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춘훈(언론인) |
|
|
서울에 ‘정말 순 진짜 100% 원조 국밥집’이라는 상호를 내 건 음식점이 있습니다. 직접 가 보지는 못해 수식어가 무려 다섯 개나 붙은 그 집의 국밥 맛이 ‘진짜 정말 확실히 100% 짱 !’ 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느 수필가가 쓴 글에서 그런 집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서울에서 그런 간판을 내 건 국밥집을 발견해도 언뜻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밥 맛에 정말 자신이 있으니까 저렇게 광고를 하겠지” 보다, “얼마나 맛이 없으면 저렇게까지 과장선전을 할까”에 시쳇말로 필(feel)이 꽂힐테니 말입니다. 불신시대입니다. 만인이 만인을 믿지 않고, 만인이 만인을 의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밥집’이 ‘원조 국밥집’이 되었다가 다시 ‘100% 원조 국밥집’이 되고, ‘진짜 100% 원조 국밥집’이 되었다가는 또 다시 ‘순 진짜 100% 원조 국밥집’이 되고, 마침내는 ‘정말 순 진짜 100% 원조 국밥집’이 되는 세상입니다. 순(純)은 불순(不純), 진짜는 가짜, 정말은 거짓말로 읽히는 이 불신시대의 슬픈 자화상(自畵像)을,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철도노조 파업사태입니다.
철도파업…불신시대의 자화상
박근혜 ‘불통정부’와 코레일의 ‘꼴통노조’, 이들 싸움에 물 만난 고기떼처럼 달려든 ‘깡통 민노총’ 등 ‘몹쓸 3통’들의 연말 대회전(大會戰)이 갈수록 가관입니다. 애먼 국민들만 죽을 맛입니다. 적자투성이 불량공기업인 철도공사 코레일의 ‘민영화’ 여부가 쟁점입니다. 회사와 정부는 민영화 계획이 없다는데도 노조는 ‘민영화 꼼수’가 분명 있다며, 수서발 KTX 자회사의 신규설립을 결사 저지하고 나섰습니다. 파업이 3주째를 넘기고 있어 국민생활의 불편은 물론 산업현장의 피해가 국민경제를 뒤흔들 정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코레일 사장이 나서고, 국토장관과 안행(安行)장관이 나서고, 부총리와 총리가 나서고, 마침내는 대통령 까지 나서 “민영화는 없다”고 부인을 하는데도 노조는 콧방귀입니다. 불신-. 혹독한 불신입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마지막으로 써 볼 한 가지 처방이 있기는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 노조한테 ‘국밥집 버전’으로 직접 설득을 해 보는 겁니다. “민영화 안합니다. 정말 진짜 확실히 결단코 100% 안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민영화만큼은, 100% 결단코 확실히 진짜 정말 안하겠습니다….”
여론전에서 밀린 박근혜 정부
코레일의 적자는 현재 17조6천억원으로 하루 이자만 13억원이 나갑니다. 이런데도 웬만한 철도기관사의 연봉은 비슷한 직종인 고속버스 기사보다 2~3배 많은 8~9천만원입니다. 미국철도인 Amtrak 보다 많습니다. 코레일이 지고 있는 부채는 국민 한 사람 당 35만원 꼴-. 해마다 5만 원 이상 씩 늘어납니다. 지난 3주 동안 이런 수치들이 낱낱이 보도 돼 국민들은 ‘철밥통’을 지키겠다고 국민의 발인 철도를 인질 삼아 파업을 하고 있는 노조 측 주장의 허구성을 알 만큼 알게 됐습니다. 헌데도 여론은 의외로 이들에 동정적입니다. 시중엔 ‘철도괴담’이 넘쳐납니다. 민영화가 되면 지하철 요금이 다섯 배나 오른 5000원이 될 것이라는 등의 내용입니다. 코레일의 방만 운영 실태와 철밥통들의 가당찮은 탐욕을 국민들에 알리고, 경영개선이 되면 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 지하철과 철도 요금이 오히려 내릴 수도 있다는 등의 사전 홍보를 정부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민영화 프레임에 갇혀 “민영화 안한다”만 앵무새처럼 읊고 있는 동안, 노조는 국민들 귀에 쏙쏙 들어오는 황당무계한 괴담들을 만들어 시중에 퍼 날랐습니다. 이게 먹혀들었습니다. 정부가 여론전에서 노조에 완패를 당한 거지요.
공기업 개혁, 명분 옳지만 방법 틀려
지난 정권에서 대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을 이슈화 해 정권퇴진운동까지 벌였습니다. 반값 등록금?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코레일의 연간적자 5000억원을 없애면 대학생 14만명의 반값 등록금이 실현됩니다. 국민혈세를 분탕질하는 철도노조가 불쌍하다고 대학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을 위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써 붙이고 있습니다. 코레일 등 적자공기업이 자신들의 반값 등록금을 갉아먹는 불가사리들이란 것을 어리석게도 젊은이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686개 대한민국 공기업의 총부채는 현재 566조원 정도입니다. 국가부채 443조원 보다 많습니다. 일부 공기업은 누적부채로 이자도 갚지 못해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데, 코레일이 대표적입니다. 대통령 선거 때 마다 후보들은 공기업 개혁을 공약하지만 ‘철밥통’들의 결사 저항과 정부의 무능과 의지부족, 국민들의 무관심과 비협조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노조원 인원수가 3만명으로 가장 많고, 고질적인 영업적자로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코레일의 개혁에 나섰습니다. 대표적 강성노조인 철도노조부터 ‘제압’한 후 그 추동력으로 다른 공기업 개혁에 나설 계획인 것 같습니다. 법과 원칙대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옳았지만, 국민설득 실패와 어설픈 강공 드라이브로 여론전에서 밀리면서 지금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노조간부 몇 명 잡겠다고 5000명이나 되는 경찰병력을 동원해 강성 노동단체인 민주노총 사무실을 ‘습격’한 것은 패착이었습니다.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치러왔을 때도 그리 많은 경찰병력이 동원되지는 않았습니다. 수천 명의 노조원들을 한꺼번에 직위해제 시키면서 노조 측을 자극시킨 것도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강경책은 실속도 없이 박근혜 정부에게 무자비한 노조탄압정부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면서 여론만 악화시켰습니다.
대통령이 나서 국민설득 부터
코레일 등 공기업 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합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박근혜 정부가 끝나는 4년 후 공기업 부채규모는 1년 GDP 수준에 이르러 국가파산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코레일 노조에 굴복해 개혁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면 다른 공기업 개혁 역시 손도 못대게 됩니다. 원칙주의로 밀어붙이되 노사문제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여부는 결국 여론에 달려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기업개혁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국민 앞에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불편을 참고 감내하며 노사간-노정간 대타협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합니다. 대타협이 어떻게 이뤄질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 주문하고 싶습니다. ‘국밥집 버전’으로 말입니다. 3시간 일하고 8시간을 쉬면서 9천만원의 연봉을 받아가는 ‘귀족’ 철도노조의 기관사들이 “지금 이대로…”를 외치며 철밥통을 지키려는 것만큼은 “정말 절대로 진짜 확실히 결단코 100%” 들어줘서는 안됩니다. 한국에는 하루 열 몇 시간씩 일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 벌이도 못하는 “정말 진짜 확실히 불쌍한” 일용직-임시직 근로자들과, 이런 일자리조차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중장년실업자와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민노총과 철도노조의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습니다. 지난 한해를 차분히 갈무리하고, 새 해의 소망과 희망을 빌어 볼 이 성찰(省察)의 세모에 이 무슨 ‘난리 굿’인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은 정권 급변사태 보다 박근혜 정권 급변사태가 더 걱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