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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김인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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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유명인사들, 모든 기존의 선수들이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강한 어떤 것들이 우리 편이었습니다. 바로 골목대장(the block captain)들입니다.”-최초의 한인 LA시의원 데이빗 류가 지난 결선에서 당선 후 일성이었다. 로스엔젤레스-미국 제2의 도시. 인구 3백89만명, 라티노(히스패닉) 48.5%, 백인 28.7%, 아시안 11.3%, 흑인 9.6%. 백인보다는 라티노가 많고, 흑인보다는 아시안이 많다. LA시의회는 총 15명의 시의원들이 있고 지역구당 46만명의 주민들이 있다. 캘리포니아 주하원 의원의 지역구 46만5천명과 비슷한 숫자이지만 실권은 훨씬 더 막강하다. LA 시의원은 ‘진짜’ 정치인이다. 여기서 ‘진짜’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다른 시의원들은 그저 동네 자원봉사자 정도의 자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권자와의 신의 지켜야 LA시를 포함하는 LA카운티의 총 88개 도시들 중에서 유일하게 LA시의원들은 풀타임으로 시정 업무에 종사한다. 보수도 연봉 18만달러이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16만5천달러보다 높다. 각 시의원 사무실에는 연간 170만달러의 예산이 배당된다. 10-15명의 보좌관들이 근무하게 된다. LA카운티 내의 다른 87개 도시 시의원들은 자기 직업을 가진 상태 (혹은 무직)에서 파트타임으로 약간의 페이를 받으며 일을 하는 자원봉사직, 명예직이다. 미국 제1의 도시 뉴욕의 시의회도 모두 51명의 파트타임직으로 구성됐을 뿐이다. 그만큼 LA시의회에 진출한다는 것은 미국 정치 주류에 올라탔다는 것을 뜻한다. 아시안으로써 LA시의원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 거의 불가능했다. 중국계인 마이클 우가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시의원을 지낸 것이 유일하다. 마이클 우는 그 후 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며 정치생활을 접었다. 아시안으로써 그것도 한인으로서 LA시의원에 당선된 데이빗 류, 이름 그대로 다윗(데이빗)이 골리앗을 꺽은 기적적인 선거였다. 다윗의 상대인 골리앗, 캐롤린 램지는 현직 LA시장, 시의장, 대부분의 시의원 그리고 LA타임즈와 LA 데일리뉴스가 공식 지지한 후보였다. 누구도 램지가 질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다. 데이빗 류가 당선된 제4지역구는 백인 유권자가 62%로서 전체 유권자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아시안 인구는 16%인데 그중에서도 등록 아시안 유권자수는 7.4%에 불과하다. 그런데 데이빗이 1,621표차로 이긴 것이다. 데이빗이 11,269표, 램지가 9,657표를 받았다. 램지는 예상대로 백인 부유층 거주지인 행콕팍, 로스 펠리즈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데이빗 류는 히스패닉, 동양계가 많이 거주하는 혈리우드, 샌퍼난도 밸리에서 표를 받아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14%였으니 숫자는 적지만 아시안 몰표가 선거의 당락을 좌우한 셈이다.
‘한류’ 넘어서 주류정치사회로
램지를 지지했던 LA타임즈는 LA정치계의 아웃사이더가 LA시의회에 입성하는 이변이라고 썼다. 램지의 선거본부에서는 마이크보닌 등 현역 시의원 5명과, 이 지역구의 전시의원이자 램지의 정치 멘토인 라본지 등 정치거물들이 함께 개표실황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데이빗 류의 당선소감을 씁쓸하게 들어야 했다– “오늘이 역사적인 날인 것은 제가 아시안 이어서가 아니고, 이제는 시청에서 예전같은 정치기 안 통한다는 것을 우리가 드디어 말했다는 것입니다.” 올해 39살의 데이빗 류는 1976년, 4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왔다. 부모는 한국에서 명문 대학을 나와 교사와 간호사로 생활했지만, LA에서 아버지는 시큐리티 가드, 열쇠공으로, 어머니는 홈 헬스케어의 보조사로 일했다. LA코리아타운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3남매와 할머니, 부모 등 3대 식구 6명이 함께 모여 살며 풍족하지 못한 시절을 보냈다. 푸드 스탬프를 받고 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을 받으며 살아갔다. 부모는 소수민족 이민자가 미국에서 차별받지 않고 잘사는 방법은 전문직을 가지는 것이라며 데이빗에게 의대를 강요(?)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UCLA에 진학해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대학 3학년 때 의대진학을 포기하고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UCLA 한인학생회장을 하며 봉사정신과 리더십을 함께 연마했다(이번 선거에서 UCLA 한인 동문회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뉴저지의 랏거스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한미연합회, 429폭동 분쟁조정센터 등에서 일하며 커뮤니티 봉사에 열심이었고 대학원 재학시절 뉴저지와 워싱턴 DC지역에서 비영리단체 봉사, 그리고 유엔본부와 한국 보건사회연구원등 여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인시민권 취득 캠페인을 벌여 이 기간 2만 여명의 한인 시민권취득을 도왔고, 시민권 취득시 수수료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6년 전 흑인 여성 정치인 인 이본 버크 전 LA수퍼바이저의 눈에 들어 정계에 입문했다. 데이빗 류가 당선된 LA시 제 4지구는 LA시의 중심부 노른자 지역이다. 아이러닉한 것은 2012년 지역구 재조정때 코리아타운이 빠지고 멀리 떨어진 벨리지역의 셔먼오크스가 포함된 것이다. 기득권 정치세력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지역구를 뜯어고쳤다. 지역구 구성으로 보면 데이빗 의 승산은 거의 없었다. 골리앗을 꺽은 다윗의 물맷돌은 무엇이었을까.
정치놀음에 진저리치는 주민들
제4지역에 숨어있던 5천-6천에 이르는 한인유권자표였다. 이날 투표율이 14%에 불과한 상황 에서 이들 한인들이 무더기 몰표로 나섰다면? 승리를 장담했던 거인 램지는 이 물맷돌에 꼬꾸라졌다. 또 다른 한류의 힘이다. 이제 데이빗 류를 적대시하는 LA 시의회, 시장등 기존의 LA정치세력과 어떻게 겨루어 나갈 것인가. 데이빗 신임 LA시의원의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