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성진 취재부 기자 지난 1979년 12월 영문주간지 ‘Koreatown Weekly’에는 톱기사로 랑코 야마다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랑코는 “1979년 5월 14일 이철수씨가 사형수로 선고를 받는 순간 내 몸은 칼로 베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면서 “아마도 내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런 일 중의 하나였다”라고 말했다. 이철수씨가 ‘차이나타운 살인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체포됐을 때 나이는 20세, 당시 랑코도 이철수씨와 동갑내기였다. 랑코는 자신의 언니가 이철수씨와 교제하면서 자연히 알게됐다. 이철수씨에 대한 처음 인상은 독립심이 강한 남자로 보였다. 나중 이철수씨가 다른 여성과 데이트를하면서 그들은 자연히 멀어져 갔다. 그러다가 랑코는 친구집에서 우연히 신문을 통해 이철수씨가 체포당했다는 기사를 읽게됐다. ‘이철수씨가 갱단의 사주를 받고 ‘입이택(Yip Yee Tak)이란 중국 갱을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랑코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철수씨가 범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았다. ‘이철수씨가 중국 갱이라고?’ 랑코는 그로부터 이철수씨가 1983년 3월 28일 옥문을 걸어서 나올 때까지 ‘이철수의 정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절망의 사형수위해 동분서주 랑코는 처음 체포되어 캄캄한 옥중에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라고 생각한 이철수씨에게 “나는 너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것을 믿는다”고 편지를 보냈다. 사형수가 있다는 샌퀸틴 교도소 독방에서 자살을 생각한 이철수씨에게 “많은 사람들이 너의 무죄를 믿고 있다”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이경원 기자는 폭로기자답게 6개월간에 걸친 취재과정을 통해 경찰과 검찰 그리고 관선변호인이 수사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행한 사항에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이철수씨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했던 재판, 무엇보다 이철수씨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고 주장했음에도 이를 철저하게 조사하지도 않았던 점, 검찰과 경찰이 내 세운 증인들이 밝힌 증언들조차 확실하지 않았던 많은 의문점들은 사법제도의 맹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무엇보다 물증도 없이 경찰이 이철수씨를 범인으로 몰아 갔다는 폭로기사는 그동안 무심했던 한인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한인들이 이철수 사건을 보는 시각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이 범인으로 발표할 때부터 아예 범인으로 보는 한인사회 언론의 시각을 송두리채 바꾸게 되는 계기를 주었다. 소중한 정의, 진실의 승리 오죽하면 당시 이철수의 어머니(작고)는 한국 언론이라면 인터뷰 조차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욕부터 나올 정도였다. ‘이철수 후원회’는 LA, 뉴욕 등 주요도시들은 물론 한국에까지 결성됐다. 미주한인 이민역사에서 한인들이 동포의 인권을 위해 거족적으로 네트워크를 결성하기는 처음이었다. 한국인들이 일본계, 중국계, 필리핀 계들과 연대하여 동양계가 동양인의 인권을 위해 범연대 조직체를 구성한 것도 아시안 이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82년 이철수씨의 ‘차이나타운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이 드디어 개시됐다. 재심이 받아 들여지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결국 1982년 9월 3일 새프란시스코 법정에서 이철수씨에게 “무죄!”라는 평결이 내려졌다. 이철수씨 옆에 있던 랑코는 이씨를 포옹하며 “우리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한인동포 노인들로 꽉찬 방청석에서는 일제히 의자를 박차고 두 손을 높이 들어 “우리가 이겼다”라는 함성을 외쳤으며 눈물범벅이 되었다. 이철수씨는 1차 ‘샌프란시스코 살인사건’에 대해 법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1년 후 캘리포니아 제3지구 항소재판부는 교도소에서 벌어진 ‘옥중살인사건’에 대한 1급 살인 유죄 평결도 파기했다. 1983년 3월28일 이철수씨는 억울한 살인누명으로 체포당한지 9년 9개월, 즉 3개월 모자라는 10년만에 자유의 몸으로 옥문을 나섰다. 누구보다 이날을 기다려 온 랑코 야마다가 달려가 이철수씨와 포옹을 나누었다. 랑코 야마다는 가냘픈 여성이지만 진실을 믿고 싸운 그녀가 있었기에 소중한 정의를 지킬 수 있었다. 랑코 야마다의 진실의 승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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