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한 외교부 국감자료 통계 ‘허위-과다’ 작성 논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최근 한국 외교부의 국감자료가 불성실해 문제가 되고 있다. 그중 재외동포단체 현황이 허위나 과다로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재외동포단체 통계뿐 아니라 외교부나 재외공관의 전반적인 자료 자체가 근거가 없거나 아니면 수년전 자료(그 자체 신빙성은 고사하고)를 그대로 방치 하고 있어 그 심각성이 크다. 본보는 지난날 이에 대한 지적을 수차례 했으나, 외교부나 LA총영사관 등 재외공관 측은 마이동풍격 이었다. 외교부에서 격년으로 발간하는 책자는 해외에 주재하는 재외 공관(대사관, 총영사관, 분관 또는 출장소)에서 작성, 보고한 공관별 재외동포현황을 취합, 정리한 것으로서 주재국의 인구 관련 통계자료, 한인회 등 동포단체 조사자료, 재외국민등록부 등 공관의 민원 처리기록, 직접조사 등을 근거로 산출한 추산치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을 어떻게 작성되었는가를 알아보면 한심하다.
<성 진 취재부 기자>

1981년 1월 새해 들어 LA총영사관은 무척이나 바빴다. 서슬이 시퍼런 신군부의 수장 전두환 대통령의 2월 레이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방미의 첫 기착지가 LA였기에 ‘대통령 초청 교민 간담회’ 등등의 준비로 연일 밤을 새울 때다. 이미 전두환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대통령 방미 선발대로 와서 대통령이 묵을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당시 박민수 제7대 LA총영사와 이민휘 LA한인회장을 포함 40여 한인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전 대통령내외 범교포환영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총영사관 동포담당 영사는 1월28일 저녁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서 개최될 교민 간담회에 참석할 동포 인사들 명단을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애초 외교부에서 시달된 공문에는 교민간담회에 참석자를 5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었다. 당시 LA에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은 근 18년 만에 처음이라 화제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 광주민주화 항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전두환대통령이기에 더욱 유명세(?)가 따랐다.
하여간 교민간담회에 너도나도 초청을 받으려고 공관이나 외교부 그리고 청와대까지 줄을 대었다.
한편으로는 ‘한인단체장이 우선적으로 초청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사관에 한인단체현항 보고서가 밀려들었다. 당시 총영사관에는 불과 100여개 단체 현항서만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대통령 초청교민간담회에 초청을 받으려고 단체 현항보고서가 총영사관으로 약 300통이 접수됐다.

▲ 총영사관 홈페이지 캡쳐

당시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공관이 매 2년마다 단체현항서를 제출해 달라고 사정을 해도 100개를 넘지 않았는데, 전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불과 2주 만에 300개 이상의 단체현항서가 접수됐다”면서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면서 놀랬다.
이런 보고를 들은 당시 청와대는 ‘교민 단체장은 모두 초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애초 500명 예상의 초청객이 두배로 늘어나 약 1,000명이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 몰려들었다.
전 대통령이 떠나간 다음, 총영사관의 그 관계자는 기자에게 ‘300여 이상 단체 현항서가 접수되어 기록을 세웠으나 검증할 방법이 모연하다’며 도움을 청했다. 기자가 보아도 많은 단체장들은 회원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고, 단체 창립연도도 불분명한 것이 많았다. 급조된 보고서였다.
이런 정황이니 동포인구 동태 파악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이었다. 담당자들은 전년도 통계에다 인구증가수, 인구센서스 등등의 출처를 대면서 적당하게 인구수를 작성하여 왔다는 것이 정설 이다. 애초부터 기초자료가 불성실했다는 것이다.
현재 미주 내 한인 인구를 250만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것도 과학적인 수치가 아니다.

급조된 보고서

현재 LA총영사관 웹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엉성한 데가 한 두 곳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연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들의 LA 방문 연혁>란에 오류가 너무나 많다.
우선 초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각각 LA를 방문했으나, 이같은 역사적 사실은 아예 빼버리고, 전두환 대통령 방문이 대한민국 정상으로는 처음 LA를 방문한 것으로 소개했다. 
초대 이승만대통령은 한국전 정전 협정 이듬해 1954년 7월25일 LA를  방문해  LA시의회 주최 환영행사서 미국 시민들에게 “여러분들의 아들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박정희대통령의 LA방문 시기는 베트남전 전투병력 파견 결정 직전이었다. 1965년 5월25일 동포 유학생 300명을 초청한 조찬에서 박정희대통령은 “인내와 노력으로 실력을 배양하라”고 ‘실력론’을 앞세웠다. 미국의 파병 요구에 고민했던 당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세 번째 LA를 방문한 전두환대통령의 방문 기록도 오류로 점절 됐다. 총영사관 사이트에 전두환 대통령의 LA방문을 1985.4월로 기록 했는데, 이것은 두 번째 방문 기록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첫 번째  LA방문은 1981년 1월28일이다.

당시 전두환대통령은 1981년 1월 28일부터 11일 동안 레이건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워싱턴DC로 가기 전 LA를 첫 기착지로 삼았다.
역대 대통령 중 전두환대통령의 LA방문은 여러 기록들을 양산했다. 한인들은 버스 20대를 대절해 2,500여명이 LA공항 환영행사에 나갔다. 사상 최대 인파였다. LA총영사관은 환영객들을 위해 LA공항에 10개의 간이화장실까지 차렸다.
코리아타운 중심인 올림픽 불러바드 선상 노먼디와 웨스턴 구간에 태극기 180쌍이 꽂혔고 플래카드까지 내걸렸다. 거리에는 2만 명의 한인들이 나왔다. ‘광주민주화’ 학살에 대한 항의로 관이 올림픽가에 나오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 기증한 우정의 종도 전두환 대통령이 첫 타종 했다.
당시 레이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주한미군철수계획의 백지화, 한-미 안보협의회의 즉각 재개 등 양국 간의 현안을 타결하고 나아가 한-미관계에 새로운 동반자인식을 불어 넣었다. 그때 레이건대통령은 80년 대선에서 현직 카터대통령을 밀어내고 당선되어 81년1월20일 대통령 취임선서식을 마친 다음 처음으로 초청한 외국 원수가 바로 전두환대통령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당시 ‘김대중 미국 망명’을 끌어내기 위한 한미간 밀약이라고 보도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4년 뒤 1885년 4월24일 두 번째 LA를 방문했다. 2일후 DC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전두환대통령은 두 번째 LA 방문에서 새벽에 8가의 할매집을 찾아가 LA한인타운을 찾은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해장국을 먹던 안인식씨에게 담배를 권하며 한갑을 기념으로 줬다. 할매집은 그 후 대박식당이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10월 18일 한미정상회담(10월16일)을 마치고 귀국길에 LA를 방문 했다. 김영삼대통령은 4.29폭동(1992) 이듬해인 1993년 11월17일 LA를 찾았다. 폭동의 영향으로 당시 김 대통령의 메시지는 ‘인종간 화합’이었다. 3년 뒤 1996년 9월2일 중남미 순방길에 다시 LA를 찾아  동포간담회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재외동포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단은 이듬해 1997년에 설립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6월 12일 외환위기 때 LA를 방문했다. 투자 유치가 급선무였다. 다행히 성공적인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그는 동포간담회에서 “올 때는 빈 가방으로 왔지만 갈 때는 두둑히 가져간다”고 웃었다.
이후 한국대통령의 LA방문은 2004년 11월 노무현대통령, 2008년 11월 이명박대통령 그리고 2013년 5월 박근혜대통령 등이다.

불필요한 정보 수두룩

이처럼 한국 대통령들의 LA방문을 LA총영사관 사이트에서는 불성실하게 수록했다. 그뿐이 아니다. LA<공관 연혁>란을 보면 더 한심하다.
LA총영사관은 대한민국 공관으로서 1948년 11월21일 해외에 설치된 최초의 공관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주미대사관(1949년3월25일)청사 개설보다 먼저 설립된 공관이다. 이처럼 67년의 공관 역사를 지닌 LA총영사관의 연혁 란에는 고작 9개 줄로 처리했다.
연혁을 보면 1948.11.21. 총영사관 개관 (542 S. Broadway, Los Angeles, CA 90013)1957.총영사관 청사 이전 (5455 Wilshire Blvd, #11F, Los Angeles, CA 90036), 1972년 현 총영사 관저 매입(국유화), 1978.11.28현 문화원 건물 및 부지 매입(국유화),1980.04.11 LA 한국문화원 개원, (5505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36), 1988.03.15현 총영사관 청사 매입(국유화),1988.10.22. 현 총영사관 청사 이전 (3243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10),2001.07.25. LA 한국교육원 건물 및 부지 구입(LA한국교육재단),2002.02.21 LA 한국교육원 개원 (690 Wilshire Place, Los Angeles, CA 90005) 등이 전부다.
연혁 자체가 이처럼 부실하니 다른 사항들도 다르지 않다.
<관할지역 개관 밎 정세>란을 보면 1년이 훨씬 지난 정보들을 올려놓고 있다. LA지역 일반정세는 등록일이 2014년 5월 것이 아직도 최근 정세로 올려져 있다. 캘리포니아주 일반정세도 1년 전인 2014년 5월에 올린 것이 최근 것이다.
<공관장 활동사항>을 보면 더 부실하다. 공관장 활동사항은 총영사의 활동사항을 수록한 것인데 올해 8월19일에 올린 사항이 번호 900으로 <제70주년 8.15 광복절 기념행사 참석>을 기재했다. 그런데 내용은 LA에서의 8.15광복절 행사가 아니라, 8월14일 아리조나주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를 소개하고는, LA에서 8월15일 범동포 합동 광복70주년 행사에  총영사 참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LA총영사의 홈페이지는 동포들이나 관계자들이 알아야 하는 정보가 담긴 사이트가 아니라 그저 지금 같은 인터넷 세상에 사이트가 없으면 안 되기에 설치해 놓은거나 다름없다.
이런 사이트의 불성실이 비단 LA총영사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뉴욕 총영사관이나 시카고 총영사관, 또는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사이트에 가보면 그곳에서도 얼마든지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공무원들의 자질과 자세가 문제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