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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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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주필 출신인 보수논객 유근일은 지난 주 철도파업 ‘진압’의 주역인 두 철혈(鐵血) 여성을 한껏 치켜세웠습니다. “사내놈들 열 명-백 명이 못한 일을 두 여자가 해냈다”고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 칼럼에 썼습니다. ‘두 여자’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고, ‘사내놈들’은 공기업 개혁에 손 댔다 강경노조에 백기투항(?)한 4명의 전직 대통령입니다. 코레일 사장 최연혜는 네티즌들에 의해 차기 대통령 감으로 홀연 떴습니다. 이 정부의 1기 내각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도무지 존재감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 사람으로 3년이나 장수한 김관진 국방, 컬럼비아대 출신 미국통에다 ‘사진 발’이 좋은 조윤선 여성가족, ‘무능해 유명한’ 현오석 기획재정부장관 등 서 너 명을 빼고는, 나 개인적으로 이름이 기억되는 장관이 별로 없습니다. 지난 10개월간 드러난 장관들의 업무추진 능력이나 일에 대한 열정, 부처 장악 능력 등은 대부분 낙제점이었습니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온 나라가 난리굿인데 주무장관인 고용노동장관은 TV에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지요. 대통령 스스로 철도파업 사태를 겪으며 “장관들이 이런 중요 문제를 남의 일 보듯 한다”고 질책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새로 출범한 정부의 초대내각이 이렇게 ‘날라리 일색’인 건 과거정부에선 없던 일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장관들로 집권 2년차의 ‘개막 팡파르’를 울렸습니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의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언론과 정치권, 다수국민의 요구를 “개각은 없다”라는 한 마디로 잘라버렸습니다.
대통령 화법은 유체이탈? 좌파의 악담
1월6일 대통령이 ‘드디어’ 국민 앞에 섰습니다. 취임 316일째가 되는 날 첫 기자회견을 갖고, 통일 경제 정치 사회 분야의 국정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밝혔습니다. 여론은 예상대로 진영논리에 따라 찬반이 극과 극으로 갈렸습니다.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혁신 3개년계획과 통일시대 기반구축이라는 양대 과제는,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적 상황과 도전적 비전을 잘 담아냈다….” <중앙일보> “불통과 갈등으로 점철된 임기 첫해 국정의 변화와 소통정치의 싹을 기대했으나, 기자회견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경향신문> 좌파 인터넷 매체 <미디어오늘>은 대통령이 관저에서 기르는 강아지 얘기를 한 것을 두고 뜬금없이 ‘유체(遺體)이탈 화법’이라 저주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상식으로 돌아오라. 말을 왜곡하지 말라.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럽지 않게 하라. 일말의 반성도 없는 기자회견, 절망스러웠다”고 악담을 했습니다. 친박성향의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조차 “대통령 신년회견, 생각이 다른 절반의 국민 설득했겠나”라는 비판적 사설을 게재한 것을 보면,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이 다수국민의 폭넓은 호응을 얻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자신들이 기자회견 직전 제시한 특검 도입, 정치 복원, 경제민주화 실천, 사회적 대타협위원회 구성 등이 모두 거부되거나 아예 무시된 것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의도 정치가 대통령 기자회견 후 더욱 꼬여가고 있습니다.
불통 여전…사회갈등 풀릴까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집권 2년차부터 집중할 핵심 국정과제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한반도 통일기반 구축을 꼽았습니다. 3개년 경제계획 달성을 위해 국민소득 4만 달러, 고용률 70%, 잠재성장률 4%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아울러 “통일은 대박”이란 ‘파격 화법’까지 사용하며 강한 통일기반 구축 의지를 밝혔습니다.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고 거기에 몸을 던져 승부를 거는 박근혜 스타일의 복원”이라고 보수언론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문제는 ‘박근혜 스타일’의 다른 뒷면, 즉 여전히 완고한 ‘불통’ 스타일과 ‘날라리 내각’으로 웅변되는 왜곡된 인사 스타일이 전혀 바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국면 전환용, 이벤트성 인사개편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론은 지금 국면전환용 개각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일을 안 하는 장관, 못하는 장관, 그르친 장관을 솎아 내 내각이 심기일전하도록 분위기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떨어지는 장관을 교체하라는 빗발치는 여론을 “잦은 개각은 업무의 영속성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진짜 의중(意中)은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각과 참모진을 자주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사실패를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게 싫은 겁니다. 인사에 관해 유달리 결벽증이 심하다는 박근혜 특유의 고집과 오기가 문제를 키우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불통 얘기가 나오자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옳지 않은 것에 적당히 타협하고 수용하는 게 소통이냐”고 되레 따지고 들었습니다. 반대나 비판을 떼쓰기로 일축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의지를 거듭 천명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신과 다른 의견, 반대하는 목소리엔 귀를 닫겠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반대와 불법과 떼쓰기를 뿌리치고, 사내놈 백 명이 못한 일-. 바로 철도노조 파업을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한데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는 3월엔 의료계와 좌파단체들이 연합하는 대대적인 의료민영화 반대투쟁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공기업 개혁에 따른 대규모 파업 등 사회갈등도 점점 높아질 전망입니다. 이런 마당에 박근혜 스타일의 불통성 일방주의와 박근혜식 마이웨이 정치가 계속되면, 사회적 분열과 갈등지수가 더욱 높아 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법과 원칙은 최대한 지키되 반대세력을 설득하면서 대타협의 길을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박 친 ‘통일은 대박’
“통일은 대박이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의 백미(白眉)는 이 한마디였습니다.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통일 무용론-통일 반대론을, 그는 작심한 듯 ‘통일 대박론’으로 되받아 응답하고 나섰습니다.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이때, 대통령이 경제회생과 함께 통일문제를 2대 중점 국정과제로 꼽고 국민의 관심을 유도한 것은 시의적절했습니다. 통일에 앞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우선 필요하다고 그는 판단했을 겁니다. 원래 청와대 참모들이 준비한 기자회견 답변문엔 대박 표현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통일이라는 절제절명의 주제로 젊은이들한테 다가가기 위해, “대통령의 품위에 걸맞지 않는 천박한 언어“라는 일부비판을 각오하고 ‘대박’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은 ”대박이 곧 쪽박이 될 것“이라고 이죽댔지만, 인터넷엔 ”서민적 표현이 오히려 좋다. 통일은 대박 맞다. 느낌이 좋다“는 따위의 호의적 반응이 많았습니다. 대박은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뜻으로, 2008년부터 국립국어원 사전에 올랐습니다. 비속어가 아닌 표준어로 등재돼 있지요. 초중고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은 하루 한 사람이 최소 10번 이상씩 대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영어의 get 처럼 수십 수백 가지의 뜻으로 다채롭게 원용돼 쓰이는 단어가 바로 대박입니다. “통일은 대박이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민족에게 통일 그 이상의 대박이 또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