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 정부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 민주당 입당 파장
■ 박지만 마약수사 인연 청와대 입성 권력투쟁 중심
■ 정윤회- 문고리 3인방 핵심실세 비리 폭로 가능성
나쁜 사람들을 몰아낸 더 나쁜 대통령
박근혜-정윤회-십상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한 때 박근혜 정권 최고 핵심에 있었던 인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63번 째 생일날(2월2일)에 제대로 ‘빅엿’을 먹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이 지난 2월 2일 더불어 민주당 입당을 발표하면서 정치권에 파장을 낳고 있는 것. 대통령의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비위 혐의를 감찰했던 비서관이 정권이 끝나기 전 야당으로 가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사실 조 전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과의 인연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던 인물이다.
정권 초반 박 회장을 등에 업고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으로 대표되는 박 대통령 보좌진 그룹과 권력투쟁을 벌였을 정도로 한 때 권력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런 그가 야당에 입당한 것은 다양한 해석을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권력을 등에 업고 권력 중심 한 가운데 뛰어들었던 그가, 돌연 배를 갈아타 전 주인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 같은 이러한 정치적 이단아는 사실상 박근혜 정권이 만든 셈이다. 대통령 스스로와 소수의 측근들 몇 명만이 폐쇄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하다 더불어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위원장이나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다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괴물 정권이 이단아를 계속해서 낳고 있는 것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된 조응천 전 비서관은 대구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 현 정부 실세들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기에 정권 초반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9월 29일 본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과거 마약복용으로 인해 수사를 받을 당시 그를 수사했던 검사가 조 전 비서관이란 사실을 처음 보도하면서 그의 이름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당시 본지는 1994년 2월 4일 전국 단위 일간지 사회면 한 구석에 박지만 씨와 관련된 기사를 발굴, 이를 보도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조응천 검사는 3일 히로뽕 투약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36)씨에 대해 법원에 치료감호를 청구했다. 검찰은 “국립정신병원에 의뢰한 정신 및 신체감정 결과, 지만 씨가 히로뽕에 대한 습관성과 중독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이런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되는 조응천 검사는 이후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 수원지검 공안부 부장검사 등을 거쳐 김앤장법률사무로소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민정수석실 내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때 정권 최고 실세의 반전 드라마
조 전 비서관은 한 때 청와대 사정 라인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꼽혔다. 그와 관련해 “원래 민정수석으로 가려했었는데 비서관으로 왔다” “민정수석이 상관이지만 실제로는 민정수석보다 힘이 더 세다” 등의 말들이 청와대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다. 윤창중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에서는 윤창중 전 대변인이 직속상관이 이남기 홍보수석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말이 회자되었었는데 곽 전 수석과 조 비서관 사이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많았다. 그 정도로 조 비서관이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청와대 내의 시각이었다.
조 전 비서관이 이 정도로 힘이 강했던 이유는 대통령의 동생 등에 올라타기 때문이었다. 이는 박지만 회장의 마약 사건 때 맺어진 인연이 이어져서였다. 당시 박 씨는 비록 히로뽕 초범이었지만 히로뽕 중독의 상습투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만에게 징역이 아닌 치료감호 청구를 한 것이다. 만약 당시 조처로 박 씨가 마약을 끊었다면 적절한 조처였을지 모르나 박 씨는 이후에도 3차례나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결과적으로 박 씨는 마약은 끊지 못한 채 병원에서 편하게 형기를 채운 것이다. 여전히 박지만 씨의 마약 투여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거져 나오는데 당시 박 씨를 일벌백계로 다스렸다면 오히려 지금의 이런 의혹들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검찰 마약단속과에 관계했던 수사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 전 비서관의 힘이 비대해지면서 마찰을 빚게 된 것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대표되는 박 대통령의 보좌진 그룹이었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정윤회 씨가 있었다. 결국 정권 초반 구중궁궐 청와대는 박지만 – 조응천 라인과 정윤회 – 문고리 3인방 라인 간 권력투쟁으로 내부가 크게 시끄러워졌다. 그 과정에서 정윤회 씨가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이야기도 불거져 나왔고, 내부 문건도 밖으로 흘러나왔다.
박지만 마약수사검사출신 조응천…깜짝 야당행 논란
정윤회-문고리 3인방에게 밀려난 후 복수의 칼 갈아
조, 박 정권 실세 등 비리비위자료 모두 가지고 있어
이런 사건의 모든 책임은 결과적으로 조 전 비서관이 지게 됐다. 검찰은 정윤회 씨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문건 유출 경로를 사건의 핵심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조 전 비서관이 그 중심에 있다고 봤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로 그 아래에서 일하던 박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넸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난해 1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기소했다. 대통령기록물이자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을 밖으로 빼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9개월가량 이어진 1심 재판 끝에 법원은 조 전 비서관에게 무죄를, 박 경정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7건의 문건 중 유출 행위가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보이는 건 ‘정윤회 문건’ 1건뿐이었고 그나마 박 경정의 단독 범행이라고 법원은 판시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아예 인정되지 않았다.
국보위 전력 김종인의 해괴한 변명
조 전 비서관은 한 때 청와대 사정 라인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꼽혔다. 그와 관련해 “원래 민정수석으로 가려했었는데 비서관으로 왔다” “민정수석이 상관이지만 실제로는 민정수석보다 힘이 더 세다” 등의 말들이 청와대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다. 윤창중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에서는 윤창중 전 대변인이 직속상관이 이남기 홍보수석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말이 회자되었었는데 곽 전 수석과 조 비서관 사이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많았다. 그 정도로 조 비서관이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청와대 내의 시각이었다.
조 전 비서관이 이 정도로 힘이 강했던 이유는 대통령의 동생 등에 올라타기 때문이었다. 이는 박지만 회장의 마약 사건 때 맺어진 인연이 이어져서였다. 당시 박 씨는 비록 히로뽕 초범이었지만 히로뽕 중독의 상습투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만에게 징역이 아닌 치료감호 청구를 한 것이다. 만약 당시 조처로 박 씨가 마약을 끊었다면 적절한 조처였을지 모르나 박 씨는 이후에도 3차례나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결과적으로 박 씨는 마약은 끊지 못한 채 병원에서 편하게 형기를 채운 것이다. 여전히 박지만 씨의 마약 투여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거져 나오는데 당시 박 씨를 일벌백계로 다스렸다면 오히려 지금의 이런 의혹들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검찰 마약단속과에 관계했던 수사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비정상적 박 정권 밑에서 제2의 김종인-조응천 줄서
김종인-조응천 비판하는 靑…박근혜 얼굴에 침 뱉기
박근혜 핵심 역‘김종인-이상돈’교수도 비슷한 사례
조 전 비서관의 힘이 비대해지면서 마찰을 빚게 된 것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대표되는 박 대통령의 보좌진 그룹이었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정윤회 씨가 있었다. 결국 정권 초반 구중궁궐 청와대는 박지만 – 조응천 라인과 정윤회 – 문고리 3인방 라인 간 권력투쟁으로 내부가 크게 시끄러워졌다. 그 과정에서 정윤회 씨가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이야기도 불거져 나왔고, 내부 문건도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런 사건의 모든 책임은 결과적으로 조 전 비서관이 지게 됐다. 검찰은 정윤회 씨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문건 유출 경로를 사건의 핵심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조 전 비서관이 그 중심에 있다고 봤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로 그 아래에서 일하던 박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넸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난해 1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기소했다. 대통령기록물이자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을 밖으로 빼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9개월가량 이어진 1심 재판 끝에 법원은 조 전 비서관에게 무죄를, 박 경정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7건의 문건 중 유출 행위가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보이는 건 ‘정윤회 문건’ 1건뿐이었고 그나마 박 경정의 단독 범행이라고 법원은 판시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아예 인정되지 않았다.
박근혜 측근만 해먹겠다는 ‘진박 마케팅’
혼박일체(魂朴一體) 강요하는 최경환과 갈등
진박전도사로 혼박일체(魂朴一體:사람들의 혼마저도 박근혜와 일치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광신도)을 부르짖는 박근혜의 마당쇠격인 최경환 의원이 특정주자의 개소식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는 등 이른바 ‘진박 마케팅’을 벌이자, 부산지역 총선주자들이 일제히 반박하고 나서는 등 친박-비박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최 의원은 사실 아무런 당직도
없는 평의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친박계 신(新) 좌장으로 불리면서 연일 ‘진박’ 후보들의 예비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면서 ‘진박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경환 의원은 지난달 30일 대구 북갑에서 열린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의 개소식에 참석해 ‘TK 현역 심판론’을 강조하면서 ‘진박’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데 이어 1일에도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윤상직 전 산언통상자원부 장관의 개소식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최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대구·경북 의원들은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4년간 뭐했느냐?”고 성토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뒷다리를 잡지 않았느냐?”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최 의원은 지난 1일 오후 부산에서 부산진을의 이헌승 의원과 기장군의 윤상직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진실한 사람과 함께 해야 진실한 사람”이라며 지지를 호소하는 등 ‘진박 마케팅’을 벌였다. 결국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최경환 의원이 개소식에 참석하면 ‘진박’으로 분류되고 그렇지 못하면 ‘비박’이 된다는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박 마케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 최경환 의원이 막후에서 ‘진박 후보’들을 내려보내는 역할을 했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진박’후보들이 열세를 보이자 이대로 뒀다가는 예선도 통과하지 못해 공천을 받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
당내 일각에선 당권과 대권 경쟁이 본격화하면 결국 계파 갈등이 폭발해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2년 총선 공천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다.
당시 김 대표 등 비박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자 물밑에서 비박계와 자유선진당(현재 새누리당과 합당) 간 통합 논의가 진행됐다. 다만 김 대표가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분당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확실한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김 대표나 비박계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친박계 인사들은 이런 최경환을 향해 미인박명(尾人朴命)이라고 조소하고 있는데 미인박명이란 ‘여우 꼬리 같은 놈이 박근혜의 명을 재촉 한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