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월호 대참사는 예견된 인재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전 점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20년 가까운 노후된 선체를 멋대로 설계 변경하는 과정에서 관계부처는 로비에 놀아나 수수방관한 사실도 드러났다. ‘세상에 이런 국가가 또 어디 있을까?’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한다고 3시간이나 구조 활동이 지연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제대로 상황파악 조차 못한 박대통령의 현장방문을 보면서 ‘만약 그녀가 자식을 키워 봤다면 과연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하는 것도 의문이다. 2014년 4월 16일부터 오늘까지 진도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고, 오로지 분노와 저주로 얼룩진 통곡의 바다만 있을 뿐이다. 리차드 윤(취재부기자) 본지가 진도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본국 언론 기자들과 통화해보면 그곳에서 기자들이 목격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실패, 아니 정부의 부재라고 한다. 체육관과 팽목항에는 생필품 지원센터, 재난심리지원센터, 응급환자 이동진료소, 가족지원상황실 등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줄줄이 걸려 있고 곳곳에서 보내온 도시락과 생수, 빵과 우유도 충분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없다고 한다. 바로 ‘정부’라는 것. LA에서도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지만 탑승·구조·실종자 수 집계는 계속 오락가락했고, 구조·수색 상황을 책임지고 가족들과 공유하는 공직자는 보이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저 “잠수사 등 구조요원 ○○○명, 함정·선박 ○○○척과 헬기 ○○대를 투입하여…” 등 영혼 없는 숫자만 나열하고 있다. 현장을 ‘위로방문’한 관료들은 슬픔에 빠진 가족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컵라면을 먹었다. 총리는 분노한 유가족들의 항의을 외면하고 차안에서 팔짱을 끼고 3시간이나 잠을 잤다. 사고 직후 현장에 내려온 박 대통령 때문에 구조 활동이 지연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도 발생했다는 후문이다. ![]() 우왕좌왕하다 수백명 승객 떼죽음 정부는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했다. 단 한 번 유능한 순간이 있기는 했다. 청와대로 가려는 실종자 가족들의 행렬을 진도대교에서 막아설 때는 꽤나 일사불란해 보였다. 국민을 위한 정부는 없으며 오직 윗사람들만 위해 존재하는 곳, 그것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당시 학부모들은 “우리가 원하는건 단 한 가지에 대한 대답”이라며 “정부는 거짓말과 거짓보고로만 응답하기에 우리가 직접 대답을 들으러 청와대로 가는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총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차로 들어갔다. 정 총리는 차안에 들어가서 팔짱을 끼고 실종자 부모들을 정면으로 쳐다보고는 잠이 들었고 ‘끌어내!’ 하고 외치는 경찰에 사람들이 끌려 나갔다. 이후 정 총리는 3시간가량 잠이 들었다’ 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정 총리에게 ‘팔짱을 풀라’며 격렬하기 항의하기도 했다. 분노한 학부모들은 3시간가량 걸어서 진도대교까지 이동하다 출동한 300여명의 경찰 병력과 몸싸움을 벌이다 해산했다. 당시 가족들은 ‘목에서 피를 토하고 울면서 길을 걷다가 쓰러지신 어머니보다 차안에서 자고 있는 국무총리를 차가 나가서 집까지 모시는게 이 나라에선 더 중요하다.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을 올리는 인터넷상의 글은 어찌된 일인지 올라오는 족족 삭제되고 있다. 무능한 대통령, 더 무능한 정부 이날 사건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희생자 위주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정부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이번 사건 수습 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요구에는 전혀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초기부터 요구한 집어등 달린 어선과 대형 바지선의 투입은 사나흘 지나서야 이뤄졌다. 현장을 ‘위로방문’한 관료들은 슬픔에 빠진 가족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컵라면을 먹었다. 정부는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했다. 단 한 번 유능한 순간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청와대로 가려는 실종자 가족들의 행렬을 진도대교에서 막아설 때 뿐이었다. ‘정부-구조대’ 엇박자, 참사로 이어져 사실 정부 측의 이런 대응은 최고 통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사건 초기 했던 행동들을 되짚어 보자.
승선자 수도 오락가락했다. 최초 477명에서 459명으로 다시 462명으로 바뀌었다. 청해진해운은 17일 새벽 다시 탑승인원을 475명으로 변경해 인천해경에 통보했다. 정부 차원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있고,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는 비상체제로 전환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사항, 승선자수와 구조인원이 널을 뛰었다. 도대체 이 정부는 세월호와 관련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달려가겠다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시민이 세금을 내는 까닭은 ‘위기에 빠졌을 때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대통령제 정부든 내각제 정부든, 모든 민주국가의 정부는 같은 역할을 요구받는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집권 2기 첫해인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늑장 대응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레임덕에 빠졌다. 집권 2년차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15분에 걸쳐 200자 원고지 28장 분량의 발언을 했다. 이번 사고의 문제점을 총망라하며 공무원들을 매섭게 질책했으나 자신의 책임은 비켜갔다. 대통령은 국민이 ‘인재’로 목숨을 잃었을 경우 최종 책임을 져야하는 책임자인데, 박 대통령은 어느 새 사건에서 한 발 물러서 그 책임선상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고 어느새 심판자가 되어 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 통감도 없었다. ‘혼자 탈출한 선장은 살인자’라고 말하며 ‘엄단과 처벌’이 강조되고, 뒤늦은 위기관리 시스템 재구성에 대한 주문만 이어졌다. 정부에 악재가 닥쳤을 때 각 부처와 공무원들을 질책하며 정작 자신과 청와대의 책임은 피해 가는 특유의 ‘제3자 화법’이 또 등장한 것이다. 시민은 책임을 통감하고 팽목항으로 합동분향소로 향하는데, 정작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한 발 물러서 있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
<세월호 대참사 특집2> 2014년 4월 진도에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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