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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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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2기 내각에 합류할 장관 9명(부총리 급 포함)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청문의원들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호통을 치면, 장관 후보들은 “죽을 죄를 지었으니 나으리 한번만!”하고 애면글면 죽는 시늉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낯익은 한국적 인사청문회 풍경입니다. 세계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필리핀 세 나라 정도입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의회가 견제하는 제도인 인사청문회는, 우리보다 앞 선 선진 민주 국가인 일본이나 유럽에도 없는 제도입니다. 청문회가 잘 정착돼 대통령의 독선적 인사 전횡(專橫)을 막고, 업무능력과 인성적(人性的)자질을 갖춘 유능한 인재를 널리 구해 쓰는 제도로 뿌리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경제부문의 삼성과 함께 한국이 세계에 내세울 만한 훌륭한 정치제도인데, 현실은 그렇질 못해 안타깝습니다. 대통령은 다반사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함량미달의 후보를 지명하고, 의회 특히 야당은 청문회를 ‘오직’ 대통령 흠집 내기와 정쟁(政爭)에만 이용합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 혹은 진영 논리에 따라, 같은 후보를 보는 시각과 도덕적 잣대가 제멋대로입니다. 미국의 인사청문 대상 공직자는 무려 6000명입니다. 상원은 연중 내내 청문회를 열지만 한국처럼 시끄럽지 않고 정쟁도 거의 없습니다. 후보를 대하는 의원들의 태도는 VIP고객을 대하는 은행지점장처럼 예의 바르고 정중합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 닦달이나 망신주기 식-신상 털기 식 청문회는 미국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야당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낙마한 총리-장관 후보자는 김대중 정권 2명, 노무현 정권 4명, 이명박 정권 10명입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출범 1년 4개월 만에 벌써 7명이나 낙마했습니다. 이 정부 들어 낙마자가 급증한 것은 시스템보다는 측근과 몇몇 비선라인에 의존해 사람을 고르는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 때문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월드컵 열광은 공동체의식 폭발 욕구
월드컵 축구가 내주부터 드디어 8강전을 치릅니다. 미국에선 낯 시간에 경기실황이 중계되는데 한국은 보통 새벽 1~3시경에 중계가 됩니다. 한국에서는 새벽 4~5시쯤 끝나는 경기를 끝까지 보고 아침 7~8시에 출근하는 축구광들이 많다지요. SNS엔 이런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주부들의 하소연이 줄을 이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월드컵 축구를 보다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들이 꽤 많습니다. 한국의 통계는 아직 없지만 2008년 <뉴잉글랜드 저널>에 실린 학술논문에 따르면, 당시 4강전에서 탈락한 독일의 경기를 보던 주민 중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사람은 평소의 2.66배, 남성은 3배가 넘었습니다. 현대인들이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는 건 그만큼 공동체 의식에 대한 욕구가 마음속에 있다는 뜻이라고 스포츠 의학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고 경계를 지어 주변과 분리한 후 ‘우리’라는 동질의식을 만끽하는 욕구입니다. 축구 광팬들은 자신을 선수와 동일시해 안정을 찾는 동시에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공격성을 다른 방식으로 분출합니다. ‘식음 전폐’하고 새벽 5시까지 월드컵 축구,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경기를 보면서 고래고래 핏대를 세우는 남편과 계속 같이 살아야 할지를 묻는 아내들에게 들려 줄 정답은 (심장만 튼튼하다면) “같이 살아도 괜찮다”입니다.
대표팀 졸전, 세월호 민심에 배신감 증폭
러시아의 하원 두마는 색다른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월드컵 청문회입니다. 한국과 함께 16강 탈락한 러시아가 청문회를 하겠다는 건 축구강국을 표방한 러시아의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2018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전력강화의 필요를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월드컵 청문회, 일명 ‘홍명보 청문회’가 매일 열리고 있습니다. 대표팀 감독 임명권자가 대통령이 아니니까 국회 차원의 청문회는 물론 아닙니다. 직장이나 저녁 회식자리, 술자리 같은 데서 으레 축구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서 즉석 홍명보 청문회가 열립니다. “홍명보와 박근혜의 공통점은? 그것은 진심어린 사과를 할 줄 모르며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줬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인터넷 유머도 넘쳐 납니다. 대표팀이 귀국 때 공항에서 엿 세례를 받은 일, 박주영과 홍 감독의 의리, 졸전을 하고도 귀국 때 면세 쇼핑백을 들고 요란한 팔뚝 문신 차림으로 나타난 골키퍼 정성룡 얘기 등이 즉석 청문회의 단골 화제로 등장합니다. 리더십과 전술전략 부재를 드러낸 홍명보 감독을 계속 써야 하는지, 현 대표팀 멤버로 아시안컵과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축구를 2002년 이전수준으로 후퇴시킨 홍 감독은 욕을 먹어도 싸다는 의견, 축구협회 등 축구계 전체가 져야할 책임을 홍명보에게만 씌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쟁도 팽팽합니다. 월드컵 대표팀을 향한 비난이 확산된 것은 최근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며 상처 받은 민심과 이를 달래줄 것으로 기대됐던 대표팀에 대한 배신감이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권력에 대한 불신 등이 홍명보 감독에 쏠린 경향이 있다. 대표팀의 선전은 국가에 대한 영광을 개인의 영광으로 투사하는 효과가 있는데, 초라한 월드컵 성적으로 개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며 분노로 연결되고 있다”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선수들 장발, 투지-정신력 실종 드러내
나는 축구를 잘 몰라 전문적인 질문을 할 자신은 없습니다. 허지만 홍명보 청문회가 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감독을 포함한 대표팀 (거의) 전원의 그 깻잎머리 스타일입니다. 벨기에 전 때 찍은 선수 기념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온 것을 봤는데 11명 중 김신욱을 제외한 선수 10명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의 ‘답답무쌍한’ 헤어스타일인 눈썹까지 가린 깻잎머리였습니다. 예전 운동선수들은 결전을 앞두고는 필승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기르던 머리도 박박 깎고 ‘삭발 투혼’이라는 걸 보여줬지요. 객관적으로 최하전력으로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이 삭발투혼을 보여 주지는 못할망정 탤런트나 K-pop 스타의 장발 머리에다 패셔니스트 흉내나 내다니…? 출전국 선수들 중 깻잎머리는 눈을 씻고 봐도 한국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감독까지 안철수처럼 깻잎머리였습니다. 선수들이 그 머리로, 헤어스타일 망가질까봐, 공중에서 날아오는 볼에 헤딩이라도 제대로 한번 했을까 의문입니다. 16강 탈락, 초라한 경기 내용, 이 모든 게 내 아마추어적 진단으로는 깻잎머리가 상징하는 투지의 실종, 즉 정신력 해이가 부른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비록 8강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를 누른 알제리와 멕시코, 칠레, 코스타리카, 우루과이 등 중강(中强) 팀의 경기내용과 투지는 한국팀에 비해 너무나 월등했습니다. ‘태극 전사들’이 ‘깻잎머리 전사들’로 조롱받기 전에, 이제부터 머리 스타일이라도 깔끔한 스포츠형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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