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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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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이 있던 날은 한국날짜 12월 7일 새벽, 이곳 LA는 6일 오후였습니다. 조 추첨이 행해지고 있던 시각 인터넷을 틀어쥐고 앉아, 현지로부터 실시간으로 전해져 오는 조 추첨 소식을 눈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한국은 H조에 편성됐다는 제1보가 들어왔고 이어 ‘죽음의 조’를 피했다는 소식, 유럽리그 중위권 팀 및 아프리카 최약체 팀과 맞붙게 돼 16강을 기대해 볼만 하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그 다음 궁금한 게 당연히 일본이었지요. “일본을 제발 죽음의 조로….” 나는 고약하게도 이렇게,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외친 항일투사 장지연 선생이라도 된 듯 일본축구를 저주(?)하며, 그들이 죽음의 조에 드는 상상에 들떴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속 터지게도’ 죽음의 조를 피해 C조에 편성됐습니다. 다인종사회인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지천명(知天命)의 이 나이에…아직도 내 심장이 왕성한 극일(克日)감정으로 쿵쾅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고 약간은 겸연쩍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정세는 월드컵 ‘죽음의 조’
12월 17일은 북한의 애송이 세습 지도자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은 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버지 김정일의 급사로 갑작스레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의 통치 2년은 어디로 튈지 모를 아슬아슬한 돌출행동과 기행적(奇行的) 망난이 짓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최근 고모부인 장성택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체제불만 주민에 대한 끔찍한 공개처형, 잇단 대남도발 등 김정은식 ‘피의 공포정치’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한반도 주변정세를 더욱 예측 불가능한 안개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남북한과 주변 4강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한반도 주변에서는 지금 월드컵 ‘죽음의조’ 경기와 비슷한 절제절명의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최남단 이어도 주변과 센카쿠 열도를 포함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는 한 중 일 3국의 과거사-영토 갈등에다, 항공식별구역을 둘러싼 3국의 분쟁에 미국까지 끼어들면서, 범상치 않은 위기국면이 조성되고 있지요. 미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각각 한편이 돼, 월드컵 식으로 치면 16강 진출을 위해 같은 편 끼리 서로 유-불리를 따져 이기고 져주는 복잡한 게임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을 순방한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정색을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용납치 않겠다는 협박인 셈이지요. 독립국가의 외교주권을 무시한 바이든의 막말외교는 많은 한국인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애매한 스탠스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좇아 왔습니다. 바이든의 ‘베팅론(論)‘으로 미국의 본심이 드러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이 주구장창 강조하는 신뢰외교라는 게 뭔지, 추구하는 목표가 어딘지, 국력을 소진시키고 있는 국내정치 등 내재적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를 다시 정리해 주변4강 외교에 새롭게 접목시킬 때가 됐습니다.
난무하는 여의도 自害정치
평양에서 이어도까지 한반도 정세가 요동친 지난 3주, 한국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와 연평도-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친북 발언,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대통령 사퇴 기자회견, 양승조 최고위원의 박근혜 암살 선동 발언에 따른 국회일정의 전면 파행 등, 집안싸움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경기에 나가기도 전에 감독과 선수, 선수와 선수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한국은, 미 중 일 러와 남북한 6개 팀이 격돌하는 외교안보전쟁 동아시아 지역 예선 ‘죽음의 조’ 경기에서, 이미 예선탈락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서울에선 주말마다 박근혜 아웃을 외치는 좌파단체들의 시위가 벌어져 도심이 거의 마비되고 있습니다.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 항의를 하면 “너 죽어볼래?”하며 시위대로부터 주먹이 날아드는 살벌한 분위기라고 하지요. 지난 주말 시위대에 밀리던 경찰은 결국 물대포까지 쐈습니다. 5년 전 광우병 촛불파동 초기, 서울도심이 반정부세력의 해방구가 되던 때의 그 모습이 그대로 연출되고 있습니다. 엊그제 장하나라는 낯 선 이름의 민주당 초선 30대 여성의원이 박 대통령의 사퇴를 또 다시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안경만 벗으면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에 나오는 ‘여고생 귀신’을 빼닮은 장하나는, 사용하는 언어, 말씨와 표정이, 80년대 대학 운동권 투사의 코스프레 그대로였습니다. 장하나에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 양승조가 ‘박근혜 암살’을 선동하는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습니다. 민주당은 “당론이 아닌 의원개인의 독자발언”이라며 한 발을 뺐고, 새누리당은 두 의원의 제명결의안을 냈습니다.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 ‘당론 아님’을 강조하는 야당의 속 보이는 태도나, 뻔히 안될줄 알면서 야당의원 제명결의안을 너무나 쉽게 몰아 부치는 여당의 작태 모두가 위선이며 독선입니다. 입만 열면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적인 거리의 불법폭력시위 하나 막지 못하는 것은 극단적 무능입니다. 여의도엔 지금 너 죽고 나 죽자는 자해(自害) 정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야당과 종북, 차라리 커밍아웃을
야당도, 종북 세력도,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 정의구현사제단은 종북 맞다….” 차라리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고, 박근혜 정부 퇴출운동에 함께 나서는 게 어떨지요. 요즘은 종북 한다고 잡혀가는 세상도 아니고, 국가보안법은 거의 사문화됐습니다. 김일성 시신을 참배하고 온 밀입북 ‘종북‘한테 판사가 “어른 공경하는 동방예의지국 국민의 마음씨가 기특하다”며 무죄를 선고하는 세상입니다. 노무현식 표현법으로 “정의구현사제단은 ‘종북’ 맞습니다, 맞고요….” 정구사 신부 문정현과 문규현 형제 등은 어쩌면 ‘종북, 그 이상’ 일수도 있는 자들입니다. 지금 제주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매일 공사훼방 미사를 올리고 있는 문정현의 지난 2002년 발언을 되살펴 볼까요. 그는 경북대 통일아카데미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만경대 금수산 궁전에 가서 ‘김일성 장군님, 조금만 더 사시지 아쉽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돌아왔다.” 문정현은 지금쯤 밤마다 금수산 궁전을 향해 다음과 같은 묵상기도를 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수령님,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손자 대장께서 손에 피 묻히는 일을 수령님 보다 더 좋아 하십니다.” 문정현의 동생 문규현은 임수경 방북을 수행하고 돌아와 수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죽자 또 다시 방북해 김의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가 방명록에 쓴 글은 “수령님의 영생을 빕니다”였습니다. 문정현 문규현 형제신부는 장성택과 수만 명에 달하는 장성택 사람들을 상대로 피의 숙청극을 벌이고 있는 김정은을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유일독재체제를 위해 공개처형 등 광란의 살인극을 벌이고 있는 북쪽의 애송이 지도자에게 “김정은 대장동지 파이팅! ”–.이런 카카오톡이라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자들이 종북이 아니면 누가 종북일까요. 문정현-규현 형제신부 같은 ‘진골(眞骨) 종북’들이 종북 소리만 나오면 팔짝뛰는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이들의 종북 카프리치오(capriccio-광상곡)는 어떤 운율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