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나라 전체가 박근혜 대통령 한사람 때문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안대희-문창극 두 총리 후보자의 낙마와 맞물려 관심 병사로 지목된 동부전선 무장탈영병 사건은 한국 정치와 군부가 얼마나 허술하기 그지없고 구멍이 뚫려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세월호 참사의 원흉 구원파 유병언 교주의 지난 대선자금 박캠프 전달 의혹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부풀려지고 있다. 대선 직전에 유병언 교주는 박근혜 대선캠프의 측근을 만나 거액의 정치자금이 건네졌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방이 악재로 포위되어 있다. 유병언 교주의 가족들과 최측근들이 모두 체포되고 5만명의 경찰들이 물샐틈없이 수색작업을 해도 유병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이미 살해되어 암매장 되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도는 이유는 바로 유병언이 체포되었을 경우 불거져 나올 엄청난 정치자금 의혹 때문이다. 모든 배후에 유병언 교주와 5공 당시부터 친분관계가 두터웠던 바로 김기춘 실장이 연루설이다.(지난 호: 934호 참조) 또한 안대희-문창극 총리후보의 천거도 김기춘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친박의 좌장인 서청원과 김무성 등의 왕실장 책임론에 모든 사람을 내처도 김기춘 만큼은 불가하다고 버티고 있다. 그 한 사람을 지키려다 나라가 두 쪽 나는 초유의 사태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나라를 분열시키면서까지 김기춘 비서실장을 지키려는 진짜 이유를 <선데이저널>이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문창극 씨가 6월 24일 자진사퇴하면서 그를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됐다. ‘일제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그의 강연 내용이 알려지면서 불붙은 자질시비는 결국 여당마저도 등을 돌리게 했고, 박근혜 정부는 출범 1년 4개월 만에 총리 후보자만 세 번 째 낙마하는 쓴 맛을 봤다. 사실 참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을 계기로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대대적 인적쇄신이 나섰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새로 임명된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국가정보원장은 오히려 전임자들보다 더욱 박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으로 묶여진 인사들이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지난주 본지가 지적 했던대로 그 간 인사를 주도했던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유임이었다. 청와대 참모진 개각이 이뤄진다면 교체 1순위로 거론됐던 김 실장은 그대로 남겨진 채 다른 비서관들만 교체됐다. 이런 박 대통령의 고집은 인사 참극을 불러온 것.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인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실질적 책임자인 김 실장을 싸고돌기 때문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선데이저널>은 대선을 불과 얼마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도 않겠지만, 되어도 미래가 없다’ 제하의 기사에서 이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래가 없다고 예언했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인 그녀가 미국 언론인 <선데이저널> 기자들을 검찰에 고소함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그런 그녀가 대통령이 된 이래 자고나면 크고 작은 대형 사고들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로 수백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떼 주검을 당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해 어느 한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을 등에 업고 간발의 차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후 대한민국은 한 발 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창조경제라는 것은 과거 정부에서 추진하던 정책을 말로만 바꾼 것이며, 통일대박론 역시 과거 정부의 패러다임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국민들은 경제정책과 관련해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정치권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1년이 훌쩍 지나갔으며, 여기에 세월호 참사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최근 트위터에서는 앞서 언급한 본지 기사를 링크시키며 ‘선데이저널’ 보도대로 나라가 흘러가고 있다는 트윗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문창극 씨를 둘러싼 논란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태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다. 본지는 지난주 보도를 통해 이번 인사에서 김기춘 실장이 유임한 것이 ‘백미’라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실장은 그동안 정치권이나 인사와 관련한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야당에서도 김 실장을 표적삼아 여러 문제들을 제기했지만, 여당만큼은 서슬퍼런 박근혜 대통령의 위세에 눌려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끌려왔다.
밀실인사가 부른 인사 참사
하지만 안대희,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에 다가서지도 못한 채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재보선이 가까워오자 여당 내부에서조차 책임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창극 씨는 정치권의 검증 절차와는 무관하게 언론의 검증에 걸려 무릎을 꿇었다. 박 대통령은 한 가지 고민이자 숙제를 더 떠안았다. 김 실장을 안고 가느냐, 내쳐야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숙고를 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안대희, 문창극 씨를 물색하고 검증한 책임이 김기춘 실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에는 인사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 인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며 새 정부가 청와대 내에 설치한 기구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맡고,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민정수석·홍보수석이 고정 멤버이며 사안에 따라 유관 수석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박 대통령의 측근들로만 구성되다 보니 박 대통령이 인선하려는 인사에 대해 ‘노’(No)라고 말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의중만 살핀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다 문창극 전 후보자나 이번 개각에서 중용된 일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비선’의 추천을 받아 사실상 ‘낙점’하면서 인사위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일각의 의구심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사가 김 실장이므로 현재의 논란은 그에게서 비롯됐다. 여당의 유력한 당권 주자의 한 명인 김무성 의원은 문창극 씨가 물러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실장의 사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어쨌든 인사를 담당한 분이자, 두 번의 총리낙마에 대해 일말의 책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김기춘 실장이 일말의 책임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라”며 김 실장이 인사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퇴론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여당의 태도가 돌변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7월 30일 있을 재보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됐다. 제 1 선거악재라는 문창극 후보자가 사퇴했을지라도 제 2의 악재로 지목된 김 실장이 국정의 핵에 버티고 있는 한 재보궐 선거에 유리할 리가 없다는 이유다. 또 국정원장 후보자와 장관 7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는 것도 여당으로선 부담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일부 후보자들의 낙마를 공언하고 있어 만약 한 명이라도 청문회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도 고스란히 김 실장이 져야 한다. 여당은 7.30 재보궐 선거 국면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김기춘 버팀목 朴의 해괴한 인사
여당까지 등을 돌린 상황에서 버팀목은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김 실장 의존도가 지나치다는 말까지 나온다. ‘믿을만 한가’를 인사의 첫 번째 기준으로 삼다시피 하는 박 대통령으로선 김 실장만큼 믿을 만한 인물이 여권 내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박 대통령의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는 인사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스타일을 갖게 됐다. 대신 믿는 사람은 끝까지 간다. 설사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하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대응 실패, 두 차례의 인사 참극이라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박 대통령은 로드맵에 ‘김기춘 아웃’은 없다.
문 씨의 사퇴 후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명의 기회를 주어 개인과 가족이 불명예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는 문 전 내정자를 지명한 책임보다 언론과 정치권, 여론의 책임이 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내정자는 ‘마녀사냥’의 희생양이라는 뜻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문창극 전 내정자를 발탁한 김기춘 비서실장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이는 김무성 의원과 당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서청원 의원조차도 김기춘 실장의 사퇴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친박의 좌장답게 박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실제로 수석, 장관들에게 일정 부분 권한을 주며 소통을 통해 국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보다는 계선상의 보고라인을 통한 장악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여전하다고 한다. 권위주의적이고 빈틈이 없는데다 경륜과 나이도 가장 많은 김 실장의 특성으로 볼 때 청와대 수석들과 여당 지도부, 각 부처 장차관들이 그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인사가 별로 없다. 당연히 청와대와 여당 관계에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 불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틀어쥐던’ 일방주의적 통치스타일을 그대로 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김 실장 내치면 문고리가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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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총리후보를 추천했다는 의혹에 휩쌓이고 있는 정윤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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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을 내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비선 라인으로 불리는 보좌진 3인방의 존재 때문이다.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비서관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비서관 셋은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고, 지금도 문고리 권력으로 통한다. 사실 김 실장과 이들의 관계는 우호적이라기보다는 견제와 감시의 관계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2인자는 언제나 하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실장 뿐만 아니라 문고리 권력 3인방도 인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소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 실장이 정치권과 언론의 표적이 된 만큼. 보좌관 3인방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따라서 김 실장을 내치면 곧바로 대통령의 핵심 3인방이니, 4인방이니 하는 청와대 측근들이 언론에 등장해 비난의 화살을 맞을 게 뻔하고 자칫 비선라인 여부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는 점도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교체할 수 없는 또 다른 고민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람 아니면 저 사람. 딱 자기 사람만 정해놓고 통치를 하는 그의 스타일로 보면 이런 논란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문창극 총리후보 추천에 박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그림자 보좌를 하고 있다는 의혹의 인물 정윤회 씨가 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어 겉잡을 수 없는 파문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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