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뢰프로세스…쪽박이 된 朴 통일대박론
미국 발 北風인가?
중국 발 凍風인가?
정권 초반부터 줄곧 주장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통일대박론’이 그야말로 쪽박신세가 되어버렸다. 북한의 사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흡수통일을 기반으로 한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애초부터 현실 가능성이 낮았는데, 최근에는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그야말로 한 발 짝도 떼지 못하고 쪽박이 되어버렸다.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온 개성공단 전면중단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분간 통일보다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남한이 의도하는대로 미국과 중국과 같은 주변 강대국들이 따라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박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오히려 남한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본국은 개성공단 폐쇄를 하면서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요청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한 본토에 사드를 배치하려고 하면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아예 중국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사드를 배치하든가, 아니면 사드를 접고 중국의 대북제재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주변 측근들이 자기 말을 따르는 것처럼 중국도 무조건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한 모양이다. 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중국 열병식에 참석할 정도로 성의를 보였는데,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지 않아 화가 났다고 한다. 사실 열병식 참석도 중국의 의도에 넘어간 것이지만, 그런 외교적인 의전 하나로 중국이 자신을 위협하는 사드 배치를 눈 감아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너무나 단순한 외교적 발상일 뿐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13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정책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남북 사이에 교류협력과 신뢰 구축을 통해 통일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을 골자로 했다. 박 대통령은 “인도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것을 추구하며, 대화 창구를 구축하고, 기존 합의정신을 실천하며, 호혜적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심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실상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각각 일구어낸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념과 실천방안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2014년 1월 기자회견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고 선언했다. “평화통일은 대박이지만 흡수통일은 쪽박”이라는 비판이 일자 그는 북한을 흡수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독일을 방문하던 기간에 ‘드레스덴 제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민생 인프라’를 구축해 북한에 ‘복합농촌단지’를 조성하며 남북 간 신뢰 축적에 따라 더 큰 규모의 경제협력을 하고, 북한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며 그곳의 지하자원을 개발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남북관계 오히려 MB 때보다 더 파탄
박 대통령이 화려한 수사를 동원한 통일정책을 내세웠을 때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이 ‘5·24 조치’라는 것으로 거의 단절 상태에 빠뜨려버린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도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남과 북은 더 깊게 골이 파인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에서 이뤄진 것은 ‘비정례적인 이산가족 상봉’ 단 한 가지뿐이었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를 보면 북한이 그나마 국제사회의 비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6자 회담을 통한 공조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을 때였다. 이는 당사국들의 모임인 6자회담을 통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길 밖에는 달리 수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결국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변호하거나 옹호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 두 나라와 북한이 한국, 미국, 일본과 함께 대화 자리에 앉도록 끈질기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어설프게도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제안했다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냉대를 당했다.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가동까지 전면중단함으로서 마지막 남은 북한과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박 대통령은 남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중국을 위협하는 ‘사드’를 남한에 배치한다고 하니 중국이 남한의 제의에 동참할 이유가 전혀 없어져 버렸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남한과 같은 조그만 나라의 의견을 순순히 따라줄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생각으로 외교를 하다보니 이도저도 안 되는 셈이 되어버렸다.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민간 및 군사 연락 채널까지 모두 끊기면서 남북 관계는 오히려 박정희 정권 때인 44년 전의 냉전 시대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통일대박론이 나온지 만 2년 만에 우리는 역으로 ‘전쟁쪽박’을 걱정하며 ‘전쟁준비위원회’라도 말들어야할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미국발 북풍인가
그렇다면 이번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가장 미소를 짓는 곳은 어느 나라일까.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은 북한 위성 발사로 인해 사드라는 전략 무기를 한국에 팔아먹을 수 있게 됐다.
사드는 수 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무기다. 상당수 미사일전문가들은 사드의 스커드, 노동 미사일 요격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에 자폭 기술을 적용할 경우 사드 레이더가 탄두와 미사일 파편을 식별하기 어려운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도 100km가 넘는 외기권에서 요격에 필요한 장치인 ‘킬 비클(Kill Vehicle)’은 개발은 됐지만 제대로된 성능이 발휘되지 않는 등 사드는 기술적으로 미완성 상태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사드를 팔았다는 당위성을 내세울 수 있어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다.
미국보다 더 많은 수혜를 입는 나라는 일본이다. 물론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는 일본에 북한의 핵미사일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군사적 위협임에 틀림없다. 이는 일본 열도 북쪽 미사와 공군기지에서 시작해 오키나와 공군기지까지 대규모 군사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에도 중대한 위협이다. 여기서 일본과 미국 사이에는 군사적 협력의 필요성에서 강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일본은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일본뿐만 아니라 북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리더십에 심각한 위해와 위협이 되고 있다는 논리로 미국과의 동맹을 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일본은 영악하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역 방어 작전체계에 해군과 공군 중심의 자위대를 슬며시 편입시키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반면 한국은 그동안 공들여 온 중국과의 관계가 일순간에 급락할 위기에 놓였다. 한국은 과거 미국 없이는 경제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했듯이 현재는 중국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중국의 경제 보복 위기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사드 배치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이 무역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실제로 중국은 2010년 중국이 반체제 인사로 분류한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노르웨이의 연어 수입을 중단했고, 2012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 분쟁 때는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 중국이 ‘보이지 않는 손’을 동원해 한국의 대중 수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와 대중 수출 품목이 70%가량(금액 기준) 겹치는 일본으로 무역 거래선을 옮길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와 북한이 추는 칼춤에 미국과 일본은 웃음 짓고, 우리나라만 이래저래 손해 볼 수 밖에 없는 장사가 되고 있다.
4월 총선 변수로 급부상한 ‘사드’
4ㆍ13 총선을 앞두고 ‘사드’가 선거판을 뒤흔들 변수로 등장했다. “사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우리 동네에는 배치할 수 없다”는 지역 간 갈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 현재까지 군당국에 따르면 사드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체제로,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평택(경기)과 원주(강원), 군산(전북), 대구 등이 배치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사드는 일반적인 군사시설과 달리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를 발생해 ‘혐오시설’처럼 인식되고 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본국 기자들에게 “사드 핵심 장비인 AN/TPY-2 레이더(X밴드 레이더)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군인)도 피해다닌다”고 시인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설치한 일본 교토 교탄고시(市)에서는 X밴더 레이더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와 전력 공급용 발전기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구토와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사드 배치에 결사반대하는 이유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가 일상 생활에 영향을 줄 경우 지역 주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사보안’이라는 명목으로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없이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총선 예비후보들은 벌써부터 사드 ‘표밭관리’에 나섰다. 여야할 것 없이 사드 배치에 무조건 반대하는 모양새다.
지역 내 강한 반대여론에 사드 배치 후보지로 물망에 오른 지역구 의원들은 난감한 입장이다. 사드 조기 도입을 주장했던 여당 원내대표 원유철 의원(경기도 평택갑)은 자신의 지역구가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되자 “왜 평택을 꼭 집어 이야기하느냐”며 “아직까지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특정 지역이 논의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사드 도입에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밝혔던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도 도입 부지에 대해서는 “국방부가 최적의 입지를 결정한 뒤 국회에서 적정성을 점검해 최종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같은 논란으로 인해 한·미 양국은 장소가 선정되더라도 4·13 총선 이후에 발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