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자금을 건넨 친박 실세 8명의 이름을 적어놓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발견돼 전국을 충격에 몰아 넣은지 보름이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의혹 규명이라는 최종점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김기춘, 허태열, 이병기 등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과 홍문종, 유정복 등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들이 모두 적힌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될 당시만 해도 상당수 언론들은 56자의 메모지 한 장이 12년만의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질 것이라 단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 ‘성완종 리스트’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로 확산될 가능성은 날마다 줄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경향신문의 성 전 회장 인터뷰와 ‘성완종 리스트’ 초기만 해도 쏟아져 나오던 언론의 8인에 대한 의혹보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 쪽으로 정리돼 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여권 실세라고 분류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는 어느정도 거리감이 있는 인사들이며 금품을 받았다 하더라도 대선자금과 연결고리는 희박한 인사들이다. 오히려 검찰의 칼끝은 10년도 넘은 성 전 회장의 사면 관련 의혹을 향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과 황교안 법무장관이 잇따라 사면과 관련한 의혹을 밝혀야 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고 나섰다. 성 전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 죽음으로 진실을 말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현 정권은 이마저도 정권의 안위를 위해서 교활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불법 정치자금의 진실이다. 성 회장은 2006년 당시 김기춘 의원(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당시 박근혜 의원 독일 방문경비로 10만 달러를 건넸다고 폭로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는 허태열 박근혜 대선후보캠프 직능총괄본부장(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경선자금으로 7억 원을 건넸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2012년 대선에는 홍문종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조직총괄본부장(현 국회의원)에게 대선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건넸다는 증언도 했다. 성 전 회장의 메모와 증언에서 언급된 김기춘, 허태열, 홍문종 등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성 전 회장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을 보고 정치자금을 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죽음으로서 말하고자 한 것 성 회장은 죽음으로써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려 했다. 그들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자수성가한 성 회장을 부추겨 검은 돈을 받아놓고, 정작 그가 어려워지자 하나같이 모른척하면서 이번 사건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 회장이 메모지에 남긴 여권 핵심인사 8인의 면면을 보면 박 대통령과 워낙 가까운 데다 그들이 박근혜 정권 출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검찰로서는 사실상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박 대통령이 28일 사실상의 수사지휘 메시지까지 던지면서 난감함은 더 깊어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에는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임명한 대통령 비서실장 3명의 이름이 모두 등장한다. 대통령의 최측근 전원이 한꺼번에 비리 의혹을 받는 초유의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3000만원 수수 의혹 등으로 지난 27일 사임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박 대통령에 이은 국정 ‘2인자’에서 하루아침에 검찰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다. 반대 여론에도 이 전 총리 임명을 강행했던 박 대통령은 후임 총리 인선에도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는 박 대통령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도 겨냥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숨지기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허태열 실장에 준 돈(7억원)을 가지고 (박근혜 캠프가) 경선을 치른 것”이라고 했다. 또 “(2012년) 대선 때 홍문종 본부장과 매일 움직이고 뛰면서 제가 한 2억 정도 줬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의 증언만 보면 2007년 한나라당 당내 경선과, 2012년 대선에서 모두 박 대통령 측 캠프에 불법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보면 성완종 리스트는 사실상 ‘박근혜 리스트’나 다름이 없다. 박 대통령은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아 있는 ‘살아 있는 권력’이다. 검찰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사 단초인 셈이다. 그래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폭로자인 성 전 회장 유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한 데 이어 경남기업의 전·현직 임직원들을 구속하면서 ‘제3의 리스트’를 찾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시간을 마냥 끌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28일 대국민 메시지도 검찰에 부담거리다. 박 대통령은 “성 전 회장에 대한 두 차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 사면 문제도 규명하라고 검찰에 대놓고 지시한 것과 다름없다. 수사팀은 “일정대로 수사할 예정이며 혐의점이 나오면 수사할 뿐”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특별한 단서가 없는 상황이지만 대통령의 직접 지침이 나온 이상 검찰도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윤회 문건’ 수사 때도 박 대통령은 “국정개입 의혹은 허위며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해 가이드라인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도 가이드라인 하지만 사면과정에 대한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는 것은 물타기나 다름없다. ‘성완종 리스트’는 불법자금의 공여자가 자금의 수수자와 액수, 시간, 장소, 경위를 소상히 밝힌 상태에서도 수사가 지지부진한데, 사면이야말로 어떠한 단서조차 없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의 메모처럼 적어도 ‘누가 언제쯤 얼마를 누구에게 줬다’는 대략적인 스토리라도 나와야 수사를 할 수 있지 밑도 끝도 없이 ‘그것도 이상하지 않나’라고 해서 수사를 할 수는 없다. 특히 사면권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돈을 주고 받은 다음에 사면을 했다는 명백한 근거가 나와야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설령 무슨 단서가 나온다해도 수사를 하기 쉽지 않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두 고인이 된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뇌물을 줬다한들 공소권이 없어서다. 검찰 내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다. “수사는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기소를 해야 하는데, 당사자가 모두 사망한 상태라면 수사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은 망자의 사면의혹을 통해 4·29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죽은자의 구원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사실 처음 성완종 리스트가 나오자 새누리당의 ‘전패’가 거론됐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특별검사(특검)제 도입, 이 전 총리 자진사퇴 등으로 조기 선제대응에 나섰다. 선거 종반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 성 전 회장의 2차례 특별사면을 고리로 새정치민주연합에 역공을 가했다. 새정치연합은 선거 초반 ‘유능한 경제·안보정당’을 표방하는 전략을 취하다 성완종 파문이 터지자 ‘부패정권 심판론’으로 급선회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완종 사건의 몸통이자 수혜자”라고까지 비난하며 ‘정권심판론’을 외쳤다. 하지만 이날 선거 결과는 사실상 야당의 정권심판론 ‘실패’로 드러났다. 중앙 정치이슈에서 다소 빗겨있는 광주 서구을을 제외하고,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 3곳(서울 관악을, 인천 서구·강화을, 경기 성남시 중원구)을 새누리당이 싹쓸이했다. 새누리당이 성완종 파문이라는 초유의 악재를 뚫고 야당에 펼친 역공으로 ‘성완종 파문’을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끌고간 전략이 먹혔다는 뜻이다. |
<성완종 물귀신 정국> 묻혀가는 56자의 진실과 ‘朴의 불법대선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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