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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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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10월 4일 자엔 안병욱 가톨릭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나는 분노한다」라는 제하의 연쇄 인터뷰 시리즈 중 스물여덟 번 째 인터뷰이(interviewee)로 초대된 안 교수는 여기서 진보좌파 학자답게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분노를 마음껏 폭발시켰습니다. 인터뷰 기사의 메인타이틀은 “마피아 보스와 비슷…박근혜의 봄날은 갔다”였습니다. 사흘 후 10월 7일 안병욱 교수의 별세 소식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사흘 전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나 역시 잠시 충격에 빠졌습니다. 안병욱을 삐딱하게 보는 보수층 인사 중엔 “박근혜의 봄날이 갔다더니 자기가 먼저 갔네?” 라며 빈정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지요. 헌데 이날 세상을 떠난 분은 좌파학자 안병욱이 아니라, 그와 동명이인인, 한국의 대표 지성이며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은 전 숭실대 철학과 교수 안병욱 박사였습니다. 가톨릭대의 안병욱(安炳旭 ․ 65)이 ‘늘 분노하는 안병욱’이었다면, 숭실대의 안병욱(安秉煜 ․ 92)은 ‘평생 사랑을 말한’ 안병욱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분노 안병욱’은 잘 모릅니다. 허지만 ‘사랑 안병욱’은 대학생 때와 사회 초년생 시절인 2~30 나이 때, 그의 저서를 통해 자주 만났습니다. 그는 수필도 쓰고 시도 썼습니다.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을 섭렵하며 이 시대의 인간성 상실과 가치관 혼란을 고뇌한 철학자 안병욱–. 그의 학문세계와 본격 대면할 기회는 없었지만, 중고등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짧은 문장의 주옥 같은 수필과 에세이집은 많이 찾아 읽었습니다. 자신의 저서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고르라면 이 책을 고르겠다고 발문(跋文)에서 쓴 <인생론>은, 지금도 가끔 책장에서 꺼내 읽고 있습니다. ‘사랑 안병욱’은 <신의 선물>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신의 선물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사랑은 배려 책임 존경 이해 그리고 주는 것. 사람의 근본은 사랑, 서로 사랑하자….”
안병욱 vs. 안병욱, 사랑과 분노
한국 철학계의 태두(泰斗) 안병욱과 한글 이름이 같은 가톨릭 대학의 안병욱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해 온 좌파 계열 역사학자입니다. 지난 2000년부터 10년 가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의문사 진상위원회위원,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등 화려한 폴리페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는 최근 가톨릭대 국사학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했습니다. 정년퇴임 기념(?)으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 좌파매체들과 연쇄적으로 일종의 ‘묻지마’ 인터뷰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부를 통렬히 씹어댔습니다. “… 지금은 (전두환이 국민에 굴복한) 1987년 6월 항쟁 직전의 분위기다. 완벽한 유신부활이다. 그러나 계엄령이나 긴급조치처럼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수단이 박근혜에게는 없는 게 문제다. 박근혜의 인사는 마피아 스타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결코 연착륙 하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4년 반…봄날은 갔다.” 오마이뉴스의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요약하면 앞으로 4년 반 한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마피아 식 ‘폭정’에 시달려야 하고, 박근혜는 ‘아마도’ 퇴임 후 사저 보다는 감옥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도 했습니다. “…결국 귀결은 (국민과 대통령 중) 한 쪽이 무너지는 것인데 지금은 시민사회와 국민이 무너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지 않나. 누가 무너지겠나. 객관적으로 보면 박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그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 카드는 그가 최악의 궁지에 몰렸다는 증거다. 박근혜의 봄날은 갔다….”
‘닭그네 도리탕’을 아시나요?
서울 홍대 앞 유흥가에 최근 ‘닭그네’라는 간판을 내 건 음식점이 등장했습니다. 메뉴 이름도 ‘닭그네탕’ ‘닭그네도리탕’ 등 입니다. 닭그네는 박근혜한테 포한(抱恨)한 범 좌파 진영이 그를 조롱하는 의미로 쓰는 별명입니다. 이 음식점이 지난 여름까지는 ‘이명닭(발)’ 이라는 괴이한 상호를 내 걸었던 것으로 봐, 주인이 지독한 레프트핸디드(left-handed)인 것 같습니다. 숟가락을 왼손으로 잡는 손님들한테는 “반갑다, 친구야!” 하면서, 밥값을 반만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거의가 미국산 호두를 써 ‘천안 호두과자’ 대신 ‘미국 호두과자’로 불릴 판인 호두과자에도, 대통령을 비하하는 별명을 상품명으로 붙인 게 등장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 온 이 호두과자는 포장상자에 ‘고노무 호두과자’란 상표명이 붙어 있다지요. ‘중력주의’ ‘추락주의’라는 난해한 글귀와 함께,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형상이 트레이드마크로 새겨져 있습니다. 투신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노무’라는 비하 욕설로 희화화되고 있는 거지요. 올해 2월에는 어떤 카페에 ‘이명박 퇴임기념 감빵’이라는 메뉴가 등장했습니다. 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감빵(감옥)에 보내자는 뜻이 담긴 메뉴지요. 4년 반 후 이 카페 메뉴엔 ‘박근혜 퇴임기념 감빵’이라는 새로운 빵 메뉴가 등장할지 모릅니다. 박근혜를 반드시 ‘빵’으로 보내자는 열망을 담아….
박근혜의 봄날은 갔는가?
잇단 해외순방의 영향으로 소폭 반등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최근 다시 하락하면서 3주 연속 5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리얼미터의 10월 셋째 주 조사에서 취임 34주차 지지율은 57.9%로 전주에 비해 1.9% 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지율은 춤을 추지만 60% 전후의 비교적 안정적인 등락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라는 게 국정수행 능력이나 실적에 크게 좌우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라, ‘좋고 싫음’의 대상입니다. ‘닭그네 파’들이 똘똘 뭉쳐 그를 공격해 오면 ‘우리 그네님 파’들은 더욱 더 똘똘 뭉쳐 그를 결사옹위(決死擁衛)하고 나섭니다. 지지율의 편차가 크지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좌파 역사학자 안병욱의 분노처럼 박근혜는 마피아 식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걸 까요. 지금의 정치가 유신의 완벽한 부활일 까요. 국민과 시민사회에 의해 박근혜는 무참히 무너지게 될까요. 그의 봄날은 정말 간 걸 까요. 객담 같지만 나는 열흘 중 나흘 정도는 친박(親朴)이고 엿새 정도는 반박(反朴)입니다. 그가 좋아졌다 싫어졌다, 뒤죽박죽입니다. 이게 엿새 친박, 나흘 반박으로 뒤바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박근혜가 좋아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봄날’을 위해, 박근혜가 근사해 보이는 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씹기‘가 고스톱 보다 더 재미있는 ’국민 오락‘이 된 나라–. 정상일 수 없습니다. ’사랑 안병욱‘은 6년 전에 펴 낸 저서 <철학의 즐거움>에서 ’편견의 노예, 독선의 포로, 아집의 종‘ 3가지를 자유롭고 평화로운 민주사회를 방해하는 마음의 독소로 꼽았습니다. <정년퇴임 기념 대통령 씹기 대회>에 나서고 있는 ’분노 안병욱‘한테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