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 기자의 10.26 사태 美 비밀해제 문건 발굴…류병현은 왜 김재규 아닌 차지철이라고 지목했을까?

이 뉴스를 공유하기

‘박정희 시해  차지철이 했다’

부제

1979년 10월 26일 발생한 박정희 전대통령시해사건과 관련, 류병현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사진)은 사건직후 미국 측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아닌 차지철 경호실장이 박대통령을 사살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군 고위 장성이 본국에 보고한 비밀전문은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사살했다는 한국정부 발표와 함께 류장군은 차지철 경호실장이 사살했다고 말한 사실을 기록, 사건초기 차지철의 범행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류장군은 위컴 주한미군사령관과의 면담에서 김재규 중정부장이 능력부족으로 대령급정도의 그릇이었 지만 박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승승장구했다며 평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2건의 문서는 모두 국방부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주한미군 상층부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차지철지난해 가을 비밀 해제된 1979년 10월 27일자 ‘한국상황과 미래 – 미국전력’이란 제목의 비밀전문은 주한미군 고위장성 피크니장군의 보고내용을 담고 있다. 10월 27일이면 10.26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날이다. 피크니장군은 이 보고서에서 ‘10월 26일 오후 6시, 박정희 전대통령,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비서실장이 만찬을 위해 중정이 운영하는 가옥에 모였고 만찬 중 김재규와 차지철이 시국문제로 다퉜다’고 적고 있다.

또 ‘박대통령이 두 사람의 말다툼을 멈추게 하려 했으나 김재규가 총을 뽑아 차지철에게 쏘았고, 결국 박대통령과 차지철 두 사람모두 총에 맞았다. 김계원은 대통령차량에 박대통령을 싣고 병원으로 갔고, 후송도중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까지는 10.26시해사건의 진실과 일치한다.
그러나 피크니장군은 바로 아래문장에 전혀 색다른 사실을 적고 있다. 류병현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주장을 기록한 것이다.

류병현 발언으로 한동안 미국정부 혼선

피크니장군은 ‘류병현 부사령관이 미국대사관에, 김재규가 아니라 차지철이 대통령에게 총을 쐈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대사는 중앙정보부와 경호실의 알력으로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피크니장군은 정부의 공식발표내용을 적어면서도 바로 그 아래에 범인이 김재규가 아니라 차지철이라는 류장군의 발언을 명시함으로써, 미국은 한동안 차지철이 범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류병현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류병현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피크니장군은 이처럼 박정희 시해사건의 범인이 김재규라는 내용과 차지철이라는 내용을 차례로 적은 뒤 한국의 향후 정세를 전망했다. 이 전문은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전문가 스타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이 광범위하게 인식돼 있다’고 평가했고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에너지가 넘치고 정직하고, 추진감이 있고 결단력이 강해 대령급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으나 많은 장군들은 회의적으로 평가한가’고 적고 있다. 또 ‘중앙정보부는 급속히 힘이 약화되며, 그 힘은 보안사령부로 넘어갈 것이다. 보안사령부는 박대통령시해사건의 수사책임을 맡고 있다’고 적시, 보안사령관이 권랙의 핵심이 될 수 있음을 일찌감치 감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해 9월 2일 공개된 위컴주한미군사령관이 작성한 지난 1979년 10월 29일자 전문, 국방부장관과 태평양사령관등 군 고위관계자들에게 보내진 이 전문의 제목은 ‘대통령 시해사건과 그 이후’로 위컴사령관은 ‘1979년 10월 28일 나의 관저에서 류병현 한미연합사 부사령과 만찬을 함께 하며 나눈 장시간의 대화를 요약한 것’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자리에서 류병현 부사령관은 김재규가 어떤 인물인지를 위컴사령관에게 자세하게 설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류부사령관은 ‘나는 김재규를 오랫동안 알았으며, 김재규는 야전군에서 지위가 올라갈수록 중요한 업무에서 실패를 거듭, 힘들어했다. 박대통령이 그를 장군으로 진급시키기 전까지는 김재규는 잘해봐야 대령급정도의 능력이었다’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능력을 평가절하한 것으로 밝혀졌다. 류부사령관은 ‘김재규가 군사령관이 됐을 때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고, 국회의원이 됐을 때도 성과가 미약했다. 중정 차장이 됐을 때도 능력부족이 명백했으나, 대통령의 친구라는 개인적 인연으로 계속 혜택을 받았고, 마침내 중정부장에 임명된 것이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적고 있다.

▲ 주한미군 고위장성 피크니 장군은 해롤드 브라운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1979년 10월 28일자 전문에서, 류병헌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김재규가 아니라 차지철이 박대통령을 사살했다고 말한 것으로 적고 있다.

▲ 주한미군 고위장성 피크니 장군은 해롤드 브라운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1979년 10월 28일자 전문에서, 류병헌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김재규가 아니라 차지철이 박대통령을 사살했다고 말한 것으로 적고 있다.

‘김재규, 경질 소문 때문에 사건 범행’ 증언

류병현부사령관은 김재규의 박전대통령 시해 동기에 대해 ‘중정부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능력부족이라는 증거가 드러나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소문이 퍼지면서, 개각 때 경질이 확실했다. 더구나 영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중정]부하들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았고, 차지철 등 대통령측근으로 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으므로 갑작스럽게 박대통령과 차지철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류병현 부사령관은 또 ‘김계원 비서실장이 26일 밤 육본벙커에 도착 직후, 누가 대통령을 쏘았는지 말하지 않았으며, 이는 명백히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군부와 김재규 중 누가 상황을 장악했는지 파악하려 했다’며 김계원비서실장의 애매한 행동을 비판했으며 김계원이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데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또 정승화 계엄사령관에 대해 ‘김재규와 정승화의 만찬약속이 대통령약속 전에 이뤄졌으므로 정승화는 무죄다. 정승화는 4명의 자녀와 2명의 손자를 둔 사람이므로 많은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고 한다’라며 정총장은 시해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류부사령관도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나약하므로 다음 선거에서 성공적인 후보가 되지 못할 것이며 김종필과 정일권은 선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류부사령관은 ‘현재 나에게 어떤 위협은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 생활하기는 위험하기 때문에 밤에는 다른 곳에서 자고 있으며 항상 다른 고위 장성과 연락망을 유지한다’며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