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라는 대형 돌발 변수의 발생으로 선거결과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책임을 묻는 국민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3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에서 열렸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과 촛불이 전국을 물들이고 있다. 역대 선거를 살펴보면 선거 막판 터져 나온 돌발 변수로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여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밀실 야합 공천 논란으로 그동안의 ‘집토끼’마저도 등을 돌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세월호 참사 수습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여주고 있는 무능은 정부ㆍ여당 못지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을 못 믿는 국민을 위해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부를 비판ㆍ견제하는 일관된 논리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의 눈치만 살피며 정부 여당에 쏟아지는 국민의 비판에 기대 정치적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기회주의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여당보다 더 나쁜 야당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지방선거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다. 최대변수를 넘어 유일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세월호 탑승객을 전원 구조했다고 발표하는 등 오락가락하며 초동 대처에 실패했다. 이후에도 부실 대응은 계속됐고, 사고 발생 20일이 넘도록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해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가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력과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에 분노를 느낀 유권자들이 여권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부 책임론이 정권 심판론으로 불붙을 가능성도 크다.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개각까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각 총사퇴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고 발생 14일째인 지난달 27일 사퇴 카드를 꺼냈지만 역풍만 거셌다. 대통령의 직접 사과 없이 총리 사퇴만으로 사태 해결을 하려는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구조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한 달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지방선거 기간 내내 여당의 발목을 잡게 될 우려가 있다. 여론의 흐름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철옹성 같았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세월호 변수 영향은?
세월호 참사는 집권여당 지지율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2주 새 6%포인트 하락한 39%로 나타났다. 현 정부의 미흡한 대처가 집권여당의 동반책임으로 연결되면서 일부 지지층이 이탈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세월호 사고가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 불신을 낳고 있어 야권의 반사이익으로 직결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도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여당 지지율 하락 여파가 야당에게 유리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도 2주 전 대비 1%포인트 하락하면서 반사이익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정치권의 대응에 실망하면서 무당파가 늘어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의 야당은 그야말로 무능의 극치를 보여줬다. 특히 김한길 대표의 경우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의 ‘간접 사과’ 직후 의원총회에서 “(박 대통령의 사과가) 국민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초 당 대변인실은 강하게 비판하는 논평을 준비했지만 김 대표가 “쿨하게 하라”고 지시해 논조를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쿨한’ 논평이 여론의 질타를 받자 김 대표는 30일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과 유가족에게 분노를 더하고 말았다”며 하루 만에 입장을 180도 바꿨다. 이런 말 바꾸기에 대한 당 내외의 비판이 쏟아지자 한정애 대변인은 “지도부의 (기조가) 급변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대통령의 사과가 국민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에 나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위로가 될 것으로 보았던 사과가 어떻게 하루 만에 “국민과 유가족에게 분노만 더한 사과”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사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김한길 대표가 보여준 행동은 민주당 대표 취임 후 1년 동안 모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당보다도 무능한 야당
김 대표는 작년 5·4 전당대회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친노 책임론’과 ‘세력교체론’을 등에 업고 압도적 표 차로 제1 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에 당선됐다. 김 대표는 안으로는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당을 재건하고, 밖으로는 야권내 경쟁자로 떠오른 ‘안풍(안철수바람)’ 차단이라는 숙제를 안고 출범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당을 ‘당원중심체제’로 개편하고 ‘을(乙)을 위한 정당’을 내세워 민생중심을 표방하는 한편, 진보쪽에 기울어 있던 당의 강령과 정책도 ‘중도주의노선’으로 ‘우클릭’함으로써 중도층 끌어안기에 나서며 변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논란,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등 정치적 고비마다 당내 강경파들에게 휘둘리며 비주류 출신 대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8월 강경파에 떠밀려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리고 장외 투쟁에 나선 결과, 9월에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3자 회동을 끌어냈다. 또 연말국회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국정원 개혁을 주도하는 등 대여견제세력으로서 존재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한길 체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높은 지지와 경쟁관계인 안철수 의원의 독자세력화 바람에 밀려 ‘국회의원 127석’을 가진 거대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위상을 위협받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가운데 김 대표는 지난 3월초 기초선거 무(無)공천을 고리로 신당을 창당 중이던 안 의원과의 통합을 전격적으로 성사시키면서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야권 분열을 막으면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1차 과제를 해결했고, 안 의원과 투톱 체제를 이뤄 명실상부한 신주류 세력으로 부상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듯했다. 하지만 신당 출범 후 김 대표의 리더십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통합의 고리였던 기초선거 무공천 당론은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시달렸고, 김 대표는 당원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정면돌파하려 했으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한 채 좌절을 겪었다.
김한길의 기회주의, 안철수의 우유부단
기초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는 두 차례의 의원 전수 조사와 국민 여론조사까지 벌이면서도 반발 세력에 끌려 다니며 당론을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과 무기력함을 또 한 번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지방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서도 구 민주당 출신과 안 대표 측과의 갈등이 계속 불거져 당의 화학적 결합에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내부 논란 때문에 통합 이후 기대했던 당 지지도는 통합 초기 반짝 반등했다가 이후 계속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더욱이 최근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도 박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 급락의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공동대표인 안철수 대표의 모습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바른말을 잘 한다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지금과 같은 민감한 시기에 잘못 말했다가 김 대표처럼 욕을 뒤집어쓰기보다는 아예 입을 닫아 ‘중간’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자기 사람인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하면서 분란만 일으키고 있다. 윤 후보가 전략공천되면서 불거진 새정치연합의 공천 내홍 역시 지방선거 레이스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윤 후보의 전략공천에 반발한 당원들의 대규모 탈당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공천 내홍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경우 새정치연합의 지방선거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략 공천 방침에 반발해 탈당한 강운태 현 광주시장과 이용섭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등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텃밭인 광주에서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김 대표의 오락가락 언행과 안 대표의 침묵과 이기적 행동에서 보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실체는 그야말로 무능력한 1야당의 모습일 뿐이다.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구도가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7·14 전당대회가 친박 원로그룹인 서청원 의원과 비당권파인 김무성 의원의 맞대결 양상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집권 여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서 당심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현재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경선에서 박심(朴心) 논란에 휩싸인 김황식 전 총리가 고전 중이고, 인천에서는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낸 친박 핵심의 유정복 의원이 경선에서 힘겨운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친박계 후보를 제치고 비박계인 권영진 전 의원이 시장후보를 거머쥐었다. 경남에서는 친박의 전폭적인 물밑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완수 전 창원시장이 홍준표 지사에 무릎을 꿇었다.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영남에서도 친박계의 결집력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비박계가 약진하는 양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김문수 경기지사의 ‘등판론’이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수도권에서 3선 의원을 지낸데다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 경력도 있어 기존 보수세력과는 다른 외연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전당대회 대신 재·보궐선거 출마도 검토 중이지만 선택지가 매우 좁은 것도 현실이다. 7·30 재·보선에서는 ‘관할지역 도지사는 선거일 120일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때문에 이미 경기도 출마는 불가능해졌다. 그 대안으로 서울에는 정몽준 의원이 시장 후보가 된다면 동작을에 한 군데 생길 뿐이고, 자신의 출생 지역인 대구·경북에는 재보선 지역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박 진영에 위기감이 감돌면서 비박에 대한 대항마로 현재 당권파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최경환 원내대표의 출마를 권유하는 의원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3선으로 중량감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1년간 원내대표직을 무난히 수행했고 소위 ‘자기 정치’를 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와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거론되는 것이다. 최 원내대표 측도 전대 출마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 놓지는 않는 분위기다. 결국 기존 양강구도에 이들까지 가세한다면 4파전 양상으로 경선구도가 전환되는 것도 점쳐 볼 수 있다. 다만 친박 진영이 표 분산을 막으려 ‘교통정리’를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당 대표를 역임했던 서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만 서 의원 측은 이 같은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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