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영역으로 남은 무기 방산비리 키맨…’
문 대통령, 김관진일당에게 희롱 당했다
사드 추가 배치를 둘러싼 진실게임으로 문재인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배치와 관련한 보고를 대통령에게 누락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 간 불협화음이 그대로 불거져 나와 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비서실장 및 일부 수석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박근혜 정부 비서진 및 내각과 일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초유의 사건 때문이다. 어느 대통령을 위해서 일했느냐보다는 조속하게 국정을 안정화 시켜야하는 것이 공직자의 우선 자세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권 비서진들은 중대 안보 사항 보고를 누락함으로써 신임 대통령을 무시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정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하느냐 하는 문제로 확대됐다. 박근혜 정부 안보 문제의 핵심에는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자리 잡고 있다. 김 전 실장이 박근혜 정부 무기사업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은 본지가 김 전 실장 지인의 제보를 받아 한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무기 관련 사업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미완의 영역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천문학적 금액의 비리가 무기사업에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사업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내각이 이 사실을 대통령 보고 사항에 삭제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제 꾀에 넘어간 모양새가 됐다. 조만간 열리게 될 판도라의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선데이저널>이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이번 사태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국방부가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한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보고에서 삭제한 것이다. 심지어는 진상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도 결국 추가 배치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이 아니라 보고과정에서 중요한 ‘팩트’가 삭제된 내용을 문제 삼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이 중차대한 문제라고 했음에도 주무 부처의 장관이 거짓말을 한 사실도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한민구, 사드4대 추가배치 거짓말 보고
청와대의 조사 결과 국방부 실무자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라는 문구가 확실하게 명기돼 있었으나, 수차례 감독 과정에서 문구가 삭제됐다. 최종적으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는 ‘6기’ ‘캠프명’ ‘4기’ ‘추가배치’ 등 문구 모두가 삭제됐고 두루뭉술하게 한국에 전개됐다는 취지로만 기재됐다. 이 사실을 5월 28일에야 확인한 정 실장은 당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오찬을 하며 ‘사드 4기가 추가로 들어 왔다면서요?’라고 물었으나 오히려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정 실장은 5월29일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은 30일 한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결국 무엇 때문에 중요 안보 관련 사항의 보고를 누락했고, 거짓말까지 해야 했는지에 관심이 모아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문재인 정권의 박근혜 정권 사정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청와대는 이번 사안을 ‘국기문란’으로 규정짓고 있다. 이런 기류를 감안하면 사안의 진상이 어떻게 밝혀지느냐에 따라 새 정부 초기 국정의 큰 방향을 좌우할 수 있을만한 대형 이슈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1차적인 경위조사 결과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관련 보고를 명백히 누락했다고 보고 관련자들에 대해 고강도 조사를 벌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따라서 사드 배치 초기부터 이 문제에 관여해 온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인물들은 조사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박근혜 정권 대형 게이트 조짐
이목은 정 실장 임명 전까지 청와대 안보실장을 맡았던 김관진 전 안보실장에게 쏠린다.
김 전 실장은 이명박 정권은 물론이고 박근혜 정권 국방 안보 분야에서 최고 실세였다. 2010년 이명박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고,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장관 중에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장관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영전하면서 무기사업은 물론이고, 군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데이저널>은 이미 김 전 실장 재임 시절 있었던 방산비리 가능성을 제보 받아 수차례나 보도한 바 있을 정도다. 그 대표적인 것이 KF-X사업이다. 이 사업은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석연치 않은 의혹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공군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차기 전투기 KF-X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정권 말 사업을 계약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차원에서 사업을 박근혜 정권으로 넘겼다. 공군은 당초 미국 록히드 마틴의 F-35A가 아니라 보잉의 F-15SE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추진했었다. 2013년 9월까지만 하더라도 F-X의 단독 후보는 보잉의 F-15SE였다.
가격 입찰 결과 F-15SE가 유일하게 총 사업비 8조 3000억 원을 맞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2013년 9월24일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에는 ‘F-15SE 차기 전투기 기종 선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그런데 방위사업추진위는 북한의 비대칭 전력과 안보상황, 세계 항공기술 발전 추세 등을 감안했다며 F-15SE안을 부결했다.
이어 군 수뇌부가 노골적으로 F-X 기종으로 스텔스 기능이 뛰어난 F-35A가 적격이라는 논리를 펼치더니, 이듬해 3월 24일 방위사업추진위는 F-X 기종으로 F-35A를 낙점했다. 김관진 전 장관은 그날 방위사업추진위에서 “(F-35A 결정에) 정무적 판단을 해야 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전투기를 고르는 데 전혀 필요 없는 정무적 판단이 F-X 기종 선정에 결정적이었다는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멀쩡하게 방위사업청의 평가를 단독으로 통과하고 국회가 사실상 동의한 안이 정무적 판단에 따라 백지화됐다. 예산을 초과하는 초고가 F-35A를 선택한 탓에 도입 대수는 계획했던 60대에서 40대로 줄었다. 무기를 사면서 손바닥 뒤집듯 결정을 번복하고 도입 대수를 대폭 축소한 사례는 F-X 사업이 유일했다. 총 사업비가 8조 원대이고, 도입 이후 유지보수에 그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사상 최대의 무기 도입 사업이 이렇게 파행을 겪었다. 게다가 록히드마틴은 전투기 핵심 기술 4가지를 한국에 이전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보잉 측은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결국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 핵심기술 이전도 백지화됐다.
F-X 사업 때 록히드 마틴의 경쟁사였던 유로파이터의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완전한 기술 이전을 약속했고, F-15SE의 보잉은 핵심기술을 해외에서 사서라도 주겠다고 우리 측에 약속한 바 있다. 록히드 마틴은 애초에 핵심기술 이전을 하지 못한다고 선언한 터라 F-35A를 골랐다는 것은 핵심기술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핵심기술을 받을 생각이 있었다면 록히드 마틴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2015년 10월 한국형 전투기 KF-X 핵심기술 이전 거부 사태가 터지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상파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우병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였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항공기 사업 관계자들을 두루 불러들여 핵심기술 이전이 안 되는 이유를 캤을 텐데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민정수석실은 당연히 KF-X 기술 이전 거부 파문의 전말을 알기 위해 어떤 정무적 판단으로 록히드 마틴의 F-35A를 선정했는지를 조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은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잠잠할 것 같은 이 사업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져 나오면서 하나 둘 진실의 퍼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군 관계자들로부터 “F-X 사업은 군이 아니라 윗선이 좌우했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 당시 이 사업을 “최순실이 움직였다”는 F-X 사업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결국 당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던 민정수석실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민정수석실을 이를 사실상 덮었다. 보고누락 파문으로 다시 논란이 되고 사드 역시 록히드마틴의 제품이다.
박근혜 정권은 유독 록히드마틴에 많은 특혜를 줬다. 록히드마틴이 박근혜 정권 때 한국에 팔아먹은 무기만해도 1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KF-X사업을 비롯해 사드까지 박근혜 정부의 주요 무기 계약 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사는 김 전 실장이다. 그가 장관으로 있을 때 F-X사업이 뒤집혔으며,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를 꾸준히 추진했다.
보고누락사태로 무기비리게이트 열릴 듯
<선데이저널>은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시끄럽던 시기, KF-X 사업과 관련한 제보를 받고 모든 의혹의 중심에 김 전 실장이 있다는 내용을 이미 한 차례 보도했다. 당시 김 전 실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사는 본지에 전화를 걸어와 “김관진이 방산비리의 핵심인데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무기 브로커 “함태헌(구속 중)이라는 미국 시민권자가 커넥션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무기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드 보고 누락으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결국 박근혜 정권 방산비리를 들추어보는 것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김 전 실장이 중간에서 역할을 한 것이지 비리의 종착역인지는 수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본지가 처음 주장한대로 김 전 실장이 중간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란 주장은 이미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5월 29일 본국 라디오 방송인 SBS 러브FM ‘정봉주의 정치쇼’에 출연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내가 (정)‘유연아! 박원오 원장님이 너네 아버지랑 형님 동생 한다는데?’ 그러자 유라가 ‘웃기지 말아요. 생물학적인 우리 아빠는요 김관진 아저씨하고만 형님동생이에요’라고 말해서 저는 ‘김관진? 국방부장관?’ 이렇게만 생각하고 그 다음부터는 질문 안 던졌다”며 정유라와의 일화를 밝혔다. 정유라의 생물학적 부친은 정윤회다. 이어 정봉주 전 의원은 “그럼요. 김관진 장관하고 형 아우 한다. 김관진 장관이 맞다고 한다면 이게 방위산업비리에 접근할 수 있는 손을 잡는거죠”라고 말했다. 이 모든 의혹들을 종합해보면 김관진 전 실장은 사적으로는 정윤회-최순실, 공적으로는 우병우 전 수석과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이런 인연들이 바탕이 되어서 무기사업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도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