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피 100여일 만에 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유씨의 죽음을 놓고 자살 혹은 타살, 아니면 해외도피 음모설까지 갖가지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다. ‘구원파’의 교주인 유병언 씨를 따르는 엄청난 신도들을 감안했을 때 이번 사망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현재 도피 중인 유씨의 장남 대균 씨의 자수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경우에 따라서는 현 정부의 실세들이 손을 써 장남 대균 씨가 소위 말하는 총대를 메는 형식으로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책임지는 시나리오가 각본대로 전개되었다는 의혹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리차드 윤 기자> richard@sundayjournal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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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본지가 단독으로 입수한 유병언 씨 사체 발견 당시의 사진. 반 백골화가 아닌 완전 백골화시신 그 자체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을정도로 뭉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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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경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공식발표했다. 유 씨의 시체가 발견된 시점은 경찰 발표 40일 전인 6월 12일. 본지의 ‘구원파 교주 유병언 살해설이 나도는 까닭은?’이라는 제하의 기사 보도 시점보다는 약 열흘 앞선 것으로 기사작성 시점보다는 불과 닷새 앞섰던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유 씨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트위터를 포함한 SNS 상에서는 본지의 기사가 뒤늦게 화제가 됐다. 결국 이 보도는 설득력을 얻으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해외도피 음모론’의 중심에 서고 있는 셈이다.

현재 본지의 기사는 일반 네티즌들 뿐 아니라 한국의 조선일보조차도 언급하며 약 한 달 전 기사에 크게 주목하고 있는 상태다. 당시 본지의 보도는 유병언 전 회장의 살해 가능성, 그리고 그동안 유병언 전 회장이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인사가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괴소문에 근거했던 것이다. 현재 이같은 파문이 확산되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반박에 나서고 있다. <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 김현숙 대변인은 22일 통화에서 해당 (선데이저널) 보도와 관련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혀를 찼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매체는 “김현숙 대변인은 전혀 사실이 아닌 음모론 수준의 악성 루머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음모론인가? 사실인가?’
하지만 여권의 주장과는 달리 일부 네티즌들은 본지의 보도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며 한국의 언론과는 달리 새로운 시각에서 보도활동을 펼치고 있는 <선데이저널>을 응원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본지의 지난 제934호 6월 19일자 기사의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이 수만명을 동원해 두 달 가까이 그의 행적을 쫓고 있지만 깃털만 잡힐 뿐 유 회장의 소식은 감감 무소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을 중심으로 유 회장을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따라 유착관계에 있는 핵심인사들에 의해 유 회장이 이미 살해됐을 것이라는 소문과 이들의 도움으로 망명했을 가능성 등 제법 설득력 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현재 유병언 씨가 실제로 사체로 발견된 것으로 발표되자 한국의 조선일보를 비롯한 유수한 언론들은 본보의 기사에 주목했다. 특히 조선일보 온라인 기사에는 100여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리며 여러 시나리오들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이를 반영하듯 많은 네티즌들은 본지의 인터넷 기사를 무려 5만 2천회 이상 조회하는 놀라운 관심을 나타냈다.
사실 본지가 유 씨의 죽음에 대해 에둘러 ‘說’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직 그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만, 당시 정치권에서는 그가 죽었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을 때였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으면 최소한 외국으로 도피했다는 얘기도 한국 정치권에서는 파다했었다. 다만 검경이 이런 소문을 외면한 채 유 씨가 아직 살아있으며, 외국으로 도망가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계속 추적하고 있었을 때였다고나 할까. 만약 검찰이나 경찰이 정치권에 파다했던 이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면, 유 씨의 시체가 은신처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발견되었을 때 그를 몰라봤을 리 없다. 결국 수사 당국이 언론 보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감추고 싶었던, 아니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떠나서 아직까지 정확한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본지 기사가 집중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경찰 발표에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경찰 발표에 대한 불신이 과거 기사에 대한 주목도와 신뢰도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민들은 이번 사건에서 김형욱 중앙정보부 전 부장이나 장준하 선생의 의문의 죽음을 떠올리고 있다. 김 전 부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사람이었으나 유신 후반에 들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을 폭로하는 등 박정희 정권과 마찰을 빚다가 미국으로 망명, 결국 의문의 죽음을 당한 케이스다.
또한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다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최후를 맞았다. 당시 유신정권은 하산 도중 실족사로 발표했으나, 사건 직후부터 박정희 정권에 의한 타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지난 1993년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아직까지 타살 여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처럼 박정희 정부 시절 유독 의문사가 많았는데,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해명할수록 커지는 의혹
검찰과 경찰이 발표한 내용에 따라 이번 사건을 되짚어 보자. 검경 등에 따르면 유 씨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것은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 별장 ‘숲속의 추억’을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5월 25일 경이다. 시신의 부패 및 반백골화 진행 상태 등을 감안하면 유 씨는 시신이 발견된 6월 12일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별장을 빠져나간 유 씨가 며칠 만에 죽음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앞서 검찰은 5월 22일 유 씨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검거팀을 순천으로 급파했다. 순천 현지에서 유 씨를 돕던 구원파 신도 추모 씨 등 조력자 4명을 잇따라 체포한 검찰은 25일 유 씨가 머물던 별장을 덮쳤으나 유 씨는 3평 남짓한 벽장의 비밀공간으로 숨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경찰이 찾아갔을 때는 추 씨 등의 체포로 포위망이 좁혀진 것을 눈치 챈 유 씨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검찰 발표대로라면 유 씨는 별장의 벽 안에 숨어 있었다가 급하게 도주했다. 하지만 별장에서의 도주 이후부터 사망 시점까지 유 씨의 행방은 온통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유 씨는 검찰 압수수색이 종료된 25일 밤에서 감식이 진행된 26일 오후 사이에 별장을 빠져나가 인근 산속으로 도망쳤다가 숨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별장을 빠져나온 유 씨에게 수행원이 있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유 씨 운전기사 역할을 했던 양 모 씨가 미처 유 씨를 챙기지 못하고 따로 도주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던 점으로 미뤄볼 때 그동안 도피를 지원하던 구원파와 유 씨 간의 연결고리는 끊긴 것으로 보인다. 유 전 회장의 시신 유류품에서 휴대전화가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볼 때 유 씨가 별장에서 황급히 빠져나왔고 수행원은 물론 다른 구원파 신도에게 연락할 수 있는 휴대전화마저 없는 상태에서 홀로 휴게소 인근 산속을 헤맸을 수 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또한 유 씨가 사망할 당시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는 점은 당시 급박하게 도주했던 정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들은 검찰과 경찰의 조사 결과가 맞다는 가정 하에서 던질 수 있는 가정일 뿐이다. 결국 이런 가정 하에서도 생기는 의문이 한 둘이 아닌 것이다. 순천 경찰서는 “송치재 휴게소 주변을 55회에 걸쳐 연인원 8천여명을 동원해 정밀 수색했다”면서 “주변 구원파 관련 부동산 143개소에 대해서도 수시 수색을 실시했으나 유 씨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불과 보름 전에 1만명 가까운 공권력이 동원돼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던 유 씨의 순천 송치재 은신처에서 불과 2.5㎞ 떨어진 야산서 발견된 의문의 변사체. 명품옷에 금니 10개, 가방 안쪽에 `꿈같은 사랑’이라는 그의 저서 문구와 세모 계열사 제품인 스쿠알렌 등 수많은 단서가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 씨와의 관련성은 전혀 생각지 않고 단순 변사체로 처리한 경찰. 유류품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단순 노숙인의 변사로 대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검찰. 40일 전에 유 씨의 시신을 확보해 놓고도 사망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구속영장을 연장하면서 “추적의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며 허풍을 떤 대검. 뒤늦게 단순 변사자로 처리됐던 시체가 유병언이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고 멋쩍게 말하는 경찰청장. 모든 것이 석연치 않다.
과학적 시대에 비과학적 수사
시신 발견 이후의 검경의 대처도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한 달 열흘 전에 발견된 시신에 대한 확인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은 유전자 분석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상대적으로 긴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뼈를 토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형 병일씨와 형제 관계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신과 병일 씨가 동일 모계인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도 적잖은 시간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국립과학수사 연구원은 뼈가 아닌 시신에 남아 있는 근육을 채취해 하루 만에 유전자 정보를 확인해 경찰의 설명을 무색하게 했다.
경찰의 과학적 해명에도 불구하고 신원 확인이 지나치게 늦어진 것은 변사체를 처음 발견한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이날 국과수는 시신의 근육을 채취해 하루만에 유전자 분석을 끝냈다. 경찰의 위탁을 받아 변사체의 부검을 처음 했던 민간 의사는 시신의 부패가 많이 진행됐다는 이유로 분석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뼈를 떼어내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다. 스쿠알렌 병 등 변사체와 함께 발견된 유류품이 유 씨의 것일 수 있다는 강력한 정황증거가 있음에도 경찰은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시신의 유전자 분석을 서두를 수도 없었다.
검찰과 경찰이 시신과 대조를 한 유전자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증폭됐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유 씨 관련 유전자를 검찰과 경찰이 각기 관리해 정보 공유가 늦어져 변사체 신원 확인에도 시간이 허비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시선도 쏠리고 있다. 그동안 유 씨 추적과 관련한 정보를 원만하게 교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백골화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뒤 실시되는 2차 사체 부검을 통해 과연 그가 자살 또는 자연사한 것인지, 타살된 것인지, 현장에서 숨진 것인지, 다른 곳에서 사망한 뒤 시신이 옮겨진 것인지 조차 판단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인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그의 석연찮은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을 명쾌히 설명할 수 있을지 의아할 뿐이다. 특히 첨단의 시대에 이런 어이없는 수사가 과연 가능하냐는 의문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죽음으로 이득보는 사람은 누구?
이처럼 석연치 않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놓고 타살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본지가 지난 기사를 통해 언급했던 것처럼 정관계에 있는 그의 광범위한 인맥 때문일 것이다. 5공 때부터 정치권에 로비를 해 온 것으로 알려진 유 씨와 유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겐 유 씨가 검•경에 체포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생전(生前)의 유 씨 뒤에는 항상 돈과 권력이 있었다. 그가 법정관리까지 갔던 세모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베풀어준 특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 씨가 기업을 다시 일으킨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지난 1997년 세모해운의 실적 악화로 인해 세모는 부도를 맞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부채는 2,245억원이었다. 그런데 유씨는 2008년 ‘새무리’라는 계열사를 통해 당시 계열사들을 336억 9,000만원에 다시 인수한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1,000억원이 넘는 빚을 탕감해줬다. 당시 세모의 부채 2,245억원 가운데 채권단이 754억원을 탕감해주고, 1,155억원은 출자전환(빚을 탕감해 주는 대신 회사의 주식을 받는 것)을 해줬다. 10년간의 법정관리 과정에서 개선 실적이 없는 기업에 1,000억원 이상의 빚을 탕감해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특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새무리의 2007년과 2008년 매출은 각각 1억 9,000만원, 1억 6,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새무리 컨소시엄은 세모를 인수하기 전인 2007년 기업은행에서 95억원, 농협중앙회에서 128억원을 단기차입금으로 빌렸다. 유 씨는 이런 특혜를 받으면서 부도까지 갔던 회사를 단숨에 일으켰다.
그가 여러 신도의 도움을 받으며 장기간의 도피 생활을 이어갔던 것 역시 종교와 돈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것이 수사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도피 생활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검경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유 씨와 현 정권과의 유착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 씨가 만약 검찰이나 경찰에 붙잡히게 됐을 경우 어마어마한 내용의 폭로가 계속될 것이고 그럴 경우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현 정권이기 때문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은 많은 수수께끼를 남기고 있다. 유 씨 시신 주변에서 발견된 소주병도 미스터리 중 하나다. 단종된 소주병이 나온 것을 두고 ‘타살 의혹의 한 근거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유 씨의 시신 발견 현장에는 그의 저서 제목인 ‘꿈 같은 사랑’이라는 글자가 적힌 천 재질의 가방이 발견됐다. 그 안에 빈 소주병 2개와 순천 막걸리 빈병 1개가 들어 있었다. 모두 보해양조라는 회사에서 만든 제품인데 소주병 중 하나는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잎새주’ 병이다.
또 다른 하나는 2003년에 출시된 ‘보해골드’라는 소주다. 그런데 이 보해골드는 2007년 단종됐다고 한다. 유병언은 왜 7년전에 단종된 소주병을 가방에 넣고 다녔을까. 유 씨는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원파 조계웅 전 대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유병언 전 회장은 술을 전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유병언이 직접 소주를 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의 도피를 돕던 측근들이 구해줬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7년전 단종된 소주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보해골드 소주병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선 소주병에 술이 아니라 어떤 다른 물질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유병언 시신에 대해 알코올 반응을 조사했지만 시신에서 알코올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래서 유 씨가 물을 마시기 위한 식수통으로 빈 술병을 이용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 소주병이 식수통으로 사용된 게 아니라 유 씨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빈 소주병에 어떤 독성 물질이 담겨 있었고, 이것이 유병언 타살에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물론 유 씨의 술에 약을 타서 음독을 시도하는데 사용됐을 수 있다는 추론도 있다. 아울러 누군가 유 씨를 살해한 뒤 자살 또는 자연사로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빈 소주병을 갖다 놓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경찰은 일단 현재 자살보다는 타살, 타살보다는 자연사(탈진, 심장마비 등)가 더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22일 직위해제된 우형호 순천 경찰서장은 “반항 흔적 등 타살을 의심할 정황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력에 의한 타살이 아니라 독극물 등에 의한 타살일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유 씨 시신이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상태였다는 일부 언론 보도 이후 타살설이 힘을 얻기도 했으나 경찰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유 씨의 사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이 각종 미스터리를 명확히 해소하지 못한다면 타살 의혹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에 일부 유포된 유병언 시신 사진도 타살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이 사진은 유 씨의 시신이 처음 발견된 당시 사진이 SNS에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유포 사진은 유씨 시신이 발견된 순천의 매실밭 현장에서 찍힌 것이다. 사진 속 유병언 시신은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데 가슴뼈는 부풀었고, 배 부분은 완전히 꺼지는 등 이미 부패가 80% 이상 진행된 상태로 백골화가 됐다. 이밖에도 시신 주변에 누군가 자리를 마련한 듯 꺾여 있는 풀의 모습도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진이 수사기록 중 하나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최초 유출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록이 시중에 유포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미숙한 초동 수사와 허술한 수사로 지탄을 받고 있는 검찰과 경찰이 수사기록 관리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경찰은 사진 유출 경위를 수사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진이 확산되며 시신을 둘러싼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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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의 차남 혁기 씨(원안사진) 부부명의로 되어있는 유카이파 지역 저택의 위성사진을 보면 엄청난 크기의 저택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대지면적만 5.11에이커, 6,255평이다. ⓒ2014 Sundayjournal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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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면서 사실상 ‘구원파’ 후계자 및 해외 부동산 관리책으로 지목받아온 차남 혁기 씨(Hyuk Kee Yoo)가 보유하고 있는 미주지역 부동산에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무래도 유병언 사후 ‘구원파’의 후계계도에도 영향이 미칠 사안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 배상의 책임을 물어 몰수대상으로까지 언급됐던 부동산들이라 새삼 주목을 끌고 있는 것. 이와 관련 본지는 지난 927호 기사(4월 23일자)를 통해 이미 차남 혁기 씨가 팜스프핑스 인근 유카이파 지역에 본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는 저택에 대해서 크게 보도한 바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세모그룹의 후신격인 한 법인체가 수차례 명의변경 작업(?)을 통해 아직까지도 차명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한국에 대서특필되면서 역외탈세 의혹을 받은 바 있는 체리밸리(뷰몬트 일대) 지역 ‘하이랜드 스프링스 리조트(10600 Highland Springs Ave.)’에 집중적으로 조명을 비쳤었다. 이 과정에서 베일에 가려졌던 혁기 씨의 뉴욕지역 고층콘도와 저택, 그리고 남가주 지역 유카이파 저택 등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 본지는 이번 유병언 씨 사망과 관련 해당 부동산들에 대해서 지난 23일자로 다시 조회한 결과 아직 소유주는 모두 그대로인 것을 확인했다. 남가주 지역 유카이파 저택의 경우 여전히 차남 혁기 씨 명의로 되어있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이미 본지가 보도했던 대로 혁기 씨는 지난 1990년 662만 5천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주고 구입했던 ‘하이랜드 스프링스 리조트’에서 약 5.9마일,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인 유카이파 지역에 지난 2005년 12월 7일 자로 5.11에이커짜리(대지 6,255평) 저택을 그랜드 오프닝과 동시에 92만 5천달러(1차 모기지 76만 달러)에 매입한 바 있다. 한편 유병언 씨 사체가 발견되면서 경찰과 검찰의 수사망은 장남 대균 씨 검거로 쏠리고 있다. 이에 반해 차남 혁기 씨의 대한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한발 빗겨간 가운데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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