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 혁명’, 사우디 제치고 美 원유생산 1위국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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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신년연설에서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우리는 100년동안 사용할 천연가스가 있다”며 “셰일가스를 개발해 2020년까지 60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이 말을 반신반의하며 들었다. 전문가들 중에서도 생산비용이 많이 들고 환경파괴 논란이 많은 셰일가스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오바마의 호언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60만개의 일자리가 아니라 170만개(맥킨지 사)에서 500만개(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일자리가 2020년까지 창출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국내총생산(GDP)이 2020년까지 연평균 2~4%(3800억~6900억 달러) 늘어날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서 셰일가스를 수입할 경우 중동 등 다른 지역 보다 30% 싸게 들여올 수 있어 미국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 조 달러의 전쟁비용을 투입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최악의 장기경제 불황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미국경제는, 제2의 골드러시로 불릴만한 셰일가스 ‘대박’으로, 단숨에 ‘경제대국’으로 다시 부상할 기회를 잡았다. 셰일가스 호황에 힘입어 철강, 기계, 부품관련 수요도 최근 폭발적으로 늘면서 경기회복 기대를 높이고 있다. 셰일오일 덕분에 고질적인 무역 적자도 대폭 감소, 지난해 11월 무역적자 규모는 343억 달러로 2009년 이후 가장 적었다. <임춘훈>


셰일가스 열풍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텍사스의 이글포드, 펜실배니아의 마셀러스, 노스다코다의 바켄, 루이지애나의 헤인즈빌, 미시간의 안트림 등 셰일가스 생산지는 마치 150년 전 서부 금광시대의 캘리포니아처럼 북적대고 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불과 3~4년 사이 새로운 도시들이 여기저기 탄생하고 있다.
텍사스 남부 카리조 스프링스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구 50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주민 대다수가 농사나 가축을 돌보며 살던 이 마을이 2010년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 마을 인근이 이글포드 광구로 개발되면서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을인구는 순식간에 4만 명으로 급증했다. 곳곳에 새 호텔과 레스토랑, 각종 소매점들이 문을 열었다. 셰일가스 일자리 덕에 실업률은 5년 전 12%에서 4%로 떨어졌다. 도로변에는 송유관 관리인, 탱크트럭 운전사 등을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덕지덕지 붙었다. 관련업체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셰일가스 붐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선 ‘찻잔 속 태풍’이냐, 아니면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이냐를 놓고 격론이 오갔다. 최근 개발과 투자 붐을 보면 예상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미국 발 셰일가스 혁명’이 진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셰일가스는 현재 확인된 매장량만도 전 세계가 60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매장량 2위국가다. 셰일(shale)가스는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층인 셰일 층에 존재하는 천연가스다. 여의도 63빌딩 높이의 7배나 되는 거리를 지하로 파고 내려가 암석층에서 가스를 뽑아낸다. 그리스 계 미국이민자인 조지 미첼이라는 채굴업자가 10여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1998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셰일가스층에선 타이트 오일이라는 석유도 함께 나온다. 세계에너지기구는 오는 2017년이면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원유 생산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권을 잡고 생산한 가스와 석유를 해외로 수출하는 상황이 머지않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에너지 시장의 큰 변화를 몰고 올 태풍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는 양적완화를 통해 겨우 연명해 왔다. 그러나 셰일가스 붐은 사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미국 내 가스가격이 하락하고 가스로 만든 에탄올 가격이 떨어지면서 외국으로 나갔던 석유화학 공장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중국 등의 임금상승으로 다른 제조업들도 국내로의 유턴을 시작했다. 미국경제가 다방면에서 부활의 날개 짓을 시작한 것이다. 셰일가스 생산과 석유화학공업에서 시작한 경기는 점차 다른 산업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서 시작된 셰일가스 개발 붐은 캐나다를 거쳐 아르헨티나와 호주, 중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셰일가스 개발에 부정적이던 유럽도 장기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셰일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영국이 가장 적극적이어서 올해에만 2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현재 유럽은 미국에 비해 천연가스 값이 3배나 높고 전기료는 2배나 비싸다. 유럽이 이같은 고비용 에너지 문제를 방치할 경우 앞으로 20여 년 간이나 산업경쟁력이 미국에 뒤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럽 각국이 환경피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셰일개발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셰일가스 매장량 1위국가다. 40%가 스촨 지역에 몰려있어 이 지역에 대한 집중개발이 계획되고 있다. 로열 더치 쉘과 엑슨 모빌 등 미국 유명 채굴회사들이 중국천연가스집단공사와 손잡고 스촨 지역 셰일가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채굴기술력은 어느 나라도 아직은 미국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셰일가스는 한국의 에너지산업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미국 셰일가스 개발 프로젝트인 사빈패스 운영사로부터 2017년부터 20년간 연간 LNG 280만 톤을 수입하기로 했다. 미국산 셰일가스를 LNG 형태로 수입할 경우 MMbtu당 11.8달러가 든다. 현재 중동에서 수입하는 LNG 가격은 15달러로 미국 셰일보다 22%나 비싸다. 중장기적으로 한국도 수입선을 미국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셰일 붐으로 100만 Btu당 2008년 8.9달러에서 2012년 2.83달러로 내려갔다. 셰일가스를 이용한 에틸렌 제조원가를 보면 미국은 톤 당 316달러인데 사우디아라비아는 455달러,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무려 1717달러다.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의 에틸렌공장이 경쟁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이 미국산 LNG 계약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1일 월스트릿저널은 한국의 SK에너지와 S-Oil 등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근 몇 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미국 정유회사들의 급부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유럽시장을 미국기업에 점차 뺏겨 호주 등을 새로운 수출지역으로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월간 원유생산은 18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량을 넘어섰다. 에너지청이 지난해 12월 16일 발표한 연례에너지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연간원유생산량이 34억6750만 배럴로, 사상 최대치였던 1970년의 35억1745만 배럴에 거의 근접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15년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최대 생산국, 2020년에는 사우디를 제치고 최대산유국, 2030년에는 원유를 순(純) 수출하는 에너지 자립국으로 올라 설 것으로 국제원자력기구 등은 전망하고 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미국은 군사력에서만 세계최대 강대국일 뿐 경제력에서는 이미 초강대국 지위를 잃었다고 단언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허지만 셰일가스 혁명과 제조업의 부활 조짐 등 최근 상황은 이런 전망이 기우였음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국이 만약 원유수출을 재개하면 석유제품 수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파를 국제에너지 시장에 던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 국내시장에서 거래되는 유가는 국제유가보다 평균 13달러 낮다. 값 싼 원유가 해외시장에 풀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좌불안석 상태에 빠졌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막대한 천연가스를 무기로 우크라이나와 유럽 각국들을 겁박하고 있는 러시아도 이제부터는 큰소리를 마냥 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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