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유권자들, 트럼프의‘경박스런 말투와 신경질적인 반응… 자질에 의구심’
‘힐러리가 던진 미끼… 덥석 문 트럼프의 패착’
미국에서 첫 TV 대선 토론전은 1960년 9월 30일이었다. 벌써 반세기 전이었다. 그날은 TV토론이 얼마나 대선에 영향력이 있는지 증명된 날이기도 했다. 올해 11월 8일 대선을 앞두고 약 1억 명이 시청한 힐러리 클린턴 대 도널드 트럼프 TV 1차 토론전(9월 26일)은 힐러리의 완승으로 끝났다. 앞으로 남은 두 차례의 토론은 10월 9일과 19일에 각각 열린다. ‘타운홀 미팅’ 스타일의 2차 토론 은 CNN 앵커 앤더슨 쿠퍼와 ABC방송 기자 마사 래대츠가 공동 진행하고, 3차 토론은 폭스뉴스 앵커 크리스 월러스가 이끈다. 지금까지 TV토론이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친 때가 2000년 당시가 최근 들어 가장 영향력이 컸다고 알려졌는데, 올해 TV 토론전도 만만치가 않게 보인다. 현재 두 후보 가 지지도에서 박빙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과거 어느 때보다도 TV토론의 중요성 이 커졌다.
성 진 (취재부 기자)
미국 유권자들은 실제로 TV토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NBC 뉴스가 16∼19일 등록 유권자 1천 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3차례의 TV토론이 지지 후보 결정에 매우 또는 꽤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34%로 집계됐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도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의 50%(부동층 10% 포함)가 TV토론이 지지 후보 결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첫 TV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박빙의 지지율이 한쪽으로 기울지 주목된다. 토론 직전까지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이 박빙을 보인 상태라서 토론에서의 승리가 두 후보에게는 절실했다. 이미 토론의 중요성을 유권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코리아타운에 거주하는 한인 유권자 K 씨(41, 교사)는 “TV토론에서 트럼프의 경박하고 교양 없는 자세가 후보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다른 미국 유권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클린턴 백악관 입성 유리한 고지 탈환
1차 TV토론 90분간의 ‘맞짱 토론’이 끝나자 미 언론과 여론은 대체로 트럼프보다 클린턴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 LA타임스는 3명의 분석가들을 동원해 이날 토론전이 클린턴의 완승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남은 2차례의 토론을 남기고 첫 번째 단추를 잘 끼운 클린턴으로선 백악관 입성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다.
충성심이 높은 지지자들의 변심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까닭에 토론을 통해 부동층의 마음을 얻는 것이 두 후보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두 후보가 맞붙은 TV토론이 30%에 달하는 부동층의 마음을 흔들며 대선 레이스의 향배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은 토론 전부터 많았다.
부동층도 토론의 승자로 클린턴의 손을 들어줬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민주당 분석가인 크리스 코피니스가 토론이 끝나고 클리블랜드의 부동층 28명을 조사한 결과 11명이 ‘클린턴 승리’에 표를 던졌다. 트럼프가 이겼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머지 17명은 어느 후보도 승리하지 못했다고 봤다.
토론에서 판정승한 클린턴은 부동층의 표심을 흡수하면서 트럼프와의 지지율 격차를 다시 벌릴 수 있을 기회를 잡았다. 현재 판세를 보면 두 사람은 현재 오차범위 내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클린턴이 근소하게 앞서는 형국이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6∼7% 포인트 앞선 결과도 나왔다
허핑턴 뉴스는 이번 1차 TV토론에 대해 아주 재밌게 평가했다.
최근 몇 주간 트럼프는 클린턴을 상대로 바짝 추격해 거의 동률을 만들었는데 이번 TV토론이 끝난 후 결과는 더 참담했다. 선거가 내일 열린다면 클린턴이 이길 것이고, 트럼프는 첫 토론에서 이러한 역학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번 토론에 앞서 트럼프는 백악관에 놀라울 정도로 가까워졌었는데 1차 TV토론 무대에 올라 클린턴이 바라던 대로 행동했다. 클린턴의 미끼를 꽉 물었던 것이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처럼 행동한 것이다.
트럼프의 이성 잃은 발언에 부동층 유권자 난색
유세 기간 내내 클린턴 측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TV토론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트럼프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신중하고 이성적이며 성숙한 사람, 백악관에 입성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로 등장할까 봐 우려해 왔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번 TV 토론 시청자가 최고 1억 명이다.
클린턴은 처음에는 긴장한 것으로 보였으나 곧 자연스러움을 되찾았다. 클린턴은 트럼프에게 계속 미끼를 던졌다. 대선 중의 논의에 대한 트럼프의 기여를 설명하는데 ‘미친 crazy’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트럼프가 사실은 자신의 주장만큼 부자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첫째, 그는 자기 말처럼 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주장만큼 자선을 베풀지 않을지도 모른다. 셋째, 우린 그의 사업 거래를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추적 보도를 통해 그가 월 스트리트와 외국 은행에 6억 5천만 달러를 빚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그는 미국인들, 오늘 밤 시청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자신이 연방 세금은 전혀 내지 않았다는 걸 모르길 원하나 보다.”
트럼프는 이 미끼를 물었다. 물지 않는 법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론은 인종 문제로 넘어갔다. 트럼프는 자신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에 의문을 가졌던 것이 사실 오바마를 도와준 것이었다고 변호했다. “오바마가 출생증명서를 제시하게 만든 건 나였다. 난 내가 잘 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의 말이었다.
클린턴의 반박은 가장 효과적인 순간들 중 하나였다. 클린턴은 트럼프가 부동산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대놓고 차별했다고 대중에게 일깨웠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모습 보여줬어야
외교 정책으로 넘어가자 트럼프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하느라 클린턴의 가장 큰 약점인 매 성향을 공격하지 못했다. “나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다.” 2002년에 녹음된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다는 발언 테이프는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토론이 남긴 인상은 무엇보다 ‘트럼프는 이 일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의 묘한 선거 유세는 엄청나게 낮은 기대치를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높은 기대치도 낳았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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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TV토론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미국 TV 대선 토론에서는 대통령 후보들의 아이디어와 공약뿐 아니라 그들의 실수도 볼 수 있다. 지난 26일 미국 뉴욕 헴스테드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1차 TV토론이 열리자 역대 토론에서 나온 실수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CNN은 대통령 후보들의 실수는 첫 TV토론을 시작한 이후 56년 동안 끊임없이 나왔다며 잊지 못할 실수들을 정리해 보도했다.
■1960년 존 F. 케네디 vs. 리처드 닉슨
1960년 9월 30일은 미국에서 첫 TV 대선 토론이 중계된 날이다. 이날은 TV토론이 얼마나 대선에 영향력이 있는지 증명된 날이기도 했다. 민주당 존 F. 케네디와 공화당 리처드 닉슨 간의 TV토론 대결은 라디오로 들을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방송을 시청한 6500만 명은 젊고 자신만만한 케네디와 달리 창백하고 어딘가 아파 보이는 닉슨을 신뢰할 수 없었다.
케네디가 “미국은 훌륭한 나라지만 더 훌륭해질 수 있다”라고 힘 있게 말하는 동안 닉슨은 면도조차 제대로 안 된 모습으로 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토론이 끝난 다음날 미국의 한 언론은 “닉슨의 메이크업 담당자가 TV토론을 방해한 것 아니냐”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낼 정도였다. 결국 케네디가 대통령이 됐고 이후 닉슨은 TV토론을 피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1976년 제럴드 포드 vs. 지미 카터
1976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제럴드 포드도 토론 실수로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에게 백악관 자리를 내줬다. 포드는 “동유럽에 (구) 소련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한다”며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는 독립적”이라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사실 관계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지적에 군 통수권자로서의 자격이 의심된다는 여론에 결국 대선에서 지고 말았다.
■1988년 조지 H.W. 부시 vs. 마이클 듀카키스
1988년 공화당 조지 H.W.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의 토론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나왔다. 매사추세츠주 주지사였던 듀카키스에게 사회자 버나드 쇼는 “당신의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앞서 사형제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듀카키스는 주저 없이 “사형제를 반대한다”라고 대답했지만 인간적인 대답을 원했던 시청자들은 그에게 실망했다. 아이스 맨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결국 듀카키스도 부시에게 대선에서 지고 말았다.
■1992년 조지 H.W.부시 vs. 빌 클린턴
1992년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의 발목을 잡은 것도 TV토론이었다. 방청객이 “국가 부채가 부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부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봤다. 부시는 “초조해 보인다”는 지적을 들으며 패배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당시 상황에 대해 부시는 “TV토론이 너무 싫어 토론이 끝나간다는 것에 기뻤다”라고 회상했다. 반면 클린턴은 당당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결국 승기를 잡게 됐다.
■2000년 조지 W.부시 vs. 앨 고어
TV토론에 나선 대선 후보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유권자들의 평가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00년 TV토론에 나선 민주당 후보 엘 고어는 자주 내쉰 한숨이 문제가 됐다. 고어가 한숨 쉬는 장면이 부시와 교차해 방송되면서 논란이 됐다. 고어가 “거만해 보인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TV토론 전 지지율에서 부시를 근소하게 앞서가던 고어는 결국 대선에서 패하고 말았다.
2007년 고어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토론 전체 내용은 사라지고 나에 대한 내용은 ‘한숨’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게 됐다”며 “무서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vs. 미트 롬니
연설의 달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TV토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CNN은 지적했다. 2012년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의 1차 TV토론에서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미트 롬니는 각종 이슈에 대해 조목조목 포인트를 짚어 가며 오바마를 공격했다. 반면 오바마는 문장을 쉴 새 없이 말하며 롬니에게 공격당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업 컨설턴트(롬니 후보)와 대학 교수(오바마 대통령)의 세미나 같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토론 후 CNN 자체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7%가 TV토론에서 롬니가 오바마를 이겼다고 답했다. 이후 2차 토론에서 오바마는 다시 승기를 잡았고 재선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