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종자’들끓는 어수선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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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츤훈(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글 한 편이, ‘세월호 정국’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좌파성향의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박성미가 쓴 이 글은, 하필 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홈 페이지 게시판에 올라, 집권측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첫날에만 50여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해 일단 ‘어뷰징’ 비즈니스에서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나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에 정서적 공감 폭을 넓혀 보려 그의 글을 작심하고 읽었습니다. 박성미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쪼개 언급했습니다. 첫째,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모른다. 둘째, 사람 살리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정부는 필요 없다. 셋째,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대통령,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라고 글 말미에 썼습니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좌파매체들은 박성미 인터뷰 기사를 경쟁적으로 싣고, ‘박근혜 하야’ 담론(談論)에 불을 지피고 나섰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신 인양작업이 끝나고, 사회적 애도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대통령 하야 주장이 언제든 다시 점화(点火)할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정국에 격랑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대통령 하야, 목소리 커지나


박성미의 글, 그리고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부연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과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의 글은 언론이 그동안 제기한 세월호 침몰 관련 보도들을 진영적(陣營的)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짜깁기 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단선적 논리와 일방적 주장의 요체는 “박근혜가 죽이고 싶도록 밉고 싫다”로 귀결됩니다. 
세월호 사태에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공무원들의 일탈, 사회 도처의 부정과 부패, 국가 시스템의 난맥, 그리고 대통령의 아마추어적 리더십을 목격했습니다. 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이어서 물러나야 한다”는 박성미의 단순-명쾌한 주장에, 언뜻 박수를 치고 따라나설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의문입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국민을 위해 아파하지 못하는 대통령이어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깡통 좌파’의 지적 오만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박성미의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인터뷰는 여러 번 읽어봐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내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쓴다면 열 가지 쯤은 너끈히 쓰겠습니다. 국민이 동의할 리 없고, 대통령의 유고(有故)가 몰고 올 헌정파행의 끔찍한 결과와 민생파탄-국격(國格)훼손을 고려한다면, 민선 대통령의 하야를 그렇게 간단히 쉽게 입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에 장난 친 악인들


인터넷 용어로 국어사전에까지 올라 있는 관심종자, ‘관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남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 혹은 그런 부류”를 이르는 단어입니다. 인터넷 등에 올린 자신의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리거나 조회수가 많은 경우 누구나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헌데 이런 욕구가 지나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특정인을 마구 공격 비하하는 글을 올려 기쁨을 얻는 부류가 있는데, 이들이 병적 ‘관종’들입니다.
이들은 대개 논란이 될 만한 ‘떡밥’을 투척하거나, 어그로를 끌거나, 인증을 하거나, ‘중2병스러운’ 글을 씁니다. ‘트롤링’이라는 것이지요. 줄잡아 수 십 만의 ‘정신이상 급’ 관심종자들이 인터넷과 SNS를 휘저으며 사회적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태는 한국사회에 많은 선인(善人)과 의인, 그리고 또 그만큼 많은 악인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아이들은 침몰하는 뱃속에 갇혀 죽어가고 있는데, 악마취향의 관심종자들은 배 안의 아이들을 가장해 장난질을 해댔습니다.
“저 지금 여객선 안인데 구명조끼 입고 있어요. 지금상황이 그리 심각하진 않아요. 한 명 한 명 구조되고 있고 저도 곧 구조될 것 같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ㅋㅋㅋ.”…이런 장난질로 구조 활동에 혼란이 빚어지고 희생자가 늘었습니다.
경찰에 구속된 30대 남성은 휴대전화 두 대로 카카오톡 내용을 조작했습니다. 자신이 배 안에 들어갔다 나온 민간잠수부인양 이런 내용을 남겼습니다. “안에 들어갔다 왔거든? 안에 시체가 득실해… 산 사람 없을 것 같아. 들어가기 싫다.”
배 밖에서 일부 관심종자들의 ‘악마의 유희’가 계속되고 있을 때 배 안에서는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이 속절없이 죽어갔습니다. 어제 한 방송에 공개된 세월호 침몰순간 선실 안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 동영상은 많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반복되자 학생들은 착하게 “예”라고 대답하며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서로를 챙깁니다. 선실 안이 더 안전한 줄 알고 “갑판에 있는 애들은 어떡하지”하고 걱정을 합니다. 구명조끼가 없는 친구에게 “내 것 입어”하며 양보를 하고 “선생님들은 괜찮은가”하고 어른걱정을 합니다.
배가 기울어지고 있는 순간 한 학생이 부모에게 남긴 다소 장난기 섞인 작별인사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 줬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둘 다 사랑해 우리 ㅇㅇㅇ씨(아버지 이름) 아들이 고합니다. 이번 일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동생)야, 너만은 절대 수학여행 가지 마!”
이런 아이들을 선실 안에 가둔 채 저희만 탈출한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 죽음의 배를 띄우고 제 뱃속만 챙긴 선주, 그들과 ‘동업’하며 잇속을 챙긴 ‘관피아’라 불리는 부패한 관리들….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했다는 구약성경 소돔과 고모라 속 악인들의 모습입니다.


국가개조 소프트웨어 혁파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사랑할까요. 이번사고의 희생자와 가족들에 ‘아파하는 마음’이 없을까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모르는 대통령일까요. 박성미는 분노하고 있지만 나는 그가 누구보다 국민을 사랑하고 세월호 참사에 아파하고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박성미의 ‘하야해야 할 이유’들이 모두 맞다면, 그런 대통령을 뽑고 60%가 넘는 지지를 아직까지 보내고 있는 국민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오늘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어 이번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응급재난 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국가안정청’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유족들은 국무회의라는 자리를 빌어 간접사과를 한 대통령을 떨떠름하게 맞았고, 대통령이 보낸 근조 화환을 밖으로 치웠습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국민이 진정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국민들은 과연 대통령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켜 줄 지, 그런 의지가 있는 지, 대한민국이 그런 안전한 나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지를 거듭 묻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국가기관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 보다, 낡고 썩어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국가운영 소프트웨어 자체를 혁파하는데서 ‘국가개조’ 담론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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