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號’도 침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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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란 책이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이 칼럼에서 한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한국에서 26년을 산 일본 기업인 이케하라 마모루가 쓴 한국 체험기입니다. ‘경제는 1만 달러, 의식은 1백 달러’ ‘선천성 질서의식 결핍증’ 등의 소제목이 말하듯, 자존심 강한 한국인들의 염장을 사정없이 긁어댄 글이었습니다. 그 책은 일종의 ‘맞아죽기 신드롬’을 일으켜, 이후 비슷한 제목의 책이 여러 권 출간됐습니다.
가수 조영남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선언>이라는 책을 썼다 실제로 ‘맞아죽을 뻔’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난자당해 ‘죽을 뻔’ 했고, 방송에선 출연정지라는 ‘사망선고’를 받았지요. 어줍쟎게 국민정서를 거스르는 입찬소리를 했다가는 이렇게 실제로 “맞아죽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생매장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맞아죽기 증후군’은 보여 줬습니다.


집단 트라우마, 미주 교포사회까지


‘세월호 침몰 참사’로 온 나라와 국민이 극단적인 슬픔과 분노에 함몰되면서, 일종의 ‘집단 자학(自虐)’-‘집단 트라우마’가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1차 트라우마는 물론, 피해 당사자가 아니면서 이번 일을 내 일로 동일화하며, 공포, 분노, 불면, 우울과 같은 정신 증상을 보이는 ‘2차 트라우마’가 국민사이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태평양 건너 이곳 LA에 사는 한인교포 중에서도 “일 손이 잡히질 않는다” “잠이 잘 안 온다”며 2차 트라우마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유달리 정한적(情恨的)이며 피암시성이 강한 한민족 특유의 집단반응이 시공(時空)을 초월해, 멀리 이곳 미주한인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빠져나온 생존자 중 한 명이 이미 자살했고, 한 명은 자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습니다. 1~2차 집단 트라우마가 속절없이 확산되면 제2,제3의 자살자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나치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멸적 자기학대 심리에 빠지며 겪었다는 이른바 ‘서바이버 신드롬’ 즉 ‘생존자 증후군’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국민적 참사에도 좌우 이념 싸움


이런 판에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은 국민의 분노를 부추길 ‘먹잇감’을 골라, 집단린치를 해대고 있습니다. 인터넷 매체들은 어뷰징 등 검색어 숫자 늘리느라 선정성 엉터리기사를 마구 만들어 내는가 하면, 종이신문들은 정치 성향에 따라 기사를 멋대로 윤색 보도하는 이념적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좌파들은 ‘대목’을 만났습니다. 괴담을 만들어 쏟아내고, ‘가자, 청와대!’ “박근혜 살인마!‘ 같은 구호와 함께 촛불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는 미군잠수함이 들이 받아 침몰했다”는 따위의 괴담이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여과 없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우파들의 되치기도 만만찮습니다. 정몽준 서울시장후보의 막내아들은 페이스북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미개 민족’이라 폄하했습니다. 우파 논객들은 대학 정몽준 아들을 “마음껏 실수하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라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맞아 죽을까봐’ 입을 뻥끗하지는 못해도, 보수우파 층엔 정몽준 아들의 이 ‘용감한 실수’에 “말 한번 잘했다”고 박수를 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의 일부의원들은 희생자 유족들의 배후에 불순 세력이 있다고 ‘전가(傳家)의 보도(寶刀)’ 같은 음모론을 또다시 들고 나왔습니다.


잠수부들에 ‘죽을 각오’ 웬 말


좌파매체들은 서남수 교육부장관의 컵라면 해프닝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서 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다가 의전용 탁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좌파매체들은 장관이 ‘게걸스럽게’ 컵라면을 먹는 사진을 싣고 “희생자 유족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썼습니다. 장관은 아침도 거르고 이날 현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진수성찬을 즐긴 것도 아니고 컵라면 하나를 먹은 게 이토록 두들겨 맞아야 할 사건이었는지. 좌파언론의 이념적 우군인 문재인이나 이정희가 컵라면을 먹었어도 이렇게 두들겨 팼을지, 의문입니다.
‘깡 다이버’를 아시는지요? “밤낮 없이 목숨 걸고 쪽잠 자며 보수는 한 푼도 못 받는 민간 잠수부로, 오직 지구상에 한국에만 있는 깡 있는 민간 잠수부”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런 ‘깡 다이버’ 500여명이 바지선과 세월호 선내를 오가며 시신 수습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일을 24시간 쪽잠 자며 목숨 내놓고 강행하는 것은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희생자 가족들은 잠수부들이 미적거린다 아우성이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시신을 찾지 못하고 맨손으로 올라오는 잠수부들은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떨궈야 합니다. ‘맞아죽을 각오로’ 한마디 한다면, 희생자 가족들이 자원봉사 잠수부들에게 “목숨 내놓고 시신수습에 나서라”고 등을 떠미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새민련의 좌파 여성의원인 장하나는 잠수부들을 향해 “이렇게 더뎌도 될까. 이 정도면 범죄”라고 깐죽댔습니다. 초등학생 철부지 계집애 수준의 멘탈리티인 장하나 같은 천둥벌거숭이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게 차라리 ‘범죄’입니다.


대통령부터 ‘내 탓’ 고해성사를


박근혜 대통령은 연일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이번사건 관련자와 정부부처 관련 공무원들을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뺑소니 선장은 대통령에 의해 살인 현행범이 돼 버렸습니다. 대통령은 이번 참사에 직간접 책임이 있는 관련 정부부처와 공무원, 사고수습 과정에서 허둥대 피해가족과 국민의 지탄을 받은 관계자 등은 현직에서 물러나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살인행위와 같은 행태” “자리보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은 반드시 퇴출” “과거관행이라도 무사안일은 철저히 책임 물을 것”….
좌파매체들이 ‘유체이탈 화법’이라 비난하는 대통령의 이와 같은 연이은 초강경 발언에서  ‘내 탓’의 고해성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과거정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행 탓’이고 ‘무사안일-복지부동하는 관료들 탓’이고 ‘사회적 부조리를 당연시하며 받아들여 온 국민 탓’입니다.
정부는 이번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불신을 당했습니다. ‘신뢰’를 국정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정부와 자신을 향한 국민적 분노에 대한 ‘면피용’으로, 대통령이 지나치게 강경하고 단호한 어조로 관련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15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과거 어느 정부도 경험 못한 최악의 위기입니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곤두박질치고 당장 코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에서의 패배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지방선거 패배는 국정 장악력과 추진 동력의 약화로 이어지면서 정치불안을 가중시킬 겁니다.
이번사건을 계기로 국정과 국가시스템 전반을 ‘생명의 가치’ ‘안전의 가치’ ‘복지의 가치’ 위주로 재편해야 합니다. ‘재건국’ 수준의 획기적인 국가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부터 ‘모든 게 내 탓’ 이라는 항심(恒心)의 자리에 서야합니다. ‘맞아죽을 각오로’ 대통령에게 옳은 말을 하는 참모와 장관과 고위 공직자들로 대통령 주변의 인적 네트웍이 짜여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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