짓말 쇼’가, 짧게는 지난 한 달, 길게는 지난 1년, 정치권을 뒤흔들며 세상을 분탕질했습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대개 ‘단순 간단’ 하고, 거짓일수록 ‘복잡 미묘’ 한 법입니다. 채동욱 사건의 진실은 별게 아닙니다. 혼외자가 맞느냐 아니냐, 채가 억울한 정치공작의 희생자냐 아니냐, 두 가지입니다. 떳떳하다면 유전자 검사로 결백을 증명하고, 뒤가 구리면 스스로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의 용서를 구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야당과 좌파들이 물고 늘어지는 ‘미운 검찰총장 찍어내기’ 정치 공작설이 오히려 힘을 받으면서, 박근혜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그는 혼외 자식설에 대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 완강히 잡아뗐습니다. 첫 번 째 거짓말이었죠. 이 거짓말 하나를 덮기 위해 7 가지-70 가지의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 내야했습니다. 무수한 거짓말로 포장된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혼외자는 없고 정권의 찍어내기 정치공작은 있다” 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그가 이모라 부르며 연하장과 ‘촌지’까지 건넨 임 여인 집 가정부의 폭로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세상은 ‘잘 나가는’ 검찰총장 보다 ‘별 볼 일 없는’ 가정부에게서 진실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이 바람에 야권의 ‘찍어내기 정치 공작설’ 마저 설 땅을 잃게 됐습니다.


친노는 배반의 탈을 벗어라


문재인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이 만만찮은 기세로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도 거짓의 음험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삭제, 은닉, 복구, 사본, 원본, 복구본, 유출본, 국정원본, 봉하마을본….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지, 미국 남부 흑인 사투리 알아듣기 보다 더 고약한 말들이 다양한 버전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건도 진실은 간단명료합니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에서 노가 서해바다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 시키는 발언을 했느냐의 여부, 그리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참여정부가 원본 그대로 국가기록원에 넘겼느냐의 여부입니다.

문재인은 국가기록원에 분명 넘겼다고 했습니다. 헌데 지난 2달간의 검찰조사에서 다른 결론이 나왔습니다. 문재인의 주장인 “NLL 포기 대화록은 없고 국가기록원에 정상회담 회의록은 있다”가, 검찰조사에서는 정반대로 “NLL 대화록은 있고 기록원에 정상회의록은 넘어가지 않았다”로 바뀐 겁니다. 더구나 검찰은 대화록 원본이 삭제-조작된 복구본을 노무현 생가인 봉화마을의 이지원(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에서 찾아내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봉화 이지원은 노무현이 퇴임 때 무단 반출했다가 5개월 뒤 위법논란이 일자 마지못해 반납한 겁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진실은 명확해 보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서해 바다를 평화수역으로 관리하는 문제를 깊숙이 논의했습니다. 청와대로 돌아와 당시 발언 녹취록을 들어 보고는 보수적인 후임 대통령에게 그대로 넘겨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예민한 부분을 삭제하라 지시했습니다. 검찰은 그 시기를 퇴임 한 달 전인 2008년 1월께로 보고 있습니다. 삭제본 마저 불안했던지 그는 그것을 아예 봉하마을로 불법 반출했습니다….

당시 통일부장관 이재정, 국정원장 김만복, 비서실장 문재인, 그 밖의 고위 친노 인사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돌아가면서 거짓말, 억지 주장, 말 바꾸기, 둘러대기, 시침 떼기 쇼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저’라는 ‘낮춤 1인칭’을 쓴 게 마음에 걸려 이를 모두 ‘나’로 수정한 후 원본이라 주장한 사람들입니다. 노 대통령의 NLL 발언 자체 보다는 새누리당이 지난 해 대선 때 이 대화록 이슈를 들고 나온 게 더 큰 문제라고 강변합니다. 채동욱 혼외자식 보다는 미운 검찰총장 찍어내기 정치공작이 더 큰 본질문제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친노들은 이쯤에서 거짓과 억지의 탈을 벗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발언을 김정일에게 했다 해도, 국민들은 그것이 남북 화해협력과 전쟁방지를 위한 충정에서 했으리라 이해 할 겁니다. 문재인은 지난 대선 때 자신에게 표를 몰아 준 수많은 지지자들과, 그를 정직하고 깨끗한 정치지도자로 믿는 다수 국민들의 신뢰를 배반해서는 안 될 겁니다. 그는 소속 당인 민주당에도 엄청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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