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새미 리 박사 추모행사 USC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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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코리안 정신’을 미국 사회에 전하다

새미리박사한국인에게는 “이민 영웅”, 미국인에게 “스포츠 영웅”인 새미 리 박사 추모 행사가 지난 14일 USC대학에서 많은 역대 올림픽 스타들과 USC 니키아스 총장 그리고 그의 중고교, 대학 모교 동문들을 포함해 각계 인사 약 4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USC 캠퍼스 내 ‘타운 엔 가운 볼룸’에서 거행된 추모행사는 ‘새미 리 박사의 삶을 기리며’(Celebration of Sammy Lee, 1920-2016)라는 주제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날 생전의 새미 리 박사의 유머스러운 삶을 회상하듯 시종일관 웃음꽃을 피우며 참석자들이 새미 리 박사의 96년의 풍요한 삶을 추모했다. 특히 이 자리에 올려진 추모사에서 “새미 리 박사는 ‘모국인 코리아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떠나간 위대한 코리안 아메리칸’이었다”라고 헌정했다. 이날의 추모식을 통해 새미 리 박사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의 삶은 ‘자랑스런 한국인’ 임을 미국 사회와 전 세계에 알린 위대한 영웅으로 기리기리 기억할 업적으로 남겨 놓았다. 고 새미 리 박사는 지난해 12월 2일 9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이날 오후 2시 추모 행사가 열린 USC 캠퍼스 내 타운 앤 가운(Town & Gown) 볼룸에는 생전의 새미 리 박사의 자랑스런 모습들이 영상으로 비추는 가운데, 미국 내에서 생존한 올림픽 영웅들을 포함 해 스포츠계, 학계, 정치계, 의학계, 사회 문화계 등과 한인사회에서 추모객들이 운집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USC 출신이며, 미국 역대 올림픽 선수단의 최고 스타의 한 사람인 존 네이버(John Naber) 수영 챔피언은 “새미 리의 위대한 삶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그는 96년의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인생의 가치 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실천한 위대한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4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며 현재 미국 올림픽 선수 동문회 회장(President/US Olympic Alumni Association)인 존 네이버 챔피언은 이날 10분간의 새미 리 헌정사를 통해 새미 리 박사의 업적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특히 “새미 리 박사는 아버지 이순기 씨로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을 훌륭하게 이어받으며, 미국 사회에서 온갖 차별을 이겨낸 진정한 코리안 아메리칸 영웅”이라고 추모했다.

이날 처음 추모사를 한 맥스 니키아스 USC 총장( Dr. C.L. Max Nikias, President/USC)은 “우리 USC의 전설이며, 자랑인 새미 리 박사는 바로 1932년 LA올림픽 대회 당시 12세 어린이로서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키웠다”면서 “약 1세기의 걸친 그의 삶은 스포츠 선수, 의사, 시민운동가로서 우리 사회에 공헌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그리고 니키아스 총장은 “새미 리 박사는 이제 우리 USC의 위대한 전설이 되었고 영원한 트로잔 (Trojan *USC스포츠 대명사)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USC 총장을 포함한 7명의 각계 인사들의 추모사와, 아들 새미 리 주니어, 딸 파멜라 그리고 3명의 손자들도 추모사를 통해 한결같이 ‘새미 리 박사는 자랑스런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아 미국 사회에서 온갖 차별을 이겨내고 인간의 가치를 보여준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새미리박사 추모식

▲ 미국 내에서 생존한 올림픽 영웅들을 포함 해 스포츠계, 학계, 정치계, 의학계, 사회 문화계 등과 한인사회에서 추모객들이 운집한 추모행사장 모습.

특히 이날 한인사회를 대표하여 추모사를 한 정 김(Jung Kim, 새미 리 박사로부터 마지막 다이빙 훈련받은 제자)씨는 “새미 리 박사는 키는 작았지만, 내가 만난 가장 유머스런 분이었고, 나에게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을 불어넣어주었고, 특히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준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영어로 짧게 추모사를 한 다음, “오늘 유족 측으로부터 한국어로 추모사를 하도록 요청을 받았다” 면서 “이 자리를 통해 새미 리 박사의 이름으로 초등학교와 ‘새미 리 박사 광장’을 코리아 타운에 설립하는데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이끌어준 LA 한인 동포사회에 깊이 감사한다”고 했으며, 2018년 한국의 동계 올림픽대회 개최를 위해 홍보대사를 맡았던 새미 리 박사의 유업을 따라 기필코 성공적인 대회를 치르겠다는 평창 올림픽조직위원회의 성명서도 전했다.

평창 올림픽조직위원회 측은 추모 전문에서 ‘새미 리 박사가 아니었다면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는 결코 이뤄질 수 없었다’고 밝혔다.

‘평창 올림픽 탄생 도와…’

이날 유족을 대표해 아들 새미 리 주니어(전 베버리 힐스 경찰)는 “오늘의 추모식을 준비해준 USC와 올림픽 챔피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으며, “아버지는 우리 자손들에게 항상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회상했다.

이날 추모식이 끝난 후 추모객들은 가든에서 친교 모임을 통해 USC 측이 준비한 각가지 초콜릿을 들면서 새미 리 박사와의 인연들을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현재 USC 측에서 추진하고 있는 ‘새미 리 박사 다이빙 타워’(In Memory of Dr. Sammy Lee Diving Tower)도 돌아보았다.

새미리박사 추모식2

▲ 생전의 새미 리 박사의 자랑스런 모습 영상

이날 USC 측이 리셉션 손님용으로 다양한 초콜릿을 대접한 것은 생전에 새미 리 박사가 가장 애용 한 과자류가 초콜릿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날 주최 측은 추모식장에 대형 스크린과 4개 대형 TV를 설치해 생전의 새미 리 박사의 모습 등을 비추었다. 이중에는 새미 리 박사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한국을 방문해 당시 신생 건국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만나는 장면을 포함해, 한국의 다이빙 선수를 지도하는 모습 그리고 한국 전쟁 중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모습들과 LA 코리아타운 ‘새미 리 광장’과 ‘새미 리 초등학교’ 모습도 비치었다.

이날 대표 추모사를 한 USC니키아스 총장은 추모사를 준비하면서 새미 리 박사가 평소 ‘Korean American’ 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USC 한국 전통 도사관에서 새미 리 박사에 대한 참고자료를 살펴보았다는 후임담도 전해졌다.

새미 리 박사의 부인 로즈 여사와 아들 새미 리 주니어는 이날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동안 LA 한인사회에서 보내준 사랑을 잊지 못한다”며 한인동포들에게 전해 주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로즈 여사와 아들 새미 리 주니어는 이날 참석한 최용순 홍익민화연구소 원장과 수잔 양 채프먼대학교수, 조이 김 USC 한국 전통 도서관장 등과 만나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추모식에 참석해 주었음에 감사를 표했다.

추모식의 한인들

▲ 추모식에서 한인들이 새미 리 부인 로즈 여사를 위로하고 있다. 왼쪽부터 수잔 양 박사, 최용순 원장, 로즈 여사, 조이 김 USC 한국 전통 도서관장.

한편 이날 추모식에는 한인사회에서 미셀 스틸 OC슈퍼바이저 부부, 영 김 전 주하원 의원 부부, 데이빗 류 LA시의원, 류상민 LA부총영사, 조이 김 USC 한국 도서관장, 최용순 홍익민화연구소 원장, 수잔 양 채프먼대학교수, 제임스 류 코레암저널(KoreAm Journal) 발행인 등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한인 이민사의 영웅인 새미 리 박사의 추모식에 미국 주류사회의 참석 열기와는 달리 이날 LA 한인사회의 참석은 매우 저조했다. 이날 추모식은 바로 ‘미주 한인의 날(1월 13일)’ 다음 날임에도 한인사회 많은 단체들과 인사들은 공식적으로 열린 이날의 새미 리 박사 추모식을 외면했다.

로라 전 LA 한인회장은 이날 독감으로 참석을 못했으나, 한인회 인사를 통해 유족 측에게 “LA 한인 사회는 생전의 새미 리 박사가 보여준 ‘한국인의 정체성’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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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에 새미 리 박사의 역사는 계속된다

‘새미 리 광장’과 ‘새미 리 초등학교’

새미리 학교

▲ 코리아타운에 있는 새미 리 학교

코리아타운 인근 1가와 웨스트모어랜드에는 지난 2013년 8월 13일 ‘새미 리 초등학교’가 개교했다. 새미 리 초등학교는 남가주 공립학교 중 한인 이름을 단 세 번째 학교다.

공식 이름은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Dr. Sammy Lee Medical and Health Science Elementary Magnet School)이다. 이 학교는 ‘찰스 H. 김 초등학교’, ‘김영옥 중학교’에 이어 남가주에서 한인 이름을 딴 세 번째 공립학교다.

‘새미 리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 당시 부임한 한국계 헬렌 김 교장은 “역사적인 날인만큼 긴장되고 설렜다. 오늘 등교한 460명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의사이자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 리스트, 미주 한인 영웅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은 단 특별한 학교인 만큼 학생들에게 특별하고, 건강한, 다채로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LA 통합교육구(LAUSD) 교육위원회는 2013년 5월 14일 1가와 웨스트모어랜드에 신축 개교 예정인 초등학교 이름을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로 명명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당시 모니카 가르시아 LAUSD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새미 리 박사는 한인 커뮤니티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웅”이라며 “앞으로 LA의 모든 커뮤니티와 미래의 기둥들인 학생들이 그의 업적을 배우고 기리게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날 표결을 앞두고 LA 한인 커뮤니티가 준비해 간 팜플렛을 통해 새미 리 박사의 생을 읽은 LA 통합교육구(LAUSD) 교육위원회 위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1920년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새미 리 박사가 심한 인종차별을 이겨 내고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출전해 다이빙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스토리에 박수를 보냈다.

새미리와 매리손

▲ 새미 리와 매리 손의 생전 모습.

당시 표결 직후 단 위에서 내려와 한인 참석자들을 일일이 포옹한 마거릿 라모트 교육위원은 “이렇게 훌륭한 영웅을 알게 돼 기쁘다”며 “이런 영웅이 있는 한인 커뮤니티가 부럽고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특히 당시 민병수 변호사를 포함 한인들이 새미 리 박사를 교명으로 추천한 건 LA 뿐만 아니라 미국 내 한인 사회에 한인 영웅을 알리기 위해서다. 인종차별을 딛고 올림픽에 두 번이나 참가해 금메달을 따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더 늦기 전에 알려야 한다는 민 변호사의 사명감도 있었다.

민 변호사는 “지금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옛날 미국 사회를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결혼하고 싶어도, 공부하고 싶어도, 집을 사고 싶어도 피부색 때문에 할 수 없는 그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60~70년대 이민생활을 들려줬다.

또 민 변호사는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없던 그 시절에 차별을 딛고 승리하고 목표를 이룬 새미 리 박사의 인생을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김영옥 대령처럼 돌아가시고 난 후 영웅으로 추대하는 것보다 우리 옆에 계실 때 그의 업적을 알리는 것이 한인사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생존했던 새미 리 박사(93)는 ‘새미 리 초등학교 명명안’이 통과되자 아버지(이순기 작고)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한인으로서 뿌리를 잊지 말고 노력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에 다이빙 연습도, 의대 공부도 치열하게 했다.

어려운 순간을 격려해주고 이끌어준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새미 리 박사는 “한인사회가 이제 내게 새로운 꿈을 줬다. 이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겠다”며 활짝 웃었다.

한편 코리아타운 내 올림픽 가와 노먼디 가가 만나는 교차로 지역은 지난 2010년 8월 5일 LA시 의회가 명명한 `새미 리 광장(Sammy Lee Square)’이다. 당시 새미 리 박사는 90세로 이날을 큰 기쁨으로 맞이했다.

`새미 리 광장’ 지역은 한국 전통 정자인 `다울정’이 이미 들어서 있고 `한인타운 노인 및 커뮤니티 센터’ 도 있어 한인타운을 상징하는 장소로 꼽힌다.

한편 새미 리 박사의 누이인 메리 리 손(2010년 94세로 작고) 여사도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한인 여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USC에 입학해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매리 손 여사는 졸업 후에는 캘리포니아 최초의 한인 소셜워커로 활동했는데, LAUSD는 손 여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1년 윌튼 초등학교의 건물을 ‘메리 리 손 교육센터’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진정 새미 리 박사 집안은 ‘자랑스런 한인 가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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