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현 정치지형은 물론 4년 후 19대 대통령 선거의 향방도 가를 6.4지방선거가 4개월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다. 광역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의원 전원을 새로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여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 창당을 앞 둔 안철수 신당, 정의당 등 진보세력, 그 밖의 무소속 후보 등이 난립하는 과거 어느 지방선거보다 치열한 다각구도 속에 치러질 전망이다. 최대변수는 역시 안철수의 파괴력이다. 안철수계의 후보들이 수도권과 호남, 기타 한 두 군데 지역에서 약진하면, 조만간 창당되는 안철수 신당은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제3당으로 태어나 안철수의 2017년 대권 플랜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안철수 신당의 6.4선거 전략은 얼마 전 영입된 새정치추진위 윤여준 의장의 그랜드플랜에 따라 짜여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춘훈>
안철수 신당의 ‘결사’ 공략대상은 서울시장이다. 현직인 박원순 민주당 후보를 꺾을 경쟁력 있는 후보는 아직 어느 당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박원순을 이길 후보는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보궐선거에서 ‘아름다운 양보’로 그를 시장으로 만들어 준 안철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만약 서울시장 선거가 안철수와 박원순, 새누리당 후보 간의 3자 대결구도로 치러지면 누가 이길까.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야권 표가 갈라지면 여당후보가 유리하겠지만 안철수가 무당파-중도표 대부분을 흡수하고 기존정치에 식상해 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지지자 일부의 표를 효과적으로 끌어 모으면 안철수가 이길 가능성도 높다. 어느 경우든 박원순 현 시장은 불리해진다는 얘기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는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일부 정치 평론가들이 종편TV 등의 시사대담 프로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도다. 안철수 진영 역시 “고려대 장하성 교수 등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서울시장에 반드시 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힐 뿐 안철수의 직접출마 가능성을 내 비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윤여준 의장은 “서울시장 후보는 반드시 낸다”고 기회 있을 때 마다 말해 왔다. 일부에서는 서울시장을 민주당에 양보하고 대신 경기도 지사를 민주당에서 양보 받는 단일화 빅딜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야권후보 단일화를 바라보는 민심이 예전 같지 않은데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안철수 신당후보가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다. 새누리당 소속인 김문수 현 지사가 오늘 불출마를 거듭 천명함에 따라 경기지사는 김진표 등 현재 여론조사 상위권에 올라있는 민주당 후보들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이 그리 쉽게 경기도를 안철수 쪽에 양보할 수 없는 이유다. 안철수는 호남에서 인기가 높다.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은 전통적으로 이 지역을 연고로 한 민주당을 크게 앞질러 왔다. 그러나 지방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면서 안철수 지지 거품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미가 포착되고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백중세이거나 약간의 우세, 일부지역에선 오히려 민주당에 열세로 돌아섰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 표가 선거가 임박하면서 민주당 쪽으로 다시 결집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 측은 새누리당 지지세가 예전 같지 않은 부산에 공을 들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 영입을 추진했다. 신당에 합류할 듯 했던 오거돈은 그러나 엊그제 무소속 출마로 돌아섰다. 안철수당 보다는 무소속 출마가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호남에서 한 두 자리, 부산에서 한 자리의 광역 단체장을 바라던 신당엔 비상이 걸린 셈이다. 이번 광역 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하면 안철수 신당은 창당조차 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총선 등 큰 선거를 앞두고 창당했다가 선거 결과가 신통찮아 사라진 정당은 많다. 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97년 이인제의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21, 2007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등은 모두 오래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새정치추진위는 오는 27일께 안철수 신당의 창당 일정 등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인재영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창당작업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최근 지지자들의 이탈 움직임 까지 나타나면서 창당일정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다는 당내의 목소리가 높았다. 문제는 신당창당을 선거 전에 할 것이냐 후에 할 것이냐 인데 어느 쪽인지를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윤여준 의장은 선거 전 창당을 목표로 속도전을 펴 왔지만 인재영입 부진, 실무를 담당할 인적자원 부족 등 여건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선거 후 창당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직접출마는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한 건곤일척의 승부수로 고려할만 하다고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바람이 불면 바람은 호남과 부산 까지 이어져 전국적 선거 판세를 뒤흔들 수도 있다. 안철수의 의표를 찌르는 승부수는 “유약하고 리더십 부족하고 목표지향적 결기가 부족하다”는 이른바 ‘간철수’ 이미지를 일거에 털어 낼 수도 있다. 부통령 급인 서울시장으로써 행정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잠재적 대권주자인 그로서는 결코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문제는 출마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다. 그가 낙선하고 호남 부산에서 전패하면 안철수당은 창당도 못하고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가 서울시장 출마라는 승부수를 띄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번 6.4 지방선거는 여당에 대체로 불리한 선거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 선거 후 치러지는 큰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짙은데다 정부여당 견제심리까지 겹쳐 야당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불출마로 여당인 새누리당은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전패의 위기에 몰렸다. 선거 전체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서울시장 선거도 여당의 절대열세로 나타나고 있다. 새누리당의 잠재후보 중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정몽준 의원도 박원순 민주당 후보한테 40% 대 50%로 뒤지고 있다. 여당이 바라는 것은 결국 민주당과 안철수당의 싸움으로 인한 반사이익, 즉 어부지리다. 민주당은 야권연대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만, 새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안철수 쪽으로서는 야합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단일화 카드를 덥석 받아들이기도 난처한 입장이다. 민주당과의 ‘공천 빅딜’은 안철수식 새정치가 아니라는 역풍이 불 가능성이 높다. 불과 1년여 전 아름다운 양보로 ‘정치적 절친’ 관계를 맺은 안철수와 박원순-. 이제 어떤 모양새로든 두 사람의 건곤일척의 한 판 승부는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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