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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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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보수’뿔났다
박근혜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님이라 부른다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그는 30여 년 전에는 장인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아버님이라 불렀고, 지금은 유명 재벌회장의 ‘재혼 사위’가 돼, 그를 새 아버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지난 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회방문 때는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느닷없이 시 주석 곁으로 ‘돌진’해 악수를 한 후, 자신의 저서 한 권을 건넸습니다. 시 주석은 위구르족 테러리스트라도 달려드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얼떨떨한 표정으로 책을 건네받았다지요. 야당 쪽에서는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쪽팔리게 한 이 분별없는 정치인의 사과와 문책을 요구했습니다. 여의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처세(處世)의 달인’이라는 새누리당의 최고 실세 윤상현 사무총장 얘기입니다.
29세 이준석 내세워 ‘새바위 마케팅’
윤상현은 새누리당의 7.30 재보선을 진두지휘 하고 있습니다. 당의 공식 대표는 이완구 비대위원장이지만, 실제로는 윤상현 사무총장이 청와대와 직접 교감하면서 당 운영 전반을 전횡(專橫)하고 있다고 들립니다. 20여일 앞으로 다가 온 7.30 재보선은 열다섯 군데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미니 총선’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총리 등의 잇단 인사실패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의 인기는 요즘 바닥을 헤매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 펑리위안이 서울에 ‘짠’하고 나타나 이틀 동안이나 ‘찬조 출연’을 해 줬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는 40% 언저리에서 전혀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7.30 재보선은 해보나나마 여당의 참패로 끝나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붕괴는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윤상현 사무총장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효과를 본 ‘박근혜 마케팅’ 대신 ‘새바위 마케팅’이라는 걸 들고 나왔습니다. 새바위는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의 줄임말로, 위원장엔 놀랍게도 올해 스물아홉 살의 청년 이준석이 영입됐습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비상대책위에 들어가 김종인 이상돈과 함께 ‘쓴소리 3인방’으로 활약했던 바로 그 이준석입니다. 새바위 마케팅의 주 표적은 젊은 층입니다. 새누리당은 20대 청년층에서 통진당 보다도 못한 2%대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하지요.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나와 친박계인 유승민 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정치를 배운 이준석은, 한국정치를 읽고 분석하는 나름의 안목과 거침없는 돌출적 야성(野性)발언으로, 여권에 비판적인 젊은이들 사이에 비교적 인기가 높습니다. 윤상현의 이준석 깜짝 차출은 젊은 층의 표심을 노린 회심의 선거용 승부수인 셈입니다. 이준석은 새바위 첫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내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맞나 싶다”며 “청와대에 들어 간 후 변했다”고 까칠하게 한 방 날렸습니다. 2선의 정병국 의원 등 큰형님이나 아저씨 벌 되는 지긋한 나이의 ‘평위원’들이, K-pop 스타를 닮은 곱상한 얼굴에다 깻잎머리를 한 이준석 위원장의 회의 모두(冒頭)발언을 심각하게 경청하고 있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집권 여당이 민생을 위한 착한 정치는 외면한 채 정략적 이벤트 놀음이나 하고 있는 한국적 후진정치를 희화화해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참던 보수층, 문창극 사태에 폭발하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이준석의 갑작스런 등장에 혀를 차고 있습니다. 어떤 진보논객은 새누리당이 이준석을 혁신위원장에 앉힌 것을 두고 “어린 아이한테 그러면 안됩니다. 아동 학대예요”라고 이죽거렸습니다. 보수 우파 쪽의 비판이 특히 거셉니다. 그동안 이준석은 자신의 블로그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야당 대신 자신이 몸담았던 박근혜 정부와 여당을 집중 비판해 왔습니다. 문창극 총리후보를 친일파로 ‘단정’하며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비난하는가 하면, 트위터를 통해 극좌파인 통진당 대표 이정희를 “존경한다”고 추켜세워, 보수층으로부터 ‘빨갱이’로 매도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애국 우파’의 상징적 존재인 문창극 총리후보를 친일파로 능멸한 인물이 ‘종북’의 상징인 이정희를 존경한다는 것을 보수층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겁니다 우파진영은 문 후보를 청문회장에 세우지도 않고 내 버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 지도부에 깊은 배신감을 품고 있습니다. 이들은 문창극이 청문회에 나가 당당히 청문특위 의원들과 맞섰다면 “친일파는커녕 오히려 애국우파의 아이콘으로 떴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보수진영은 문창극 파동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취한 기회주의적 스탠스를 용서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KBS의 좌파노조와 야당인 새민련의 문창극 죽이기 음모에 여당인 새누리당이 들러리를 서고, 마침내는 대통령까지 원칙과 진정성을 스스로 훼손하며 좌파진영에 백기투항한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문창극을 내친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배신감이 가시기도 전에 그를 친일파로 매도한 이준석을 혁신위원장으로 모셔 온 박근혜의 자칭 ‘의붓동생’ 윤상현 사무총장이 분노한 ‘꼴통 보수’들의 공적 1호가 됐습니다.
보수 共敵 1호된 윤상현 사무총장
윤상현의 이준석 카드는 7.30 재보선에서 뜻한 대로 잭팟을 터뜨릴 수 있을까요. 젊은 층에서 약간의 표 확장효과는 거둘 수 있겠지만 분노한 정통보수표의 대거 이탈로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보수유권자들은 이번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해 보수층의 지지 철회가 얼마나 그들에게 치명적인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고 앙앙불락입니다. 박근혜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최근의 잇단 참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유권자들은 어차피 새누리당을 찍지 않을 테고, 보수진영의 강경유권자들은 이준석의 발탁을 ‘좌클릭’으로 받아들여 역시 표를 주지 않을 겁니다. 젊은 층과 일부 중도 층이 돌아 선다 해도 이래저래 따져보면 새누리당의 표는 궁극적으로 빠져 나가게 돼 있다는 분석입니다. 새누리당은 이번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인 서울 동작을에 후보를 내지 못하고 허둥댔습니다. 윤상현 사무총장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따라다니며 ‘십고초려’를 간청했지만 헛물을 켰습니다. 일찍이 접촉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아프리카로 피신(?)을 갔고 김황식 전 총리는 손사래를 치며 두문불출입니다. 이곳이 지역구인 정몽준 전 의원의 부인 김영명을 내세우려는 황당 아이디어까지 나왔으나 역시 불발됐습니다. 저마다 모두 그럴듯한 고사(固辭) 이유를 대고 있지만 실제는 당선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새누리당은 지금 특히 수도권에서 ‘인기 꽝’입니다. 지금은 나경원 전 의원에게 목을 매고 있습니다. 나경원은 당에 대한 충성도, 정치에 대한 열정, 대중적 인기, 경쟁력 등에서 김문수 오세훈 김황식에 못지않거나 오히려 나은 후보라는 평입니다. 이런 후보를 맨 나중에 ‘꿩 대신 닭’처럼 마지못해 영입한 꼴이 됐습니다. 정치력과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한 윤상현 사무총장의 아마추어 식-천방지축 식 리더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당 내 외에서 높습니다. ‘아동 학대’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스물아홉 살 청년 이준석이 위원장을 맡은 새바위가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가 될지, ‘새누리당을 바보 만드는 위원회’가 될지 두고 보자고, ‘뿔 난’ 보수파들은 잔뜩 7월 30일 그 날을 벼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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