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붕괴 위기 초읽기
암살당할 가능성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10촌이며, 한때 총리를 한 강성산(사망)의 사위로 1994년에 탈북한 강명도 경기대 북한학 교수가 LA를 처음 방문해 안보 강연을 갖고 “통일을 위한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남북관계가 이슈가 될 때마다 여러 방송과 신문에 초청으로 시사 해설가로 알려지고 있는 강 교수는 지난달 28일 LA한인회 주관으로 한인회관에서 100여 명의 한인들에게 오늘의 북한 실상을 밝혀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2일 강 교수는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최근 접촉한 북한 고위층으로부터 김정은 암살 시도 현실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김정은을 암살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다만 현실적으로 그런 행동이 조직화한 형태로 나타나기보다는 ‘충동적인 암살(impulsive assassination)’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LA 한인회관에서의 강 교수의 강연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성 진 (취재부 기자)
나는 1994년 망명 당시 ‘즉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 후 20여 년을 지나면서 체험한 것은 북한 내부의 정권 반대 세력이 있지 않는 한 통일이 쉽게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점진적 통일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현재 3대 세습인 김정은은 전임 김일성, 김정일과는 다른 패턴으로 공포정치를 이어가 현재 김정은은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상태다.
특히 김정은이 집권 5년 동안에 북한 최고 권력층인 12명 정치국원 중 7명을 포함해 장성택 등 고위 직책 64명을 총살했다. 그리고 5년 동안에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에 해당)을 5명이나 교체하고, 총참모장을 6명이나 경질시켰다. 이런 사태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없었다.
또한 최근에는 비자금을 맡고 있는 30호실을 포함해 고위 측근들이 가족들과 함께 탈북을 하고 있으며, 이 중 외교관들만도 30여 명이 이미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6차 핵실험 강행 시 미 보복작전 가능성
여기에 김정은은 최근 5차 핵실험 등을 포함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어 체제 위협도 나타나 군부에서조차 ‘서로 믿을 수 없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며 김정은과 군부도 각자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만약 김정은이 6차 핵실험을 할 경우 미국의 보복공격은 ‘김정은 참수 작전’과 함께 필수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 북한에는 김정은을 추종하는 200여만의 기득권 세력들이 있다. 핵실험을 계속하는 것도 군부나 기득권 세력의 때문이다.
지금 김정은이 죽더라도 당장 통일이 될 수는 없다. 김정은이 살아 있는 한 핵폐기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붕괴된 후 집단지도체제가 출현하면 그때 가서 핵폐기는 가능하다.
지금이 바로 내가 탈북한 94년 그때처럼 돌아오고 있다. 그래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김정은에 대한 반감과 거부 세력이 자라고 있어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
22년 전 탈북 당시(1994년)와 지금의 상태가 유사하다. 북한은 90년대까지 소련 등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큰 혼란에 빠졌다. 동구권 국가들 지도자들은 소련 공산당 영향 아래서 그동안 완전한 독재를 하지 못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중 북한 김일성과 친교를 맺은 루마니아 독재자는 국민들에게 공개 처형되고 말았다.
이런 사실들은 북한의 주민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일성은 고위 간부들에게 동구권 몰락 뉴스 장면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체제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도 당한다’ 고 말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북한에서 집권 초기에 ‘만경대 혁명학원’을 만들어 소위 항일 빨치산 자녀들을 모아 만경대 혁명학원은 혁명유자녀들을 북한 최고의 엘리트로 양성하기 위해 중등교육 및 2년제 대학 수준의 정규 교육을 제공하는 혁명유자녀 교육기관으로,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중에 총리가 된 강성산, 연형묵 등을 배출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 자신만 의 측근들을 주위에 두게 되었다.
김일성은 80년대 이후부터 김정일에게 권력을 전이해왔는데,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면서 북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 좌파정권 10년이 북한 체제 존립시켜
한편 그동안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김일성은 대동강에서 물놀이하던 중 화력발전소 기둥에서 연기가 올라가지 않은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사실을 알아본 결과 김정일의 통치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어 다시 직접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90년 10월 당시 김정일에 의해 찬밥 신세가 된 강성산을 불러 연형묵을 후임으로 총리에 임명했다.
강성산은 당시 김일성에게 국제 정세를 보고하면서 새로운 개혁과 개방의 중요성을 보고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남북정상 회담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했다. 김일성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강행 업무를 했는데 7월 8일 급서 직전까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준비로 묘향산 초대소에 있었다.
평소 심장 질환이 있는 김일성이 묘향산으로 가는데 김정일은 심장 전문의도 수행시키지 않았고, 김일성 주위에는 김정일의 심복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김일성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김정일은 응급조치를 불사하고 헬기로 2시간에 걸쳐 김일성을 평양으로 데리고 오면서 사망을 확정 지었다. 이 바람에 ‘김일성 사망은 김정일이 연관됐다’라는 소문이 나돌았으며, 김정일은 3년 상을 치르면서 공식 집권을 미루기도 했다.
이후 김정일 집권 후 한국의 ‘좌파 10년 정권’의 원조로 북한은 기아에서 회생했다.
[강명도 교수는 경기 대학교 북한학 교수로 과거 북한에서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 전문 연구실장(대좌)과 주석궁 경리부 산하 합영회사 부사장을 지냈으며, 1994년 탈북하였다. 김일성의 외가인 칠골 강씨 가문 출신으로, 김일성의 10촌이다. 그리고 평양시당 책임비서와 북한의 정무원 총리를 지냈던 강성산의 사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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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북한 망명정부’ 설립 현실성 없어
LA를 방문한 강명도 교수는 최근 미국 내에 ‘북한 망명정부 설립계획’에 대해 “최근 미국 내 일부 탈북자 사회에서 논의되었다고 들었다”면서 “현재로는 여러 가지 정황상 실현이 가능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지난달 28일 LA 한인회관에서 안보강연회를 하기 전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북한 망명정부 설립은 과거 황장엽 선생 생존 당시 논의됐지만 현재는 환경이 많이 바뀌어 실현성이 적다”면서 “대한민국 헌법상에서도 ‘북한 망명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망명정부 설립은 북한 고위층의 탈북을 유도하고 북한 정권의 붕괴를 대비하자는 면에서 논의되어왔다”면서 “ 현재 한국 정부 측에서도 반대 입장이고 국내의 주요 탈북 인사들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강 교수는 “북한 망명정부는 설립되면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 등의 승인을 받아야 실제적인 망명정부가 될 수 있다”면서 “현재 남북관계나 국제정세로도 망명정부는 설립이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장엽 사후 지리멸렬해진 망명정부 설립
한편 미국 내 일부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이 국내 탈북 인사들과 연계해 내년 상반기 중에 워싱턴 DC서 수립하기로 결의 ‘북조선 자유민주정부’ 선포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계획은 최근 북한 고위층들의 탈북이 잇따르는 등 김정은 정권에 대한 내부 엘리트들의 반감이 커지는 가운데 북한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을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탈북자 단체에 관계하는 한 소식통이 전했다.
이들은 지난해 탈북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최고위급 탈북자로 알려진 인사를 망명정부 대표로 내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망명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경제적으로는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한다는 강령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다소 이질적인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이유는 중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 3조를 고려해 망명정부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북한 망명정부를 인정해준다면 이는 곧 북한을 외국으로 간주한다는 뜻이 돼 북한을 한반도에 포함하는 헌법 정신과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통일부 당국자는 "망명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주체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북한이 유엔에 가입돼 있는 이상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북한 망명정부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망명정부 설립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망명정부 설립은 전북 한 노동당 비서였던 고 황장엽 선생이 한국에 망명하면서 2000년대 초반 활발하게 논의됐으며 2005년경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망명정부의 수반으로 추대하려던 황 전 비서가 막판에 반대로 돌아섰다.
황 전 비서와 함께 탈북한 김덕홍 전 노동당 자료실 부실장 등 복수의 인사에 따르면 황 전 비서는 2001년 7월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재 망명한 뒤 북한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자신이 수반이 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북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는 황 전 비서의 망명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김 전 부실장은 “당시 신건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에 가면 암살당할 수 있다고 협박했고, 나중에 황 전 비서에게 주체사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소를 만들어주고 큰 자금도 주겠다고 회유했다”라고 밝혔다.
황 전 비서는 그 후 망명정부 설립을 논의하기 위해 찾아온 주요 인사들에게 “한국을 북한 민주화의 기지로 만들어야지, 망명정부는 불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최근 미국 내 북한 망명정부 설립은 황장엽 선생 같은 상징적 인사가 없는 상항에서 어떻게 추진될지 관심사다.
UN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절차 귀추 주목
한편 북한 인권 유린을 국제 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인권 유린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유엔총회 결의안이 확정됐다.
지난달 27일 유엔에 따르면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주도로 만든 북한 인권 결의안은 이날 유엔 총회 인권담당인 3 위원회에 상정됐으며, 유엔 전체 회원국에 회람돼 공동제안국 신청을 받는 절차에 들어갔다.
유엔총회 3 위원회는 오는 12월 중에 유엔 전 회원국이 참가한 가운데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는 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3 위원회에서 통과되면 사실상 결의안이 확정되는 것이며, 형식상으로는 12월 중에 열리는 본회의에서 최종 채택이 이뤄진다.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인권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는 것은 2005년 이후 12년째이며, 지난해까지는 한 번도 빠짐없이 채택됐다.
올해 결의안은 먼저 북한에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권 유린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강하게 비난했다. 결의안에는 고문, 강간,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감금, 강제노동, 비인간적인 환경에서의 억류, 비인간적인 대우 등을 인권 유린의 사례로 나열했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안보리)에 권고했다. 또 인권 유린의 최고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도록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북한 인권 상황의 ICC 회부와 책임자 처벌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은 2014년 이후 3년 연속 들어갔다.
특히 올해 결의안에는 작년까지는 없었던 ‘북한의 인권 유린이 리더십(leadership)이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기관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by institutions under the effective control of its leadership)는 표현이 명시됐다. 이는 북한 인권 유린의 최고 책임자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라는 사실을 못 박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올해 결의안은 김정은 위원장을 처벌해야 한다는 점을 더 명확히 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인권 유린의 최고 책임자’가 김정은 위원장을 지칭하느냐의 여부를 두고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었지만, 올해 결의안은 이런 혼선을 피하려고 김정은 위원장이 처벌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셈이다.
또 이번 결의안에는 외국에서 외화벌이하는 북한 노동자가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들의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담겼다.
아울러 북한의 잇따른 핵 및 미사일 실험이 북한의 인권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표현과 납북 외국인을 즉각 석방하라는 주장도 처음으로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