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러짜리를 2400달러라며 수출단가를 무려 3백배나 뻥튀기해 대출’
수출입대금 부풀려 수출채권 판매
재미교포 박홍석 ‘기상천외한 사기행각’ 전모
8달러짜리를 2400달러라며 수출단가를 무려 3백배나 뻥튀기해 시중은행에서 무려 3조4천억원의 불법대출을 받은 희대의 사기사건인 모뉴엘사건의 피해자인 한국수출입은행이 수입업자인 미국업체 아시컴퓨터를 상대로 미국 연방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디스커버리가 진행되면서 감춰졌던 진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 중인 주범 박홍석은 범죄수익을 미국으로 빼돌려 처제이름으로 집을 샀고 처제는 사건이 터지자 즉각 이 집을 팔아치운 것은 물론 자기 집까지 매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사건 피고인 아시의 사장, 부사장등 고위임원 4명은 각각 자신들이 대만, 홍콩 등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박씨로부터 850만달러에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받았고, 박씨는 자신과 공모한 직원들에게도 각각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한 것은 물론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거액을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심에서 징역 23년형을 선고받은 박씨는 2심에서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2심판결이 확정했으나, 2심 재판부는 박씨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기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며 형을 줄여준 것으로 드러나 봐주기 판결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원피고 양측이 지난달 미국연방법원에 한국판결문과 수사기록 등을 비롯한 관련증거를 제출함으로써 밝혀진 것이다. 하마터면 그들만 알고, 우리는 모를 뻔한 그들만의 비밀을 낱낱이 밝힌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모뉴엘사건의 주범 박홍석, 1962년생인 박씨는 지난 2007년 8월 로봇청소기회사를 인수해 모뉴엘로 이름을 바꾼 뒤 그해 10월부터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인 2014년 9월말까지 수출입대금을 부풀려 수출채권을 판매하는 방법으로 사기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가 10개의 시중은행으로 부터 받아낸 불법대출액은 무려 3조4천억원에 달한다. 한국법원 판결문은 박씨가 2007년 8월에 인수한 뒤 그해 10월부터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고 명시 함 으로써 인수와 동시에 기업경영이 아니라 사기에 나선 것이며, 사기를 치려고 작정한 뒤 기업을 인수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은행이 받지 못한 돈이 5400억원, 지금 한국은 수출채권 보증을 선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시중은행의 소송이 한창이며 소송결과에 따라 은행주가가 요동치는 듯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주범 박홍석의 전방위 금융권 로비 드러나
박씨는 2014년 10월 20일 모뉴엘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서울세관은 박씨를 관세법위반 등 10개에 가까운 혐의로 검찰에 고발, 결국 구속수사를 받은 뒤 기소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5년 10월 16일 박씨에게 징역 23년, 추징금 361억원을 선고했고 2심재판부는 지난해 5월 17일 징역 15년, 추징금357억원로 대폭 감형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20일, 2심판결을 확정했다.
판결요지만 간단히 보도됐던 이 사건은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 3월 25일 캘리포니아중부연방법원에 모뉴얼 제품의 수입업체인 ‘아시컴퓨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 최근 본격적으로 디스커버리가 진행되면서 양측은 한국판결문을 앞 다퉈 제출하고 있다.
‘아시컴퓨터’측은 지난 1월 24일 이 사건 1심판결문등을, 수출입은행측은 그로부터 1주일 뒤인 지난달 1일 2심판결문등을 각각 제출했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이 사건의 단초가 됐으며, 한국법원이 증거로 채택했던 서울세관의 조사보고서와 관련자료 일체를 제출했다.
서울세관 조사보고서는 지난 2014년 10월 23일과 11월 3일자로 서울세관 특수조사과가 작성한 것으로, 박씨 등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제출됐던 것이며 그 존재는 알려졌지만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조사보고서 33페이지에는 박씨가 2011년 3월 30일 자신이 홍콩에 세운 피케이패러다임스홀딩스리미티드의 은행계좌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처제 안제니퍼씨에게 50만달러를 송금, 처제명의로 집을 샀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2012년 5월8일부터 2014년 2월 10일까지 이 주택의 관리비등으로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같은 경로로 30만405달러를 송금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조사보고서는 박씨의 처제 이름과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지역이라고만 돼 있을 뿐 부동산의 주소가 명시돼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본보가 어바인이 속한 오렌지카운티의 등기소에 안제니퍼 명의의 부동산 매매내역을 조회한 결과 2011년 5월 5일자로 부동산매입등기를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수출입은행, 연방법원에 美 수입업체 소송
이를 토대로 계약서등을 확인한 결과 박씨가 처제명의로 차명 매입한 미국부동산의 주소는 ‘8153 스칼라십, 어바인’ 이라는 아파트의 1207호였다. 계약서에 매입가격은 기록돼 있지 않으나 양도세가 1100달러이므로 1백만달러에 매입했음이 확실시된다.
처제 단독명의로 매입했으나 캘리포니아주는 결혼했을 경우 자동적으로 부부공동명의가 되므로, 매입등기와 같은 날 남편 알버트 김씨가 자신의 지분을 아내에게 양도하는 계약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박씨의 처제 안씨는 모뉴엘사기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즉각 이 부동산 처분에 나서 2014년 12월 18일 이 부동산을 매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매도계약서에 매매가격과 양도세가 기록돼 있지 않지만 부동산이 상승세임을 감안하면 최소 1백만달러이상으로 추정된다. 단 한 푼이라도 추징되는 것은 막기 위해 박씨측이 즉각 부동산을 팔아치워 버린 것이다.
이뿐 아니다. 박씨의 처제 안씨는 같은 지역인 캘리포니아 어바인지역의 ‘100 블레이즈, 어바인’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이마저 팔아치운 것으로 확인됐다. 안씨는 남편인 알버트 김씨와 지난 2010년 2월 3일 이 주택을 매입했으나 지난해 7월 15일 이 주택을 85만달러에 매도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아시컴퓨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지난해 3월 25일임을 감안하면, 모뉴엘사건이 미국법원으로 번지자, 즉각 자신의 집을 매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박씨가 처제를 동원해 차명매입한 부동산외에도, 처제에게 맡긴 재산이 더 있을 수 있음을 시시하는 대목이다. 처제가 직장을 옮겼다면 직장 때문에 주택을 처분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씨는 지금도 예전처럼 어바인지역의 방과후학원인 재능교육센터, 즉 JEI LEARNING CENTER 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안씨가 모뉴엘사건 미국소송이 제기되자마자 집을 팔아치운 것은 박씨의 범죄소득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영주권자 박홍석 대출받아 카지노도박 거액탕진
특히 서울세관 조사보고서는 박씨가 미국 영주권자로서 카지노를 출입하면서 탕진한 돈이 40억원, 카페 등을 차리고 엔터테인먼트사업에 쓴 돈이 39억원, 제주도에 리조트 등을 구입하고 주식을 매입한 비용이 37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박씨가 아내 박진희씨 명의로 차린 카페의 이름은 ‘KULISOO’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박씨가 2012년 이전에 해외로 빼돌린 뒤 국내로 들여온 돈이 230억원, 배당금이 56억원, 모뉴얼에서 빌린 돈이 64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수사에서도 확인됐고 1심판결문에도 명시돼 있다.
수사결과 40억원이 카지노로 들어가 사라졌고, 박씨본인도 15억원가량을 도박으로 탕진했다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또 박씨가 해외로 빼돌렸다 국내에 반입하거나 모뉴엘에서 빌린 뒤 갚지 않은 돈, 모뉴엘에서 배당받은 돈 수백억원은 PC카페 운영자금, 엔터테인먼트사업, 거름회사 등에 대한 투자, 개인에게 부과된 세금납부, 생활비, 커미션, 뇌물, 로비자금으로 사용됐다고 적고 있다. 사기로 벌어들인 범죄수익금을 그야말로 흥청망청 탕진한 것이다.
박씨는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이를 뻔히 알고 있는 직원들을 입을 막아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지급한 돈도 만만치 않다. 박씨는 신철욱 모뉴엘부사장에게 1억5백만원, 임명회씨에게 3억원, 강경식 재무이사에게 1억5천만원, 조현오 전 재무담당 상무에게 2억3천만원, 재무팀 직원 박시영씨에게 2억천만원, 최영권씨에게 9500만원, 최봄이 재무팀직원에게 2900만원, 강성훈씨에게 2500만원, 최창일씨에게 1500만원, 계열사인 잘만텍사장 심정보씨에게 3억원등 15억원을 지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임금이외의 보상에 해당되는 돈이다. 재미난 것은 1억 이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재무관련 임원이나 직원이라는 것이다. 특히 임원이 아니면서도 2억천만원을 받은 박시영씨는 해외페이퍼컴퍼니 재무업무를 담당했다고 재판부는 밝히고 있다. 비밀을 많이 알수록 큰 돈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박씨가 자신의 완전범죄를 위해 돈을 뿌린 곳은 직원뿐만이 아니었다. 거래선, 즉 8달러짜리를 2400달러짜리로 위조해 주는 수입업체에도 큰 돈을 뿌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수출입은행이 5200만달러어치 수출채권을 사주고 4천만달러를 받지 못한 수입업체가 아시컴퓨터이며, 이 아시컴퓨터가 주요로비대상이었다.
유령회사 만들어 美수입업체 임원에 6백만불 킥백
아시컴퓨터가 수출주문장을 내줘야 박씨는 이를 근거로 국내은행에서 사기를 칠 수 있기 때문에 아시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며 아시는 정상적인 회사인지를 의심할 정도로 사장을 비롯해, 주요임직원이 빠짐없이 뒷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의 임직원들은 대부분 자산의 개인계좌로 뒷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미국이 아닌 제3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했다. 아시컴퓨터가 상습범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킥백수수에는 프로페셔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리스틴 량은 아시컴퓨터의 사장으로, 대만에 개설한 버윅리소스리미티드의 차이나트러스트상업은행계좌에 7회에 걸쳐 571만여달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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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출입은행 – 아시컴퓨터, 디스커버리싸고 혈투
[美 연방법원] 내부자 공모 없이는 불가능한 사건
박씨 소유의 홍콩 페이퍼컴퍼니인 피케이패러다임스홀딩스와 아메렉스의 입출금 내역을 조사한 결과 밝혀진 것이다. 아시의 최고재무책임자인 빌첸은 홍콩에 설립된 월드와이드를 통해 2회에 걸쳐 37만2천달러를, 구매담당부사장인 헨리 첸은 홍콩에 설립된 THC를 통해 대만의 타이페이 푸본상업은행계좌로 7회에 걸쳐 115만달러가 송금됐다. 아시컴퓨터의 또 다른 구매담당자 프란세스 초도 2013년 6월 27일 50만달러와 커미션 1만8120달러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또 다른 중국 수입업자인 CNBM의 기술담당부사장 카오 진에게도 6회에 걸쳐 110만달러, 메리 예에게도 51만2천달러등 수입업자에게 지급한 킥백이 모두 25회, 850만달러에 달했다.
본보가 캘리포니아주 국무부에서 법인내역을 확인한 결과 아시컴퓨터 관련회사는 모두 3개사로 모회사격인 아시컴퓨터 테크놀러지는 2001년 3월 1일에, 아시컴퓨터 캐나다는 2003년 12월 16일, 아시컴퓨터멕시코는 2007년 6월 14일 각각 설립등기를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3개외사 모두 크리스틴 량과 친인척으로 추정되는 마르셀 량등 2명이 번갈아 가며 CEO와 CFO를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세관, 박씨 해외 빼돌린 돈 446억 은닉 리포트
서울세관 조사보고서는 박씨가 137회에 걸친 송금 등을 통해 446억원 상당을 해외로 은닉했다고 밝혔고 1심 재판부는 이중 약 361억원을 해외은닉재산으로 인정했다.
특히 서울세관은 박씨 등 모뉴엘측이 아시측 인사들에게 킥백지급과 관련해 주고받은 이메일, 송금을 했다고 통보하는 이메일등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아시측은 모뉴엘측 페이퍼컴퍼니의 입출금내역과 이메일 등 움직일 수 없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사건건 디스커버리를 방해하며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한국수출입은행은 홍콩 내 2개 은행, 즉 박씨가 페이퍼컴퍼니인 피케이패러다임스와 아메렉스의 계좌를 개설했던 홍콩상하이뱅크와 크리스틴 량 아시사장의 페이퍼컴퍼니인 버위리소스의 계좌가 개설된 차이나트러스트상업은행에 대해 디스커버리를 추진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달 1일 캘리포니아중부연방법원 재판부에 이들 2개 해외은행에 대한 디스커버리 승인을 요청하자 아시컴퓨터 측은 보름 뒤인 지난달 16일 이에 대한 반대 입장 을 밝혔다. 아시컴퓨터측은 ‘수출입은행의 해외증거조사 요청을 기각하고 60일내에 서울세관 조사보고서를 작성한 3명, 즉 특수조사과 직원인 이정희, 윤희만, 양창석, 추재용 등의 데포지션을 실시토록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2일 또 다시 자료를 보충, 홍콩소재 2개은행에 대한 디스커버리를 요청했고, 지난 9일 연방법원이 이를 승인했다.
캘리포니아중부연방법원은 지난 9일 ‘한국수출입은행의 홍콩은행들에 대한 디스커버리를 허용하며,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2014년 11월 3일자 서울세관 조사보고서 서명자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이같은 명령을 내린 다음날인 지난 10일 즉각 홍콩고등법원에 사법공조를 요청했다. 진 로젠블루스연방판사는 지난 1970년 체결된 민사 및 상법문제와 관련한 해외증거확보를 위한 헤이그컨벤션에 따라 국제사법공조를 요청한다며 홍콩상하이뱅크와 차이나트러스트상업 은행에 대한 디스커버리에 실시, 해당문서를 제출받아 보내달라고 밝혔다. 연방민사소송 절차법에 규정된 5개의 디스커버리 방법 중 문서제출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디스커버리 요청서에는 내년 4월 24일 이 사건 재판이 열리므로 늦어도 이를 검토한 뒤 6월 1일 이전에 해당은행에 전달, 재판에 차질이 없도록 해달라고 명시돼 있다.
연방법원 디스커버리 요청서에 유령회사 계좌 포함
연방법원은 이 요청서에서 박씨가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인 피케이패러다임스, 아메렉스등의 계좌번호는 물론 박씨의 에이전트인 제프 김이 관리하는 폴라리스미디아 계좌번호, 아시사장 크리스틴 량, 헨리 첸, 빌 첸등이 킥백을 받았던 페이퍼컴퍼니의 계좌번호를 전부 명시했다. 또 이 디스커버리요청서에는 서울세관 조사보고서등에는 킥백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르셀 량에 대한 자료도 포함됐다.
본보조사결과 크리스틴 량과 번갈아 가며 아시컴퓨터의 CEO를 맡은 인물이다. 이들 2개 은행에 대해 이들 계좌의 개설신청서등은 물론 2011년 1월3일부터 2014년 11월 30일까지의 관련계좌 입출금내역 전체를 요청한 것이다. 연방법원은 미국소송에만 사용될 정보라며 가능한 한 정보제공문서의 범위를 매우 상세하게 특정한 것이 눈에 뛴다. 소송에 필요한 서류만 요구한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이 한국재판을 통해 박씨로 부터 입수한 페이퍼컴퍼니의 입출금내역을 입수해 제출했지만 아시가 계속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관련은행 보관서류 입수를 추진했고 마침내 그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소송을 통해 한국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2심 판결이다. 앞서 언급했듯 2심에서는 박씨에 대한 형량이 23년에서 15년으로 거의 3분의 1이나 감형됐다. 그러나 영문으로 번역된 2심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감형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져 만약 한국에서 판결문 전문이 공개됐었다면 봐주기 논란이 일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심판결문에서 박씨에 대한 양형이유에서 유리한 요인, 즉 감경요인으로 ‘박씨가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위해서 사기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적고 있다. 영문으로 번역된 판결이기 때문에 한글 판결문과 100% 같은 문구는 아니지만 요지는 틀리지 않는다. 처벌을 줄이는데 유리한 요인이라며 첫 번째 요인으로 전과가 없다고 적은 뒤 바로 그 다음에 이 같은 요인을 적고 있다. 2심재판부는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했던 것이 아니라 2007년말 초기융자를 갚으려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사기대출을 시작하게 됐으며, 금융위기와 매출저조등의 어려움을 겪어서 사기를 저질렀다는 주장했다. 기존대출을 갚기 위해 사기를 쳐서 그 대출을 갚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물론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박씨가 자진해서 귀국, 검찰수사에 협조한 점 등도 유리한 양형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박씨가 로봇청소기회사를 인수한 것은 2007년 8월이며 사기대출을 시도한 것은 2007년 10월 2일부터라는 것이 판결문내용이다. 2심은 2007년 말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사기대출을 받은 기간은 정확히 2007년 10월 2일부터 2014년9월 29일까지이다.
2심, 사기죄질 극명한데도 불구하고 ‘사기 아니다’ 감형
그렇다면 박씨는 회사를 인수한지 길어야 2개월, 짧게는 1개월 뒤부터 사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심재판부는 박씨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기를 치려한 것이 아니고 회사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좋게 보면 너무나 관대한 것이고 나쁘게 본다면 봐주기 판결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형사부로 전대엽, 민정석, 홍기만 판사 등 3인으로 구성돼 있었고 당시 박씨의 변호인은 KCL로펌의 김태완, 박종민, 김주연, 최종길, 그리고 주상철, 김석주변호사로 확인됐다.
2심에서 추징금도 361억원에서 357억원으로 줄었지만, 2심재판부는 이에 대해 판결문 말미에 4억1500만원 상당이 줄어든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기 때문에 추징금 부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사인수 2개월도 안 돼 사기대출을 받은 사람에게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는 이유로 23년 형을 15년형으로 줄인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문제다. 3심인 대법원도 2심판결을 그대로 인용했지만 감경이유는 석연치가 않다.
비록 하급심이지만 1심판결문을 보면 1심 재판부도 이미 박씨의 자수와 뇌물공여사실실토 등을 감경요소로 감안했다고 기재돼 있다. 다른 부분의 박씨의 사기의도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부분이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모뉴엘을 인수한 직후부터 대출사기가 개시됐다. 모뉴엘은 사기대출로 성장했고 항상 진성매출보다 가성매출이 10배가까이 많았다’고 밝히고 ‘카지노등 개인적으로 착복된 금액도 매우크다’고 명시했다. 특히 ‘10개은행 사기대출액이 3조4천억원이 넘는등 범행결과면에서 그 죄책이 유래없이 크고, 치밀함, 적극성, 계획성, 조직성 등에 비춰보면 범행수단면에서도 죄질이 극히 나쁘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수조원 사기대출, 수백억 편취범에 감형
이처럼 1심과 2심의 감경이유는 단 하나, 사기의 목적에 개인적 이익추구가 있느냐 없느냐 였다. 1심은 너무 치밀하고 반복적이며 개인적 착복도 크다고 본 반면, 2심은 개인적 이익추구를 위해 사기가 시작된게 아니므로 감형한 것이다. 물론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며 3심까지 거쳐 확정된 판결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조원의 사기대출을 받고 수백억원의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사기성이 없었다며 형량을 3분의 1이나 줄인 것을 쉽게 받아들일 국민은 얼마나 될까? 2심재판부의 감형이유는 위인설관격이다. 차라리 ‘그 사람 나이를 보니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23년은 과하다’고 하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치부역자에 대한 숙청반대여론이 일자 카뮈가 일갈한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배태된 시대적 상황과 모뉴엘사건을 그대로 대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뮈의 말처럼 범죄에 대한 적당한 타협은 제2, 제3의 모뉴엘사건을 잉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