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REMEMBER 0416’(4월16일을 기억해주세요)이 적힌 팔찌를 차고 눈물을 뿌리며 등교한 다음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던 정홍원 국무총리를 주저앉혔다. 학생들은 ‘그날을 잊지 말자’며 리멤버 팔찌까지 차고 등교했는데,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그것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오기 인사를 단행했다. 새누리당은 겉으론 “고뇌에 찬 대통령의 결단”이란 논평을 냈지만,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오기인사” “정말 미치겠다”는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야권은 기가 차다는 반응이다. “총리가 걸레인가? 다른 사람 쓰려다 안 되니까 버리려던 것 다시 쓰는 걸레냐”는 심한 말도 거침없이 나왔다. ‘코미디 같은 일’이란 촌평에 대해선 “이걸 코미디에 빗대면 자존심 상한다”는 개그맨의 항변이 나오는 지경이다. ‘정홍원 유임’은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말과 진정성을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고 조기 레임덕을 초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참사 이후 나온 대통령의 국가개조론과 눈물, 청와대·내각 인사 개편도 정홍원 총리 사퇴 표명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그 출발점을 없던 일로 되돌렸다. 세월호 참사를 국가개조의 시발점으로 삼겠다던 대통령은 정작 세월호를 잊었다. 참으로 개탄을 금치 못할 뻔뻔한 대통령의 소아병적 인사발상을 <선데이저널>이 짚어 보았다.
최근 본국의 SNS에서는 정홍원 국무총리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유임을 빗대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일부를 잠깐 소개한다. 글을 읽으며 예상하겠지만 이 글은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빗댄 블랙코메디다. 며칠 전 박대통령은 청와대 수석회의 자리에서 정식으로 국회가 인사청문회 기준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역설적인 것은 박 대통령이 2005년에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본인 입으로 국무위원 전원에게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자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요구한 바로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본인 혼자 식상한 걸레인물들을 거듭 발탁해서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생각 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과 야당이 너무 까다롭게 해서 국정운영에 차질이 벌어진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뻔뻔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풍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상상 이상이다. 급기야 보수 언론까지 나서서 대통령을 향해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다. 박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이제 40%도 미치지 못하는 역대정권 최하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인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보수언론들도 박대통령의 인사 참사가 너무 심하다 싶으니 이제 충정 어린 경고를 넘어 위험수준으로 나라가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마의 동풍’이다. 정홍원 유임, 레임덕 초래 집권 1년4개월 만에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었다. 자기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세월호 참사 초동대응 실패의 일차적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했지만 인사 참사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처방을 내놓았다.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면 청와대 인사위원회를 해체하고, 그 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을 경질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사수석실을 신설함으로써 되레 김 실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정홍원 총리의 유임은 백미다. 박 대통령이 사고 수습 이후 사의를 수리하겠다던 총리의 ‘응당한 사퇴’는 없던 일이 됐다. 사퇴 표명 총리가 유임된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정 총리가 박 대통령이 내민 ‘회생의 손길’을 붙잡은 뒤 내놓은 소감문에는 “필요한 경우 대통령께 진언을 드리겠다”는 괴상한 표현마저 등장한다. 왜 과거에는 진언을 못하다가 이제 와서 진언할 용기가 생긴 것일까. 정 총리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대통령에게 고언을 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정 총리의 유임 소감문에서 유심히 볼 문장이 더 있다. 어찌됐든 ‘정홍원 유임’을 밀어붙인 박 대통령은 ‘청와대 인사수석실 부활’이라는 보완책을 부록으로 끼워 넣었다. 인사수석실에서 고위 공직자가 될 인물군을 관리하다가 인사 요인이 발생해 후보군을 추천하면, 민정수석실에서 이들을 2차 검증하던 참여정부의 모델을 일부 따라간 것이다. 하지만 ‘(나랑) 맞는 사람, 아는 사람, 쓰던 사람’들을 택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바뀌거나,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총리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는 한 인사수석실 부활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정치권에선 김기춘 실장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비선조직’이 박 대통령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본지가 계속해서 지적해온 문고리 권력 3인방이다. 정치권에서는 “3인방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잡고 있으면 이 정권의 앞날이 암담하다”는 말이 파다하다. 문고리 3인방, 朴의 눈과 귀 막아 ‘정홍원 유임’에서 결국 다시 도드라진 근본 문제는 박 대통령이 국민을 이해시키며 나아가지 않는 상황이 끝나지 않는 장마처럼 지루하게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고성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된다. 적을 향해야 할 총구를 아군에게 돌려 멀쩡한 병사가 다섯씩이나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이 사건의 책임을 져야하는 국방장관이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했다. 책임을 져야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요직으로 가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본지가 몇 차례 지적했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불통의 대명사’인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도 더 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직급을 더 낮춰 정부 부처로 내려가면 인사 전횡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각 행정부처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 인사 사전검열이 심해졌다”면서 “사실상 후보군을 두 번씩 올리는 셈”이라며 인사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이 같은 인사 사전 검열 시스템은 중앙부처 국장급 고위 인사뿐 아니라 산하기관장 인사에도 전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가에는 중앙부처 국장 이상급뿐 아니라 과장급까지 인사권이 미친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청와대가 장차관 및 1급을 제외한 과장 인사까지 이래라 저래라하는 경우는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보면 대통령이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는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는 느끼게 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책임장관제를 약속했지만 현재의 장관들은 간부 인사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부처의 장관들은 위(청와대)에서 내리꽂는 인사들에 대해 절차만 갖춰 임명하는 사실상의 집행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어 ‘황당하다’는 반응까지 낳는 부적절한 인사 기용, 길게는 수개월씩 이어지는 장기 인사 지연 등 그동안 제기됐던 문제들의 이면에 청와대의 인사전횡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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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는> 책임질 사람이 좋은 자리 가는 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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