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이 날 사고 발생 후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 박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동선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마저도 “자신도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대통령의 당일 행선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대형 재난이 날 경우 국정의 최고 사령탑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의 행적이 중요한 것은 정부 부처의 초동 대응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7일 열린 본국 국회 운영위원회 대정부 질문 등을 통해 드러났다. 이날 김기춘 실장의 국회 운영위원회 답변과 청와대와 해경의 당일 교신 내용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등 참모들과 긴급 구수회의를 했다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도, 박 대통령 주재의 대책회의도 없었다. 구조를 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에 국정최고 통수권자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또한 중앙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전 7차례의 보고 역시 모두 서면 내지 유선보고였다는 점도 논란이다. 과연 정상적인 조직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비상상황에서 서면보고를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에 싸인 대통령의 행적을 <선데이저널>이 쫓아가봤다.
이 날 국회에서 김기춘 실장의 답변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시스템을 가진 청와대인지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의문의 행적 박 대통령의 첫 구조 지시가 너무 늦게 나온 것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신고가 해경에 접수된 오전 8시 58분에서 87분이 지난 오전 10시 25분이 돼서야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0시 25분은 세월호가 이미 90도 이상 기울어 침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 실제로 세월호는 오전 10시 28분 침몰했다. 만약 박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장수 안보실장, 청와대 수석들과 긴급 회의를 했거나 직접 대면보고를 받았다면 87분이 지난 뒤에야 첫 구조지시를 내릴 수 없다. 서면보고란 대면보고와는 달리 사건사고의 상황, 사태의 긴박성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어 초동대응이 늦어지거나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청와대가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나 대통령 주재의 대책회의를 했다면 곧바로 구조 지시가 내려갔을 것이고 119 소방본부와 해경이 21분 동안이나 관할을 따지며 골든타임을 허송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움직이질 않았으니 김장수 안보실장이나 김기춘 비서실장, 행정안전부 등을 관할하는 박준우 정무수석 등이 해경과 119소방본부, 해수부 등에 빨리 구조를 하라거나 구조를 위해 군과 해경, 지방자치단체가 총출동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턱이 없다. 청와대가 2014년 4월 16일 오전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특히 수 백명의 인명이 걸린 대형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사고 발생 후 8시간이 지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물어 그때까지도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습을 보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박 대통령의 사고 대처 지시는 10시 30분경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해 “해경특공대도 투입해 여객선의 객실과 엔진실까지 철저하게 확인해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라고 한 것이 전부다. 문제는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된 진실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청와대는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에 자료제출을 계속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도 청와대와 대통령을 보호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세월호 감사에서 청와대의 대응을 감사했으면서도 8일 발표에서는 빼버렸다. 감사원은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중간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양수산부, 한국선급, 해양경찰청, 청해진해운 등 정부와 민간의 총체적 업무태만과 비리 등이 293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었다며, 사고 발생부터 초동대응,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컨트롤타워 기능 부재 등 전반적인 상황을 꼼꼼히 다뤘다. 하지만 정작 사고 수습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청와대 부실 대응 부분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감사원의 이런 해명은 납득하기 힘들다. 청와대는 수습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됐고 ‘청와대는 사고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논란이 이는 등 사고 직후부터 세월호 참사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지난 2일 공개된 사고 직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유선전화 녹취록을 보면, 청와대는 대통령 보고에만 급급해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전형적인 청와대 봐주기인 셈이다. 지난 2일 열린 해경 기관보고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녹취록에 없는 대통령의 말을 녹취록에 담긴 것처럼 표현하면서 ‘왜곡발언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새누리당이 김 의원의 특위 위원직 사퇴를 요구하며 조사활동 참여를 거부해 한때 파행을 빚었고, 가족들이 여당 위원들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시작부터 삐걱 국정조사에서 기관보고는 시작에 불과하다. 기관보고, 현장조사, 청문회, 특별법 제정, 특검 등 세월호가 남긴 숙제들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정치권 내에서는 벌써부터 “세월호 참사 또한 이대로 유야무야되지 않겠나. 특검이나 특별법이 성과를 낸 적이 언제 있었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진상규명의 첫 단추인 기관보고에서부터 파열음을 내면서 어쩌면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유가족들은 정치의 최전선으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유가족들 또한 세월호 참사가 정쟁의 대상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정치적인 역학구도에 따라서 자신들의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
<의혹취재> 세월호 침몰시각에 박대통령은 청와대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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