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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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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이 관저에서 기르는 애완견(반려견)을 흔히 퍼스트 독이라 부릅니다.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 내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퍼스트 독의 이름은 ‘보(Bo)’로,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 때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선물한 희귀종인 포르투갈 워터 독입니다.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기르는 퍼스트 독은 진돗개 수컷 ‘희망이’와 암컷 ‘새롬이’ 두 마리입니다. 요즘 여러 국정현안에 대해 발언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는 박 대통령은 지난 2월5일 올해 첫 업무보고 자리에서 느닷없이 진돗개 얘기를 꺼냈습니다.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 나갈 때 까지 안 놓는다… 우리는 진돗개 정신으로 비정상적인 제도와 관행을 정상화 해 나가야 한다….” 청와대의 퍼스트 독인 희망이와 새롬이가 “한번 물면 살점이 뜯겨 나갈 정도”의 맹견(猛犬) 진돗개여서 대통령이 이런 비유를 한 걸까요?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희망이와 새롬이는 퍼스트 독 답게 매우 품위 있고 프렌들리 해, 아무나 물고 늘어져 살점을 뜯어내는 그런 막돼먹은(?) 개는 아닌 모양입니다. 아무리 비유법이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이고 살벌할 필요가 있느냐는 일부의 비판여론도 있었습니다. 희망이와 새롬이는 낯 선 사람을 보면 짖습니다. 퍼스트 독이라 해도 개는 개니까요. 허지만 주인인 대통령과 자기네를 돌봐주는 청와대 부속실 직원들, 그리고 외부손님 중 관저로 대통령을 자주 뵈러오는 고위참모들을 보면 짖는 대신 꼬리를 흔듭니다. 청와대 고위인사 중 누가 대통령을 자주 독대하는 ‘실세’인지를 알려면 희망이와 새롬이가 짖어대는지, 꼬리를 흔들면서 반겨 주는지를 알면 된다는 조크도 있습니다.
김기춘, 지방선거 총대 맸나?
요즘 희망이와 새롬이가 얼굴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실세 중의 실세는 누굴까요? 첫째는 김기춘 비서실장, 두 번째는 이정현 홍보수석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6.4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요즘 김기춘 실장이 바빠졌습니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이 짙습니다. 국정원 문제, 경제난, 야권 통합, 일부 종교단체와 급진좌파세력의 대통령 사퇴 요구 등 선거를 앞 둔 시국현안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범야권의 파상적인 정치공세를 차단해 앞으로 원활하게 국정을 수행하려면, 지방선거의 압승으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확인해 보여줘야 합니다. 여당 내 비주류에서 볼멘소리를 하는 이른바 ‘박심(朴心)’ 논란을 무릅쓰고, 청와대가 경쟁력 있는 친박계 중진인사들을 대거 차출해 광역단체장 후보로 내세우려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에서부터 지금까지 40년을 정-관계 요직에 몸 담아 온 노회한 정치 책사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번 선거를 막후에서 진두지휘 하고 있습니다. 박심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김기춘의 마음, 즉 ‘춘심(春心)’이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법조인맥 부상도 春心?
서울시장 경선에 나선 김황식 전 총리, 인천시장 경선에 뛰어 든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장관, 부산시장 경선후보인 서병수 의원, 경남지사 경선후보인 박완수 전 창원시장 등이 박심과 춘심의 합작품입니다. 이 중 경선을 통과해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후보는 현재로서는 유정복 정도입니다. 김황식은 정몽준과의 경선싸움이 버겁고, 서병수는 본선 경쟁력이 앞선 권철현 후보를, 박완수 후보는 지명도가 높은 홍준표 현 시장을 경선에서 꺾어야 하는 힘 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김황식 전 총리는 미국에 체류하다 3월 초 늦게 귀국해 서울시장 새누리당 경선에 뛰어 들었습니다.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김황식은 청와대 김기춘 실장과 출마문제를 놓고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실토해, 이른바 ‘박심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새누리당 내에 자기세력이 거의 없고 정치 초년병인데다가 야당의 박원순 현 시장과의 가상대결에서도 두 자리 수의 절대 열세를 보이고 있는 그가, 뒤늦게 전망이 불투명한 여당 경선에 뛰어 든 이유가 아리송합니다. ‘박심’이라는 ‘믿는 구석’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당원, 대의원, 일반시민 등이 대거 참여하는 경선에서 박심이 과연 손오공의 여의주 같은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김황식의 서울시장 도전은 따라서 김기춘 실장과의 모종의 사전 교감에 따른 ‘자의반 타의반’의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와대가 총력 지원해 시장에 당선되면 좋고, 만약 선전 끝에 낙선을 해도 고위 임명직 등으로 중용(重用)을 하겠다는 밀약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김황식은 김기춘의 법조 후배입니다. 요즘 권력 이너서클 내에 김기춘 직계 법조 인맥이 뜨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지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은 새 방송통신위원장에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최성준을 발탁했습니다. 전임 이경재 위원장은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박근혜 정부 초대 방통위원장 임기 1년을 마치고, 연임이 확실시되던 터였습니다. 대통령에게 최성준을 새 방통위원장에 깜짝 천거한 사람도, 이경재를 깜짝 몰아 낸 사람도 김기춘입니다. 이경재 전임 위원장이 ‘춘심’을 거스르게 된 건 KBS 앵커 출신인 민경욱 청와대 신임 대변인에 대한 ‘부적절한’ 코멘트가 빌미가 됐습니다. 이경재는 지난달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민 대변인 임명문제를 걸고 넘어 지자 “방송사 앵커 출신을 곧바로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이 말이 괘씸죄에 걸린 거지요. ‘막강 춘심’ 앞엔 ‘실세 친박’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이번에 김기춘은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설음’
<총리와 나>라는 TV 드라마가 지난달 한국에서 종영됐습니다. 애 딸린 홀아비 총리가 미모의 여기자와 사랑놀이에 빠지는 얘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류(類)의 드라마입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 자리가 실은 얼마나 하찮은 관직인지를, 이 드라마는 실감나게 보여 줬습니다. 생뚱맞고 황당한 내용에다 극적 재미도 없어, 한자리 수 시청률로 고전하다 조기에 종연되고 말았습니다. 드라마는 그렇다 치고 현 박근혜 정부에서의 국무총리의 위상과 역할은 어떨까요? 지난번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끝장토론은 너무나 ‘별 볼 일 없는’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위상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줬습니다. 대통령과 각부장관, 청와대 참모,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 일반시민 등 6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단 한 마디의 발언기회도 얻지 못하고, 장장 7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대통령의 완전 ‘원 우먼 쇼’였지요. “책임총리제를 하겠다고 공언한 대통령이 총리를 이렇게 홀대하다니” 하고 도리질을 한 국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갈비집 여주인과의 대화 하나만이라도 총리에게 마이크를 넘겨줬다면, 총리가 그토록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홍원의 직전 총리인 김황식이 엊그제 걸그룹 크레용팝의 오기통춤인가 뭔가를 추며 ‘재롱’을 떠는 모습이 TV에 비쳤습니다. 젊게 보이려고 그는 최근 패션 안경을 6개나 맞췄다고 합니다. 기자회견 도중 느닷없이 버거킹 햄버거를 먹는 장면도 방송에 나왔습니다. 이것 역시 젊어 보이려고, 혹은 젊은층의 표를 얻으려고 꾸민 고도의 연출이었다네요. 지금까지 정원식 고건 한명숙 등 3명의 전직 총리가 민선 서울시장에 도전해 고건 한 사람만 성공했습니다. 김황식이 4번째 도전인데, 그 역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환갑을 훨씬 넘긴 노인이 관절 망가뜨려가며, 엇박자의 오기통춤까지 추며, “나는 젊었다”고 뻥을 쳐야 하는 게 요즘 대한민국의 선거판입니다. 김황식이 왠지 짠해 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