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승기 회장 당선 무효…김민선 적법한인회장’판결
‘부정선거로 당선된 사람은 한인회장이 될 수 없다’
‘한 지붕 두 가족’ 사태를 촉발한 뉴욕한인회장 선거와 관련, 제34대 뉴욕한인회장은 김민선씨이며 민승기씨는 한인회장이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뉴욕주법원은 민씨가 임명한 제34대 선거관리위원회가 부패해 공정성을 잃은 선거가 진행됐다고 판결함으로써 민씨는 한인회장자격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치명타를 입게 됐다. 재판부는 ‘비영리 단체의 회칙은 법원의 심리대상이 아니지만 회칙집행의 적법성, 특히 선거의 공정성은 법원의 심리대상’이라고 천명하고 시시비비를 철저하게 따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사법부는 비영리단체를 둘러싼 소송에서 당사자 간의 합의 또는 중재를 통한 자체해결에 초점을 뒀음을 감안하면 이번 판결은 비영리단체라도 공정성을 해칠 경우 ‘사회정의’차원에서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한인사회의 유사사건은 물론 다른 커뮤니티의 선거관련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뉴욕뿐 아니라 LA를 비롯해 각 지역 한인회장 선거와 관련 유사사례발생 때 적극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일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뉴욕한인회장 부정선거 판결 파장을 짚어 보았다.
박우진(취재부기자)
맨해튼지역을 관할하는 뉴욕카운티지방법원은 지난 16일 뉴욕한인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제34대 뉴욕한인회장에 입후보했다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던 김민선씨와 회칙개정위원장 등이 지난해 3월 5일 민승기씨와 이승렬 선거관리 위원장, 유창훈이사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으로, 약 1년 만에 1심 공판이 마무리된 셈이다.
마가렛 첸 뉴욕카운티지방법원 판사는 판결문 앞부분에서 이 사건의 배경을 상세히 밝혔다. 제33대 뉴욕한인회장인 민씨가 뉴욕한인회관 건물매각을 추진하자 이사장이던 김씨가 커뮤니티의 자산을 함부로 내다팔 수 없다며, 2014년 4월 매각반대와 뉴욕주 검찰청에 조사를 요청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제기, 승인을 받았다. 이사회가 매각반대를 결의하자 민씨는 곧바로 4월말 이 이사회를 해체하고 새 이사회를 구성했고 김씨는 2014년 12월 제34대 뉴욕한인회장 출마를 결심한 뒤 지난해 1월 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씨 출마가 알려지면서 민씨는 1월 26일 긴급이사회를 소집, 선관위원장 임명과 새 선거규정을 승인했으나 1월 29일 김씨가 선거규정을 요청해도 이를 주지 않다가 2월 3일에야 기호추첨이전에 선거운동을 한 후보는 자격을 박탈한다’는 규정을 담은 새 선거규정을 발표했다. 2월 10일 김씨는 공탁금 10만달러를 납부, 후보자격을 획득했고 2월 19일 선관위는 2명이 입후보했다고 공식발표하고 이튿날인 20일 기호추첨을 통해 민씨는 1번, 김씨는 2번으로 확정됐다.
김씨 후보자격박탈도 무효
사단이 난 것은 기호추첨이 끝난 지 불과 2-3시간 뒤였다. 선관위가 새 선거규정을 적용, 김씨가 기호 추첨 전에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며 후보자격을 박탈해 버렸다. 선관위원 9명을 전원을 당시 회장인 민씨가 임명한 것은 회칙 상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원을 임명한 민씨가 출마함으로써 선관위의 이 같은 결정은 한인사회 초유의 선거부정이자 친위쿠데타로 불리기도 했다, 시험 치는 학생이 자신이 아는 사람을 답안지를 채점하는 선생님으로 임명한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것이다. 결국 한인사회의 이 같은 여론은 이번 판결을 통해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선관위가 부정과 불공정으로 점철돼 있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쟁점은 이사회의 적법성여부, 첸판사는 지난해 1월 26일 열렸던 긴급이사회에서 의결된 이승렬씨의 선관위원장임명, 새 선거규정안이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민씨측은 31명의 이사가 만장일치로 이 2가지 안건에 찬성했으므로 적법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이사는 22명, 위임장을 제출한 이사는 9명이며, 위임장은 투표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회의를 열 수 있는 의사정족수는 충족됐지만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결정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민씨도 공판과정에서 위임장제출이사는 투표권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판결문은 명시하고 있다.
두 번째 쟁점인 김씨에 대한 후보자격박탈도 무효라고 판결했다. 첸판사는 후보자격박탈은 1월 26일 이사회에서 의결됐다는 새 선거규정에 따른 결정이었으나 이사회 결의 자체가 무효이므로 후보자격박탈도 무효라고 밝혔다. 첸판사는 또 민씨와 김씨, 두 후보 모두 똑같이 사전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에, ‘동일한 위반에 대한 처벌은 동일해야 한다’며 선관위가 김씨에게는 자격박탈, 민씨는 주의조치를 취한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이중적 기준을 적용한 것이며 독단적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선관위가 부패했다고 명시했으며, 따라서 민씨의 제34대 회장당선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씨는 선관위가 새 규정을 의결한 1월 26일 이전인 1월 25일 뉴욕대한체육회 연말타피에서 선거출마의사를 밝혔고 민씨는 뉴욕한인회관을 자신의 선거사무실로 활용하고, ‘민승기후보선거본부’라는 배너까지 버젓이 걸어놨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에게는 진술기회도 주지 않고 후보자격을 박탈하고 민씨에 대해서는 주의만 주고 징계를 논의하는 회의도 세 번이나 연기하면서 단독 입후보하도록 한 뒤 민씨만 출마했다며 당선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회직의 적법한 집행 선거감시는 권한
특히 재판부는 ‘비영리단체의 회칙은 본법정의 심리대상이 아니지만 비영리단체법 618조에 의거, 선거관리의 적법성은 당 법정 심리의 대상이다. 본법정은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졌는지, 의혹과 부패한 환경 속에서 취러졌는지를 판단하고 재선거를 명령하는 등 비영리단체 선거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즉 비영리단체가 어떠한 내용의 회칙을 만드는 지는 자유지만, 그 회칙의 적법한 집행과 선거과정에서의 공정성이 훼손되면 법원이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판결한 것이다.
세 번째 쟁점인 전직한인회장단협의회의 총회소집 및 민승기 탄핵 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한인회칙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판결했다. 전직회장단은 선관위의 김씨 후보자격박탈은 부당하다며 이를 철회하고 두 후보를 대상으로 선거를 치르라고 권고했으나 선관위가 이에 따르지 않자 3월 14일 공고를 내고 3월 31일 긴급총회를 열었다. 민씨는 이 총회가 불법이라고 주장했지만 1775명의 서면 및 온라인청원으로 개최됐기 때문에 251명이상의 회원이 요구하면 긴급총회를 열수 있다는 한인회칙에 따라 적법하게 개최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민씨에 대한 탄핵은 638명중 624명의 찬성, 유창현 이사장 탄핵은 638명, 3월 8일 선관위 주최 선거가 불법이라는 안건은 630명 찬성으로 통과됐으므로 모두 적법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또 전직회장단협의회는 한인회칙에 명시돼 있는 단체라고 지적했고 이날 결의에 따라 4월 26일 치러진 선거에서 김씨가 당선된 것도 정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민씨측이 법정에서 자신들이 유리할 때는 회칙대로 따르자고 주장하다가, 불리할 때는 회칙을 무시했다고 판결문에 명시하고 이는 완전히 모순된 주장이라고 판시했다. 또 지난달 20일 최후공판에서 민씨측이 전직회장단을 ‘수프만 마셔대는 노인네집단’이라고 표현했다고 명시, 민씨측의 이같은 표현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선관위 도덕성 문제 수면 위 부상
반면 구 이사회해산과 신임이사 임명에 대해서는 민씨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한인회칙에 따라 회장이 1년 임기의 이사를 임명할 수 있으므로 민씨는 행동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또 한인회칙은 한인회가 제정하거나 수정할 수 있으므로 기존 회칙의 위법여부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판단할 사안은 아니라고 밝혔다.
첸판사는 ‘본 법정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와 진술 등을 단단한 결과 선관위에 의해 치러진 3월 8일 선거절차는 무효이며, 민씨 등을 탄핵하고 3월8일 선거를 무효화시킨 것은 적법하다’며 ‘김씨의 후보자격을 박탈한 선관위 결정은 독단적이며 비합리적[CAPRICIOUS, 비논리적등] 이며 민씨가 만든 선관위의 선거관리는 부패했다’고 판시했다. 첸판사는 ‘따라서 김씨가 적법하게 선출된 34대 뉴욕한인회장이며 민씨는 더 이상 한인회장이 아니므로 민씨는 뉴욕한인회관등 자산과 회계장부, 서류 등 모든 것을 넘기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장문의 판결문에서 한인회장선거의 배경과 한인회칙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수십 건의 관련판례를 열거하는 등 한인사회에 대해 ‘열공’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법조계일부에서는 ‘뉴욕타임즈 등 주류언론까지 관심을 가짐으로써 판사가 이 판결에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비영리단체 선거에 대한 정확한 판결을 한다면 두고두고 다른 재판에도 인용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므로, 판사도 자신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판사에게도 희귀하면서도 언론의 주목도가 높은 사건에서 명 판결을 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법조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항소법원 등으로의 발탁등도 예상할 수 있으므로 혼신의 힘을 쏟았다는 것으로 관측된다.
1심판결에 대해 민씨측의 항소도 예상되지만, 법리적용이 잘못 되지 않을 경우 판결이 번복 되는 경우는 드물므로, 항소심을 맡는 변호사도 많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또 이번에 도덕성과 정의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한인사회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돼 있어 민씨와 이승렬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추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잘못을 단죄하지 않으면 반복되고 결국 공멸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민 2백년을 향해 달려가는 한인사회에 정의가 간절해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